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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이 더 이상 원망스럽지 않던 날

    [시로 읽는 오늘] 배수연 '여름방학'

    등록 2026.06.08 09:00수정 2026.06.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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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기자말]
    여름방학
    - 배수연

    우리는 냄새 때문에 조용해지기도 한다
    가령 거위가 도시락 가방을 열었을 때
    (딱히 불길한 것은 없어 보였지만)


    거위는 언제 어른이 될까
    가족이 더 이상 원망스럽지 않던 날
    거위는 자기가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 부리를 벌려보세요
    입에서 항문까지는 우리 몸의 긴 외부입니다
    도넛 구멍이 도넛의 내부가 아닌 것처럼—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나
    서로의 구멍으로 드나들며
    서로의 냄새로 밥을 짓고 나물을 삶고
    영원히 내부에 갇혀 있다 믿으면서

    이번 방학엔
    큰 개와 손전등이 중요해
    거위는 부리를 벌려 구멍 안으로 사라진 적이 있다

    거위와 놀고 싶었다
    방학 내내
    거위가 궁금했다


    내가 보고 싶었어?

    우리는 지평선을 보며 언덕 위에 누웠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면
    구멍이 펴졌다가 접혔다 어딘가에서
    아코디언 소리가 났다


    출처_시집 <여름의힌트와 거위들>, 문학과지성사, 2024
    시인_배수연: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쥐와 굴> <조이와의 키스> <여름의힌트와 거위들>이 있다.

     이질감은 오래 궁금해한 끝에 친밀함이 된다
    ▲ 이질감은 오래 궁금해한 끝에 친밀함이 된다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추천글

    '여름방학'은 친밀함과 이질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통과하며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장통의 기록이다. "냄새 때문에 조용해지기도 한다"라는 시구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가졌던 불편한 침묵을 떠올리게 한다. 도시락 가방을 열었을 때 풍기던 이질적인 냄새. 그것은 친구가 온몸으로 견디던 삶의 무게였다. 때로 친구는 차가운 시선을 피해 "부리를 벌려" 자신의 깊은 구멍 속으로 숨어버린다. 방학 내내 친구를 궁금해했던 마음 이면에는, 뒤늦게 찾아온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큰 개"와 "손전등"으로 서로의 구멍을 드나들며 냄새를 공유한다. 타인의 냄새를 맡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가족이 더 이상 원망스럽지 않던 날"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친구의 고백을 헤아리게 된다. 우리는 인생의 굴곡을 헤쳐 나가며 자신의 구멍이 아코디언처럼 펴졌다 접히는 일을 거듭 겪는다. 방학이 끝나고 훌쩍 커버린 키를 확인하듯, 고난을 견뎌낸 존재가 내는 깊고 그윽한 화음을 듣게 된다. (우은주 시인)
    #배수연시인 #여름방학 #여름의힌트와거위들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댓글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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