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장준하의 '사상계 헌장'

[잡지 창간사 4] 피난수도 부산에서 1953년 4월에 나온 월간 <사상계>는 시사종합지의 성격이다

등록 2026.06.03 15:24수정 2026.06.03 15:24
0
원고료로 응원
 1953년 4월 창간된 『사상계』의 겉표지
1953년 4월 창간된 『사상계』의 겉표지 장준하기념사업회

독립운동가 출신 장준하는 조국해방으로 환국하여 백범 김구 비서를 거쳐 언론 사업에 투신하였다. 광복군시절 펴냈던 <등불>, <제단> 등의 경험을 살려 <사상>을 주관하다가 독자적으로 월간 <사상계>를 창간했다.

좌우 대립의 극심한 혼란기에 지식인과 청년 학도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주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자 월간 <사상계>를 발행했다.

피난수도 부산에서 1953년 4월에 나온 월간 <사상계>는 시사종합지의 성격이다. 이후 이 잡지는 지성계를 대표하는 월간지가 되었다. 창간호에는 별도의 창간사가 없고, 권두언에서 인간문제를 특집으로 꾸민 이유를 설명하고, 편집후기에서 동서고금의 사상을 밝히고 바른 세계관, 인생관을 수립해보려는 의도임을 알렸다.
 광복군 출신으로 『사상계』를 창간한 장준하
광복군 출신으로 『사상계』를 창간한 장준하 장준하기념사업회

<사상계>는 김준엽·안병욱·김성한 등 편집위원 체제를 갖추고 1955년 8월호에 <사상계 헌장>을 실었다. 사실상 창간사인 셈이다. 이 헌장을 매호 책머리에 싣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폐간될 때까지 이어졌다. <사상계>는 최근 격월간으로 복간되었다.

사상계 헌장

자유와 평등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근대적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봉건사회에서 직접 제국주의 식민사회로 이행한 우리 역사는 세계사의 조류와 격리된 채 36년간 암흑속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였다. 그것은 자기말살의 역사요, 자기 모독의 역사요, 노예적 굴종의 역사였다.

다행히 제2차 대전의 결과로 이 참담한 이민족의 겸제(箝制)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자기광정(自己匡正)의 여유를 가질 겨를도 없이 태동하는 현대의 진통을 자신의 피로써 감당하게 된 것은 진실로 슬픈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자유의 적을 쳐부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또다시 역사를 말살하고 조상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후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무능과 태만과 비겁으로 말미암아 자손만대에 누(累)를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이 역사적 사명을 깊이 통찰하고 지성일관(至誠一貫) 그 완수에 용약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 민족사생관두(民族死生關頭)에서 우리는 과연 유신 창업의 기백과 실천이 있었던가? 사(私)를 위하여 공(公)을 희생한 일은 없었던가? 정치인은 과연 구국대업에 헌신하고 발분망식하였던가? 민(民)은 과연 대(大)를 위하여 소(小)를 버릴 용의가 있었던가? 우리는 서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음을 지극히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지중(至重)한 시기에 처하여 현재를 해결하고 미래를 개척할 민족의 동량(棟樑)은 탁고기명(託孤寄命)의 청년이요, 학생이요, 새로운 세대임을 확신하는 까닭에 본지는 순정무구한 이 대열의 등불이 되고 지표가 됨을 지상의 과업으로 삼은 동시에 종(縱)으로 5천 년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전통을 바로잡고 횡(橫)으로 만방의 지적소산(知的所産)을 매개하는 공기(公器)로서 자유·평등·번영의 민주사회건설에 미력을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잡지 창간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잡지창간사 #잡지 #창간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파업하는 급식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이 건넨 말, 세상이 변했다 파업하는 급식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이 건넨 말, 세상이 변했다
  2. 2 "용지 부족 50곳·투표 중지 22곳"...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 "용지 부족 50곳·투표 중지 22곳"...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
  3. 3 '부실선거' 논란 속 드는 의문, 왜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어야 하나 '부실선거' 논란 속 드는 의문, 왜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어야 하나
  4. 4 민주당은 선거 때 대체 뭘 한 건가…수상한 전조 현상 민주당은 선거 때 대체 뭘 한 건가…수상한 전조 현상
  5. 5 22살 두 청년의 다른 삶... 보육원 나온 이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22살 두 청년의 다른 삶... 보육원 나온 이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