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으로 부서진 집. 3년 전 발생한 지진의 흔적이 위르간 마을 이곳저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백종인
우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투브칼산 정상 대신, 아마지그족 마을의 진흙 벽을 따라 해발 1000미터 고지의 완만하고 호젓한 산길을 걸었다. 흙길은 철분 성분 때문에 유난히 붉었고, 그보다 더 붉은 빛을 띠는 벽돌담 아래에서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산길 언덕에 오르니 푸른 호수가 시원하게 시야를 주었고, 호수를 바라보는 산기슭에는 아기자기한 현대식 흙집들이 모여 있었다. 붉은 산자락이 잔잔한 호수 위에 비치는 풍경은, 거칠고 황량한 아틀라스산맥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휴양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마을에도 아픈 상처가 있었다. 3년 전인 2023년 9월, 규모 6.8의 강진이 위르간 마을을 강타해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던 것이다. 지진에 취약한 진흙 벽돌 가옥들은 모래성처럼 주저앉았고, 구조 차량이 지나가야 하는 산악 도로마저 무너져 내려 결국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정부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복구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제 모습을 찾았지만,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지진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가 하룻밤 머물렀던 숙소 역시 지진으로부터 재건된 곳이었다.
이제 모로코 여행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모로코 최대 관광도시인 마라케시로 가기 전, 모로코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요리 수업에 참여했다. 모로코를 상징하는 음식인 '타진'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나라를 떠나 살아도, 자식 세대와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어주는 탯줄 같은 매개체가 바로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 아니겠는가. 모로코에서는 타진이 그런 음식일 것이다.
위르간 마을에서 1시간 정도 이동해 올리브 나무숲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텃밭 옆 비닐 막사로 들어갔다. 요리를 배우는 팀이 우리만이 아닌 듯 여러 개의 테이블이 준비돼 있었다. 80대 어르신부터 어린 학생까지,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우리 같은 단체팀까지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둘렀다. 그리고 요리사의 지시에 따라 준비된 재료를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말이 요리 수업이지 흥겨운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요리사의 지시 사항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재료가 담긴 그릇을 들고 준비된 불붙은 화덕으로 향했다. 불을 지피고 화력을 조절하면서 부족한 양념을 채워 넣는 세심한 작업은 베테랑 조리 보조사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타진의 맛은 이제껏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이는 그곳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수령증까지 손에 쥔 채, 우리는 최종 도착지인 마라케시로 향했다.

▲ 직접 만든 모로코 음식. 요리 수업에서 직접 만든 타진의 맛은 이제껏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백종인
'붉은 도시' 마라케시의 매력
마라케시는 붉은 도시였다. 아틀라스산맥 남서쪽 사면의 흙이 붉은색이듯 마라케시의 흙도 붉었고, 이러한 특성을 살려 도시의 건물들도 붉은 진흙과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은 모로코가 가장 번성했던 11세기(약 200년간)와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약 100년 간) 수도였다. 마라케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쿠투비아 모스크(Koutoubia Mosque)와 바히아 궁전(Bahia Palace)이 그때의 찬란했던 명성을 웅변하고 있었다.
마라케시에 도착한 오후, 시내 구경을 나갔던 우리는 혹시 이곳이 유럽의 어느 도시가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넓고 깨끗한 도로변을 따라 세련된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맥주와 칵테일을 즐기고 있었다. 대부분 관광객이거나 외국인이겠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이토록 공개적인 음주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실제로 모로코에는 장미 농원뿐만 아니라 와이너리도 있으며, 수준 높은 모로코산 와인도 활발히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튿날 본격적인 마라케시 관광은 12세기 건축물인 쿠투비아 모스크 앞에서 시작됐다. 사방이 훤하게 트인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쿠투비아 모스크는 첨탑의 방향키가 정확하게 메카를 맞추기 위해 지었다가 허물고 두 번이나 다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모스크 주변으로는 장미 숲과 수많은 오렌지 나무가 늘어선 정원이 넓게 펼쳐져 있고, 뒤편으로는 분수대가 있는 넓은 광장이 하얗게 눈 덮인 아틀라스산맥과 어우러졌다. 모스크 첨탑은 높이 77미터로 마라케시의 그 어떤 건물도 이 첨탑보다 높게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돼 있어, 모스크는 붉은 도시 마라케시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마라케시에서도 메디나는 주요 관광 코스였다. 붉은 흙빛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미로 같은 골목길이 얽혀있고, 메디나의 거실 역할을 하는 광장과 활기 넘치는 전통시장 수크가 나타났다. 사실 이제까지 메디나를 워낙 실컷 보았기 때문에 큰 흥미를 끌지 못했지만, 이곳 메디나 내부에 자리한 바히아 왕궁(Bahia Palace)만큼은 달랐다.
19세기 대재상의 저택으로 시작해 정식 왕실 궁전이 된 바히아 왕궁은 정교하게 조각된 스투코 석회 장식과 화려한 젤리주 타일 모자이크, 그리고 중후한 시더우드 천장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이슬람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로코는 현재도 왕정 국가라 실제 국왕이 머무는 궁전 안을 관람하는 것이 불가능하나, 바히아 궁전은 국왕이 마라케시를 방문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중에게 상시 개방되는 유일한 왕궁이다. 따라서 마라케시의 관광 명소가 됐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만큼 내부는 많은 관광객들로 무척 붐볐다. 특히 왕궁 입구에 새겨진 아랍인과 아마지그족, 유대인의 문화적 융합을 상징하는 문양은 포용과 조화를 중시하는 모로코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듯해 매우 인상적이었다.

▲ 마라케시. 분수대가 있는 넓은 광장이 하얗게 눈 덮인 아틀라스산맥과 어우러졌다.
백종인

▲ 쿠투비아 모스크. 사방이 훤하게 트인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쿠투비아 모스크는 첨탑의 방향키가 정확하게 메카를 맞추기 위해 지었다가 허물고 두 번이나 다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백종인
이로써 15일 간의 모로코 여행이 끝났다. 이름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미지의 나라를 이토록 깊숙이 여행하고 다양한 문화를 습득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모로코 현지인들보다 모로코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유쾌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미 모로코 문화를 수없이 접해왔다. 화장품에 자주 쓰이는 아르간 오일은 모로코의 독점 특산품이며, 타진 그릇 역시 저수분 웰빙 요리구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민트 티는 또한 어떠한가. 게다가 우리는 수많은 영화 속에서 황톳빛 흙집 성채, 메디나 안의 복잡한 골목, 아틀라스산맥, 푸른색의 마을을 보았던 것이다. 최근에야 알았는데, 우리나라 영화인 <모가디슈>와 <비공식작전>도 이곳 모로코에서 촬영된 작품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았다. 화면 속 황톳빛 성채를 보면서, 며칠 전 직접 걸었던 아이트 벤 하두의 흙벽 골목과 바람을 떠올렸다.

▲ 티지 은티치카(Tizi n'Tichka) 패스. 두 개의 탑 사이에 해발 2260미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었다.
백종인

▲ 위르간 마을의 인공 호수. 붉은 산자락이 잔잔한 호수 위에 비치는 풍경은, 거칠고 황량한 아틀라스산맥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휴양지 모습을 하고 있다.
백종인

▲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바히아 왕궁의 천장. 19세기 대재상의 저택으로 시작해 정식 왕실 궁전이 된 바히아 왕궁은 정교하게 조각된 스투코 석회 장식과 화려한 젤리주 타일 모자이크, 그리고 중후한 시더우드 천장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이슬람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백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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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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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의 절경을 봐라... 다들 카메라 들고 모여드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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