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하여

[리뷰] 박한희 변호사의 <무지개를 변호하다>

등록 2026.06.02 16:03수정 2026.06.0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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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변호하다>(2026년 6월 출간)의 저자 박한희는 한국 최초로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한 트랜스젠더 변호사이자 인권 활동가이다. 박 변호사가 2017년 언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렇게 책까지 쓰게된 것은 개인적인 선택이기 이전에 "롤모델이 될 수 있는 트랜스젠더 어른을 만나고 싶다"는 한 청소년의 간절한 외침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책은 먼저 저자 자신의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고 커밍아웃해 가던 과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저자는 이를 일반화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트랜스젠더라고 정체화하는 시기와 계기,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책표지
책표지 한티재

인간의 삶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듯, 트랜스젠더의 삶 역시 몇 마디 말로, 더구나 오직 '트랜스젠더로서'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고 한다. 이 당부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태도로 쓰였는지 드러난다.

책은 이어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영국 국가통계청이 2021년 인구총조사에서 최초로 성소수자 인구를 파악했을 때,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일치합니까"라는 질문에 16세 이상 응답자의 0.5%가 '아니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국내 트랜스젠더도 약 25만 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그 혐오가 목숨을 앗아간다. 2021년 변희수 하사 외에도 부고가 잇따랐다. 저자의 말은 조용하지만 단호하다. 트랜스젠더들은 조롱을 위한 가상의 캐릭터도, 인터넷의 밈도 아닌, 현실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이 맥락에서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뜻밖에도 사소한 자리에서 나온다. 안주로 돈가스를 시키자 일행 중 한 명이 "남자들이 보통 돈가스를 좋아하는데 한희씨도 그러는 게 특이하네요"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다. 작은 말 한마디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성별을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이 압축되어 있다. 저자는 많은 트랜스젠더가 그 요구에 타협하거나, 때로는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거창한 투쟁 이전에, 일상이 이미 투쟁의 현장임을 이 장면은 조용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책은 인권활동가이자 변호사로서 저자가 마주해온 법적 투쟁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성별의 법적 인정, 혼인 평등, 차별금지법 등 그녀가 직접 참여해온 소송들을 통해,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묵직하게 전한다. 법은 때로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언어이지만, 그 언어로 싸워야만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저자는 그 느리고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당연한 권리를 위한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돈가스를 먹는 이유를, 이름을, 외모를, 삶의 방식을. 박한희는 그 요구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 요구가 얼마나 부당한지 글로, 법으로,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책은 트랜스젠더에 관한 책이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에 관한 책이다.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한 이야기. 아직 롤모델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기다림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필요한 목소리를 낸다.

무지개를 변호하다 -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의 삶과 생각

박한희 (지은이),
한티재, 2026


#트랜스젠더 #박한희 #무지개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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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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