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악산 물굴 호랑이 머리를 집어 넣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재학
거기서 조금 더 철제 계단을 올라가야 마침내 물굴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굴은 아랫물굴과 윗물굴로 나눠져 있는데, 아랫물굴은 예로부터 기도처로 쓰이던 아담한 석굴이고, 더 위로 오르면 비교적 규모가 큰 윗물굴, 곧 관음굴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중 <산천> 조에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 하는데 날이 가물 때 비가 오기를 빌면 영험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온 진짜 이유는 용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금산에 가뭄이 나면 호랑이 머리를 이 굴에 넣었다는 침호두(沈虎頭) 기우제 때문이었다. 호랑이 머리를 굴에 넣으면 용이 화가 나서 천둥과 번개, 구름을 불러 비를 내렸다는 전설로 가뭄이 오면 금산군수가 직접 관음굴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용과 호랑이의 관계를 활용한 이 기막힌 상상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험한 길을 마다하고 기도하러 온다니 뭔들 안 들어줄까. 그 정성이 눈물겹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음료수를 꺼냈다. 오는 내내 갈증으로 마실 유혹도 끝내 물리치고 지켜온 음료수다. 세 번에 걸쳐 고수레를 외치며 사방에 뿌렸다. 그랬더니 날씨가 화창했는데도 불구하고 입구 바위틈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전 세계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빗줄기가 터져 뜨거워진 세상의 가뭄이 해갈되길 기원했다.
하산 길에 들어보니 물소리가 유난히 우렁차고 요란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개삼저수지로, 다시 금강으로 흘러들 것이다. 그 물길 끝 어딘가에 용호석이 서 있겠지. 용은 물을 거느리고, 호랑이는 산을 지킨다.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지만, 늘 함께 어우러져 나아갔다.
오늘의 여정은 그 이치를 몸으로 증명하는 길이었다. 금강변 천내리에서 용과 호랑이를 돌로 만났고, 진악산 물굴에서 치열한 용과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가슴으로 들었다. 고려의 왕이 능소로 낙점했다 버리고 간 자리에 석수로 남아 마을을 지켰고, 조선 기우제의 성소가 참배객을 맞는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용과 호랑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용과 호랑이는 오늘도 치열하게 상박(相搏)하고 있지만 또한 서로 각자 맡은 영역을, 그리고 이 땅을 나란히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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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크리에이터입니다. 김구 선생 탄생150년을 맞아 문화강국 프로젝트 일환,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및 국립한국호랑이박물관 건립 기원을 위해 기획한 연재로 "거룩한 장도-한국호랑이를 찾아서" 매주 금요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호랑이를 찾아 탐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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