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관련 이미지.
JTBC
박해영 유니버스에서 반복되는 것은 인물만이 아니다. 물리적 공간 역시 계속해서 비슷한 역할을 맡는다. <나의 아저씨>의 정희네, <나의 해방일지>의 카페, 그리고 <모자무싸>의 아지트.
각각의 공간은 다른 이름과 다른 형태를 갖고 있지만 하는 일은 닮아 있다. 바깥에서는 버티기 힘든 사람들이 잠시 내려앉아 숨을 고르는 곳이다. 박해영의 세계에는 같은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닿지 못한 사람들의 씁쓸함이 있다.
가족의 경우도 보자. 박해영이 그리는 세계에서 가족은 언제나 모순적인 존재다. 지긋지긋해서 도망치고 싶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거운 존재이면서도, 막상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는 결국 떠올리게 되는 곳.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에서 그 세계를 붙잡는 중심은 어머니였다. 집을 지키고, 밥을 차리고, 가족을 이어 주는 사람. 그런데 〈모자무싸〉의 어머니는 다르다.
주인공 동만과 진만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로 그려진다. 대신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변은아의 엄마, 배우 오정희(배종옥 분)다. 이전 작품 속 어머니들이 집과 밥으로 가족을 이어가는 배경처럼 존재했다면, <모자무싸>의 어머니, 오정희는 원가정을 떠나 업계에서의 성취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엄마의 빈자리를 견디며 살아온 변은아 앞에 엄마는 밥 대신 카드를 건넨다. 오정희와 장미란(한선화 분)은 함께 살지만 둘이 집에서 밥을 먹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정희의 양육은 밥을 먹이고 이부자리를 갈아주는 '돌봄'이 아니라, 아이가 맞닥뜨린 문제를 자기 방식으로 처리해 주는 '해결'에 가깝다. 장미란의 사고를 덮고, 변은아의 작품이 전 남자친구 마재영에게 이름 없이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활용한다.
인상적인 건 변은아가 정신과 상담에서 어머니를 지칭해야 하는 순간이다. 버려졌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은아는 '엄마'라는 말을 한 번에 말하지 못한다.
"ㅇ ㅓ ㅁ ㅁ ㅏ(실제 연기할 때는 이응, 어, 미음, 미음 아로 발음). 그 단어는 과장됐어요."
박해영 작가가 이 장면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의 부재를 넘어, 어머니라는 자리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집에서 밥을 해주고 가족을 묶어 두는 존재에서, 자기 삶을 선택하고 떠날 수 있는 존재로.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내 머릿속에 남은 한 줄 평은 이렇다.
"박해영 작가의 대국민 셀프-연대 힐링 처방전."
변은아, 황동만, 황진만, 오정희, 장미란 그리고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 드라마는 호칭이 아니라 이름으로 기억되기 위해 애쓰는 각자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향한 노력을 응원하게 됐다.
박해영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쓰는 이야기에는 결국 자기 자신이 어느 정도 녹아 있다고 말했다. 〈모자무싸〉에도 박해영이라는 사람의 조각들이 묻어났을 것이다. 〈모자무싸〉를 보내며 문득 궁금해졌다. 박해영 작가는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조각을 꺼내 어떤 세계를 그려낼까. 그리고 그 세계에서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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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카드 준 '모자무싸' 엄마, 이 장면 왜 좋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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