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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놀이터가 돼 버린 곳, 이 코스 걸을 때는 조심하세요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 10.6km 6시간 반을 걷다

등록 2026.05.27 14:25수정 2026.05.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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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은 3개도(경남, 전남·북), 5개시군(하동, 산청, 함양, 남원, 구례)에 걸쳐 있으며, 21개 구간에 길이는 289.4km에 이른다. 지리산둘레길은 사단법인 숲길에서 관리운영하며, 매주 토요일 '토요걷기'를 하고 있다.

2026년도 첫 토요걷기는 지난 3월 14일 수철~동강 구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딱 절반을 걸었다. 경남 산청에서 시작한 길은 전북과 전남을 지나 경남 하동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동은 21개 구간 중 제일 많은 7개 구간이 있고, 난이도 또한 다른 데 보다 힘이 드는 구간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5월 23일, 11회 차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 토요걷기는 송정마을에서 시작됐다. 이 구간은 10.6km로 두 군데 급경사 구간을 넘어야 한다. 대부분 숲속길이라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걷기에 편하다. 탁 트인 조망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육신의 피로를 덜게 해 주는 청량제 역할을 다한다.

깊은 산 속 자리한 묵답을 보노라면, 옛 조상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가탄마을에서 약 1.9km 떨어져 있는 작은재는 경남과 전남의 경계로 지리산둘레길이 전남에서 경남으로 지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토요걷기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을 걷는 토요걷기 회원들.
▲토요걷기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을 걷는 토요걷기 회원들. 정도길

송정마을에서 한수천을 건너니 시작부터 급경사다.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하다. 선두는 잘만 걷는데 자꾸 처지는 느낌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그나마 피로를 들게 해 준다. 소나무 한 그루가 붉은색 단풍으로 물들었다.

단풍이란 말을 들은 한 회원이 슬며시 웃으며 표현이 좋단다. 알고 보니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다. 산 여기저기 붉은 색 소나무가 많아 보인다. 수년 전 전국 산으로 번진 붉은 소나무는 도로를 달리면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끈질긴 방역과 예방 활동으로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재선충 소나무 숲을 다시 보게 된 점이 아쉽다.

토요걷기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을 걷는 토요걷기 회원들이 송정계곡을 건너고 있다.
▲토요걷기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을 걷는 토요걷기 회원들이 송정계곡을 건너고 있다. 정도길

지리산둘레길 가장 힘든 구간... 두 군데 급경사 오르막길


지리산둘레길은 중간 중간 쉼터를 조성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시설도 설치해 놓았다. 언덕이 있는 데는 돌담을 쌓아 흙이 흘러내리지 못하게 하고, 빗물이 모이는 곳은 수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사단법인 숲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2시간 10분을 걸어 목아재에 도착했다. 목아재는 구례군 토지면 하리에서 신기마을로 이어지는 임도길이 조성돼 있다. 북쪽으로 약 2.5km 지점은 신기마을 피아골오토캠핑장이고, 남쪽으로 3.7km를 걸으면 하리 국도 19호선이 나타난다. 목아재에서 열한 번째 스탬프를 찍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목아재 목아재는 하리에서 신기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로, 둘레길 스탬프 찍는 곳이다.
▲목아재 목아재는 하리에서 신기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로, 둘레길 스탬프 찍는 곳이다. 정도길

목아재부터는 평탄한 길과 짧은 오르막길이 반복되고, 기촌마을까지는 내리막길이다. 목아재에서 약 50분을 걸으니 어둠에서 광명의 세상으로 나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산 아래로 펼쳐진 섬진강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광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전라도와 경상도를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 긴 강으로,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하여 '어머니의 강'으로 불린다. 잠시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정신 줄을 놓고 있을 즈음, 발걸음을 재촉하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섬진강 진안군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 든다.
▲섬진강 진안군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 든다. 정도길

오전 걸음이 끝나갈 무렵 오래된 집 두어 채에 눈길이 간다. 슬레이트 지붕과 흙벽으로 된 집에 투박스런 돌담장이지만 정겹기 그지없다.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은 어릴 적 기억으로 소환 중이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사립문도 없었다. 초가지붕에 흙으로 지은 집에서 많은 식구가 살았다. 잠시 멈춰 옛날 생각에 잠기니 눈시울이 뜨겁다.

주인장은 나이 많은 할머니일까. 잠깐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가져간 커피라도 조금 나눠 마시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며 추동교를 건너니 기촌마을이다. 걸은 지 3시간 20분 만에 식당 비빔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옛 집 슬레이트 지붕과 흙 벽으로 된 집. 주인장은 외출했는지 사립문은 닫혀 있다.
▲옛 집 슬레이트 지붕과 흙 벽으로 된 집. 주인장은 외출했는지 사립문은 닫혀 있다. 정도길

전쟁의 피난처가 된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둘러 국·보물급 문화재 관람도

기촌마을은 피아골에 자리해 있다. 이 마을은 옛날 전쟁을 피해 피난 온 '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유래된 이름이다. 지리산을 찾는 이라면 아마도 피아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반야봉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 중 대표적인 계곡으로 지리산국립공원의 핵심 탐방로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 이 지역에 승려가 많아 곡식이 부족하자 농작물인 '피'를 재배했다는 것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가을에는 계곡, 사람, 그리고 사람얼굴까지 붉게 물든다는, 삼홍 단풍이 유명한 곳이다.

인근 연곡사에는 '구례 연곡사 동·북 승탑' 2기가 국보로 지정돼 있다. 수차례 방문한 연곡사, 조각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승탑 앞에서 한동안 자리 뜨는 것을 잊었던 때가 있었다. 피아골을 찾는 여행자라면 국·보물급이 많은 연곡사를 꼭 둘러 볼 것을 권한다.

피아골 계곡 피아골 계곡은 지리산을 찾는 이라면 필수 코스에 들 정도로 이름이 나 있다.
▲피아골 계곡 피아골 계곡은 지리산을 찾는 이라면 필수 코스에 들 정도로 이름이 나 있다. 정도길

한 시간을 쉬었다가 오후 걸음은 계속됐다. 오전 출발지인 송정마을 시작점도 급경사고, 오후 기촌마을 시작점도 급경사다. 이 구간은 송정계곡 한수천과 피아골 내서천을 사이에 두고 두 군데 급경사가 있는 코스다. 식후라 그런지 몸도 무겁고 호흡도 거칠다. 동네 시멘트 포장길 막바지에서 한숨을 돌려야만 했다.

숲으로 접어드니 나뭇잎 하나가 발길을 붙잡는다. 한 잎맥에 3~5개 잎이 붙어 있는데, 큰 잎은 한자 '산(山)'자를 닮았고, 작은 잎은 하트 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산사랑' 나무라고 한 회원이 알려준다. 사실 이 나무는 생강나무로 어릴 때 하트 모양이었다가, 자라면서 잎 모양새가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생강나무 잎 생강나무 잎 중 하나는 한자 '산'자를, 다른 하나는 하트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특별한 이름이 산사랑나무다.
▲생강나무 잎 생강나무 잎 중 하나는 한자 '산'자를, 다른 하나는 하트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특별한 이름이 산사랑나무다. 정도길

어안동에 이르니 농사짓고 살던 터가 나타난다. 가파른 깊은 산골에 터를 잡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곡식을 얻기 위해 땅을 일궜던, 선조들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묵답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로 중간 중간 큰 나무만 세월의 기록을 담고 있다. 농사 짓던 곳이라 물이 늘 고여 있다.

자연히 멧돼지가 찾게 되면서 놀이터가 돼 버렸다. 멧돼지는 산속에서 물기가 조금만 있어도 몸을 비비고 흙 목욕을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런 곳을 지날 때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사단법인 숲길에서는 자연보호와 환경정비로 이곳에 노랑 창포꽃을 심어 생태환경을 조성보호하고 있다.

토요걷기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 어안동 묵답에서 단체사진 촬영.
▲토요걷기 지리산둘레길 송정~가탄 구간 어안동 묵답에서 단체사진 촬영. 정도길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작은재와 화개장터 남도대교

묵답 터에서 10여분을 오르니 작은재다. 작은재는 전남과 경남의 경계로 지리산둘레길이 경남 하동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여기에는 이정표가 두 개 있는데, 좌측 현대식 이정표는 구례군에서, 우측 나무로 만든 벅수는 하동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송정~가탄 구간 종착지인 가탄마을까지는 1.9km가 남았다. 지금까지 쭉 같이 동행한 회원에게 경계선에 스틱을 놓아 선을 그으며 포즈를 취하도록 해 기념사진 한 장도 남겨 주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로 한 숨 돌리며 여유 있는 걸음을 할 수 있다.

작은재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인 작은재에서 한 회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은재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인 작은재에서 한 회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도길

울창한 편백나무 숲에 잠시 쉬어간다. 분홍색 각시붓꽃도 만났다. 법하마을 돌담장 위 털마삭줄 하얀색 꽃은 눈이 내린 듯, 푸른색 잎과 대조를 이룬다. 털마삭줄은 일반 마삭줄과 달리 어린 가지와 잎 뒷면에 부드러운 흰색 털이 나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때쯤, 하동 악양면 평사리 일대 돌담장 위에는 하얀색 털마삭줄 꽃이 흐드러지게 피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는데, 한 번 가보고 싶다. 마을 뒤 화개천 뒤로 높이 솟아 있는 산은 다음 주 걸어야할 가탄~원부춘 구간이라고 알려준다. 이 길 또한 힘든 걸음이 될 것이라는 예고다.

털마삭줄 꽃 털마삭줄은 줄기와 잎 뒤에 작은 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털마삭줄 꽃 털마삭줄은 줄기와 잎 뒤에 작은 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도길

송정마을에서 오전 출발지인 법하마을 화개중학교 주차장까지 6시간 반을 걸었다. 법하마을과 가탄마을 사이로 화개천계곡이 흐른다. 이곳은 화개장터와 화개십리벚꽃길이 유명하다. 앞으로는 섬진강이 광양만으로 흘러간다. 화개장터 옆 남도대교는 섬진강을 건너는 다리로,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로 연결하고 있다.

이 다리는 아치형으로 한쪽에는 파란색, 다른 한쪽에는 빨간색으로 칠해 영호남 동서화합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길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있다면 약 6.6km 떨어진 쌍계사에 들러 피로를 푸는 여행도 겸할 수 있어 좋다.

지난 3월 시작한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는 지금까지 11개 구간을 걸었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토요걷기에 동참한 나에게 힘찬 갈채를 보냈다. 뿌듯한 하루였다. 다음 주도 빡센 여정이 예정돼 있다. 그래도 걸음은 계속될 것이다.

● 구간거리 및 소요시간
송정마을(09:10) ~ 목아재(11:20, 3.4km) ~ 기촌(12:30, 3.4km) ~ 점심시간(12:30~13:35) ~ 작은재(어안동/ 1.9km) ~ 법하(1.2km) ~ 가탄(15:40, 0.7km)/ 10.6km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작은재 개인사진은 당사자 허락을 받아 게시한 사진입니다.
#지리산둘레길송정가탄구간 #섬진강 #목아재 #작은재 #피아골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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