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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잡이 딸 안고 떨던 밤, 도청 앞 시신들... 5·18 생존자들의 기억

[인터뷰] 전기·물·전화 끊긴 고립된 섬, 광주에서 겪은 공포의 시간

등록 2026.05.27 11:29수정 2026.05.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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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는 철저하게 고립된 섬이었다. 외부로 통하는 길은 군인들에 의해 봉쇄되었고, 도시의 전기와 전화는 끊겼으며, 밤마다 총성이 울려 퍼졌다. 당시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활동했다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2일, 전북 순창군 팔덕면 광암마을로 향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 이곳에서 기자는 광주 항쟁 당시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봤던 사람을 무려 세 명이나 만나게 됐다. 그 주인공인 성향자, 이경범, 임종호씨를 만나 대화를 나눠봤다.

성향자·이경범씨는 순창군 팔덕면 광암마을 출신이며, 임종호씨는 순창군 구림면 출신으로 1970년부터 순창군 팔덕면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겪었던 각자의 이야기를 기자에게 털어놨다. 다음 내용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한 것이다.

오후 7시 되면 암흑 도시, 광천초 옥상 가득 채운 군인들

성향자씨는 1979년생인 돌잡이 딸을 품에 안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1979년에 낳은 딸아이가 겨우 한 살이었을 때예요. 오후 7시가 되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집 안의 불도 모두 끄라고 했습니다. 전기도, 물도, 텔레비전도 다 끊어버렸어요. 아기는 어두우니까 답답해서 울어대는데 참 가슴이 미어지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때 광주 광천초등학교 바로 앞에 살았는데, 학교 옥상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꽉 차 있었습니다. 집에서 그 모습이 너무나 잘 보였어요. 밤만 되면 바깥에 나오는 사람을 무조건 총으로 쏴버리던 무서운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올해로 여든 살인데, 그게 벌써 46년 전이네요."


도시가 봉쇄되면서 가장 먼저 찾아온 고통은 식량 부족이었다. 가게들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쌀이 떨어진 이들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가게가 문을 안 여니까 쌀이 없는 사람들은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계신 친척들이 걸어와서 쌀이나 채소를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성향자씨가 1980년 광주 항쟁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향자씨가 1980년 광주 항쟁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준

도청 앞 시신들과 계엄군의 잔인함

이경범씨와 성향자씨는 당시 계엄군의 진압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남편과 이웃들이 매일 자전거를 타고 전남도청 앞에 가보면 시신들이 줄지어 눕혀져 있었다.

"우리 아저씨(남편)가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도청에 갔어요. 가보면 (군인들이) 죽은 사람들을 도청 앞에 주르륵 깔아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 군인들한테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우리 동네에서도 여상(여자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 하나가 도청에 구경하러 갔다가 죽었는데, 소문도 안 나게 감쪽같이 치워버리더군요. 사람이 죽어도 초상을 치를 수 있는 장례식장도, 가게도 없던 때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경범씨는 군용차 위에 시체를 올려놓고 울부짖던 한 여성의 목소리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당시 기아자동차 종업원들이 몰고 나온 장갑차와 군용 지프차가 있었습니다. 어떤 젊은 여성이 그 지프차 앞에 시신 한 구를 딱 얹어놓고, 마이크를 잡은 채 '오빠, 언니' 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계엄군이 광주 사람들 씨를 말리려고 한다'며 소리쳤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 여성도 계엄군에게 잡혀갔더라고요."

 이경범씨는 광주에서 계엄군이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기 전날 광주를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광주를 탈출하는 과정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경범씨는 광주에서 계엄군이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기 전날 광주를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광주를 탈출하는 과정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경준

철조망과 바리케이드... 살기 위한 처절한 광주 탈출기

계엄군의 본격적인 무력 진압(도청 재진입 작전)이 임박하자, 군인들이 젊은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가거나 죽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경범씨는 진압 전날 극적으로 광주를 탈출했던 긴박했던 순간을 증언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금호타이어에 들어간 지 2년 차 되던 해였습니다. 대규모 진압 병력이 광주로 들어오기 바로 전날, 젊은 사람들을 다 죽일 거라고 하기에 살기 위해 서울로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열차도 다 끊겨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장성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이경범씨는 간신히 암흑의 광주를 벗어나 전주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괴리감을 토로했다.

"광주를 겨우 빠져나와 장성까지 걷고, 장성에서 트럭 짐칸에 돈을 내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정읍까지 간 뒤에야 겨우 전주행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광주 밖으로 나와 전주 시내에 내렸는데, 거기는 불이 반짝반짝 켜져 있고 시내버스가 정상적으로 다니고 있더군요. 완전 별천지였습니다."

"5.18 영화에 나온 장면보다 우리가 목격한 현장이 더 참혹"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영화로 당시의 상황이 재조명되기도 했지만, 두 증언자는 "실제 겪었던 참혹함과 공포에 비하면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성향자씨는 영화에 나온 장면이 실제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화관에 가서 5·18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우리가 직접 겪은 것과는 매우 달랐어요. 진짜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은 영화에 다 담기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안 겪어본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이 다 거짓말인 줄 알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말을 전혀 안 믿어요."

 임종호씨가 순창에서 광주로 들어가 겪었던 끔찍했던 경험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임씨는 서른네 살이었다고 밝혔다.
임종호씨가 순창에서 광주로 들어가 겪었던 끔찍했던 경험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임씨는 서른네 살이었다고 밝혔다. 김경준

막혀버린 길, 그리고 헬기 소리와 총성

광주에 살던 사람들이 공포에 벌벌 떨며 도시에서 탈출하거나 집에서 숨죽이고 있던 그 참혹한 순간에 오히려 외지에서 광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광주에 살던 친동생의 실종 소식을 들은 다음 날, 광주로 가겠다고 결심한 자가 바로 임종호씨다.

하지만, 광주로 진입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군인들이 길목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고, 지역 주민들은 위험한 사지로 들어가려는 그를 필사적으로 만류했다.

"담양 기계공고 앞에서 군인들이 딱 지키고 서서 못 가게 하더라고요. 겨우 길을 찾아서 광주로 우회해 들어갔죠. (광주에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도 '사람이 대장부로 태어나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하는 마음으로 그냥 광주로 들어갔죠."

광주 시내에 들어가자, 삼엄한 경계 속에서 군인들과 맞닥뜨렸다. 동생의 시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들어간 그곳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전쟁터였다.

"오전 8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하늘에 비행기랑 헬기가 마이크로 방송을 해대며 날아다니고, 사방에서 총소리가 쿵쿵 울려 퍼지는데 완전 난리였죠. 군인들이 2인 1조로 수색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군인이 나를 보더니 총에 달린 대검으로 나를 쿡 찔렀어요. 그 순간 식은땀이 쫙 흘렀습니다."

"후세들이 그날의 아픔을 명확히 기억해 주기를"

46년 전 그날의 참혹했던 현장을 직접 몸으로 겪은 그는 최근 광주항쟁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려는 일부 움직임에 대해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 당시 계엄군들의 폭언과 만행은 입에 담기도 힘들어요. 적군도 아니고 우리 한국 군인들이 우리 동포를 죽이는 세상이었으니, 누가 누구를 믿고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는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겁 없이 들어갔던 것이라고 담담히 말을 이어가던 임 씨는 후손들이 그날의 진실을 왜곡 없이, 명확하게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순창 #광주 #광천초 #헬기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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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에 거주하는 김경준입니다. 순창군과 중동 지역의 뉴스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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