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간호사 표지 저자 안미선, 출판사 산지니 2026년 2월 25일 발행
박상기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안미선 작가의 <길 위의 간호사>(2026년 2월 출간)를 읽게 됐다. 책은 50년 가까이 산업재해 노동자들과 함께해온 간호사 조옥화의 삶을 담고 있었다. 조옥화는 산업 재해와 직업병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노동자들을 만나 상담하고 산재 신청을 도왔다. 신천연합의원 상담실장으로 일하며 공장과 작업장을 찾아다녔다. 손이 잘린 노동자, 유독물질에 중독된 노동자, 허리를 다친 노동자들을 만나며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건네던 사람이었다.
책 속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노동자들이 변했어요. 아프다고 말하면 불이익을 당하니까 참고 견디던 노동자들이었어요. 산재 인정도 못 받고 공상 처리만 해줘도 고맙다고 하던 사람들이었죠. 노동자인 내가 아프다고, 사업주인 당신이 틀렸다고, 우리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기 시작한 거예요. 일하다 죽고 다치는 노동자는 많았지만, 이제야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싸워야 할 문제라는 목소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그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오래 멈췄다. 마치 지난 겨울의 내가 그 문장 안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발목이 저렇게 부어오를 때까지 참고 있었을까. 왜 가장 먼저 든 감정이 억울함이 아니라 죄책감이었을까. 왜 다친 몸보다 인간관계를 더 걱정했을까. 왜 "병원 가야겠다"보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현장에서 혼자였다. 통증을 참는 것도 혼자였고, 눈치를 보는 것도 혼자였다. 괜찮은 척하는 것도 혼자였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혼자였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버티지 못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계속 혼자 견디는 방향을 선택했다. 누구도 "괜찮냐"고 먼저 묻지 않는 공간에서 사람은 점점 자기 몸의 신호를 무시하게 된다.
조옥화의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알게 됐다. 노동자의 연대라는 건 거창한 구호만이 아니라는 걸. 거리에 수천 명이 모이는 장면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아프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같이 이야기하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 다친 사람에게 "왜 이제 말했냐"고 묻기보다 "많이 아팠겠다"고 먼저 말해주는 것. 그게 연대라는 걸.
책 속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모두 혼자였다. 프레스기에 손이 잘려도 자기 탓을 했고, 허리 디스크가 생겨도 "원래 허리가 안 좋았던 것 아니냐"는 말을 들으며 참고 버텼다. 용접을 하다 진폐증에 걸려도 "탄광에서나 걸리는 병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노동 때문에 다친 몸을 개인의 체질 문제로 돌렸다. 노동자들 역시 그렇게 믿도록 길들여졌다.
하지만 누군가 같은 고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됐다. 이것이 개인의 나약함이나 운이 아니라 노동의 문제라는 것을. 한 사람이 "나도 다쳤다"고 말하면, 그동안 침묵하던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혼자일 때는 참고 넘어갔던 일들이, 함께 이야기되는 순간 비로소 구조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조옥화는 허리를 다친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다 허리를 삐끗하면 그때 소리쳐서 사람들한테 광고를 해라! 그리고 아픈 티를 내고 그것을 다른 이들이 목격하도록 목격자를 확보하라. 그래서 일하다가 다쳤다는 걸 증명해라."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너무 낯설어서였다. 나는 반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끝까지 괜찮은 척했고, 티를 내지 않으려 했고, 가능한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 아픈 걸 숨기는 게 성실함이라고 생각했다. 참고 버티는 게 책임감이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나는 왜 끝까지 괜찮은 척했을까, 왜 혼자 참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을까, 같은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조옥화는 노동자들에게 계속 말했다고 한다.
"회사가 건강한 노동력을 제공받는 거지, 우리의 건강과 생명까지 사업주에게 파는 건 아니다."
그 말을 읽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지난 겨울의 일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히 "몸이 약한 사람이 무리하다 다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인력 부족과 불안정 고용, 하청 구조, 인간관계 압박 속에서 노동자가 통증을 숨긴 채 버티도록 만드는 오래된 노동 문화의 문제이기도 했다. 사람을 쉽게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다루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는 아픈 몸보다 분위기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특히 프리랜서나 하청 노동자들은 늘 관계 속에서 일한다. 계약서보다 소개와 평판이 더 크게 작동하는 현장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리를 말하기 전에 눈치를 본다. 산재를 이야기하기 전에 "괜히 문제 만드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를 먼저 걱정한다. 다친 몸보다 인간관계를 잃는 걸 더 두려워하게 된다.
"혼자 참지 말라"고 말해주는 연대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 마음이 먹먹 했다. 세상은 분명 조금씩 바뀌어왔는데, 왜 어떤 현장들은 아직도 혼자 참아야 하는 곳으로 남아 있는 걸까. 왜 누군가는 퉁퉁 부은 발목으로 밤새 서 있으면서도 "죄송합니다"를 먼저 말해야 할까. 왜 다친 노동자가 가장 먼저 자기 잘못부터 의심해야 할까.
어쩌면 노동자의 연대라는 건 거대한 구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퉁퉁 부은 발목으로 서 있는 사람 옆에 가만히 서서, "혼자 참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함께 말해주는 것.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다쳤으면 치료 받아야 한다고 당연하게 이야기해주는 것. 그런 아주 작은 말과 태도들이 사람을 다시 버티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옥화가 평생 해온 일도 결국 그런 일이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거창한 영웅이 되어준 것이 아니라, 아픈 몸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 혼자 죄책감을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준 사람. 다친 몸으로도 존엄을 잃지 않아도 된다고 끝까지 이야기해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세상은, 특별한 영웅이 있는 세상이 아니라, 힘들고 아픈 순간마다 자기 곁에 조옥화 같은 친구 한 사람 쯤은 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혼자 참고 무너지기 전에 "같이 이야기하자"고 손 내밀어주는 사람, "당신은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세상 말이다.
길 위의 간호사 - 약자의 편에서 새 세상을 꿈꾸며 걸어온 조옥화의 삶
안미선 (지은이),
산지니,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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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발목 되도록 참은 나를 일깨운 간호사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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