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한티재
인간의 삶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듯, 트랜스젠더의 삶 역시 몇 마디 말로, 더구나 오직 '트랜스젠더로서'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고 한다. 이 당부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태도로 쓰였는지 드러난다.
책은 이어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영국 국가통계청이 2021년 인구총조사에서 최초로 성소수자 인구를 파악했을 때,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일치합니까"라는 질문에 16세 이상 응답자의 0.5%가 '아니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국내 트랜스젠더도 약 25만 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그 혐오가 목숨을 앗아간다. 2021년 변희수 하사 외에도 부고가 잇따랐다. 저자의 말은 조용하지만 단호하다. 트랜스젠더들은 조롱을 위한 가상의 캐릭터도, 인터넷의 밈도 아닌, 현실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이 맥락에서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뜻밖에도 사소한 자리에서 나온다. 안주로 돈가스를 시키자 일행 중 한 명이 "남자들이 보통 돈가스를 좋아하는데 한희씨도 그러는 게 특이하네요"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다. 작은 말 한마디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성별을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이 압축되어 있다. 저자는 많은 트랜스젠더가 그 요구에 타협하거나, 때로는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거창한 투쟁 이전에, 일상이 이미 투쟁의 현장임을 이 장면은 조용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책은 인권활동가이자 변호사로서 저자가 마주해온 법적 투쟁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성별의 법적 인정, 혼인 평등, 차별금지법 등 그녀가 직접 참여해온 소송들을 통해,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묵직하게 전한다. 법은 때로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언어이지만, 그 언어로 싸워야만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저자는 그 느리고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당연한 권리를 위한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돈가스를 먹는 이유를, 이름을, 외모를, 삶의 방식을. 박한희는 그 요구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 요구가 얼마나 부당한지 글로, 법으로,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책은 트랜스젠더에 관한 책이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에 관한 책이다.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한 이야기. 아직 롤모델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기다림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필요한 목소리를 낸다.
무지개를 변호하다 -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의 삶과 생각
박한희 (지은이),
한티재,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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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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