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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혼' 상 수상 임재경 "떳떳하게 사는 게 기자의 멋"

제21회 '기자의 날' 기념식에서 '기자의 혼' 상 수상… "지식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을 실천해온 전범"

등록 2026.06.04 16:15수정 2026.06.0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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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이 4일 한국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기자의 혼’ 상을 수상했다. 시상자는 언론계 선배인 박기병 현 한국기자협회 고문.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이 4일 한국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기자의 혼’ 상을 수상했다. 시상자는 언론계 선배인 박기병 현 한국기자협회 고문. 김기만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은 한국 언론 민주화와 독재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대표적인 올곧은 언론인의 한 분이다. 90세에 이르기까지 딸깍발이 언론인의 의롭지만 외롭고 힘든 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원로이다.

한국기자협회(회장 박종현)는 제21회 '기자의 혼'상 수상자로 그를 선정하며 "지식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을 실천해 온 살아있는 전범(典範)"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제21회 기자의 날인 4일 오전 11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렸다.

임재경 전 부사장은 국내 모든 시상식을 통틀어 가장 짧을 것 같은 수상소감을 남겼다. 짧은 수상 소감이었지만 위트가 넘쳤다.

"(상 이름이) '기자의 혼'으로 돼 있다. 그런데 '기자의 혼'이라는 의미는 좋고, 특히 기자들 중에서 싸우다가 고생하신 분들, 그러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기자의 혼' 상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기자의 혼'이라는 말은 지나치다. 기자들의 혼이라고 하지 말고, '기자들의 멋'이라고 하면 좋겠다. '기자들의 혼'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하다. 기자들이 무시무시하게 살아야 하나? (저는) 재미없게 살았지만 기자도 재미있게 살고, '떳떳하게 사는 것'이 기자들의 멋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로 알려진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쥘 르나르(Jules Renard)의 시 '뱀(le serpent)'의 전문인 <너무 길다(trop long, too long)>가 생각났다. 그는 지난 2021년 단재상 언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은 축사에서 "70년대 유신체제를 함께 겪고, 그 후에도 우리를 이끌어준 임재경 선배가 '기자의 혼' 상을 받는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라며 "(임 선배가 지금) 90세인데 100세 넘어서까지 건강하시라"라고 축하를 보냈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중앙정보부 통제반이 우리와 함께 9시에 출근해서 편집국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는 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지시에 의해서 '이건 빼고, 이건 제목을 줄이고, 이건 넣고' 이런 식으로 언론 통제가 이루어지는 시절을 살았다"라며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나?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다"라고 지난 시기를 회고했다.

이어 "(이러한 언론 통제는) 10·26 지나서 전두환 (정권) 때까지 계속됐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말>지를 내고 보도지침 사건이 일어나면서 유신 이래 독재정권이 어떻게 언론을 옥죄어 왔는지를 드러내주었다"라며 "그때 분노하면서 한 시대를 살아온 임재경 선배가 90세가 되어 ('기자의 혼') 상을 받으신다니 이는 우리의 비극적인 시대에 벌인 언론의 투쟁을 기록하는 중요한 푯대가 될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전두환 신군부 규탄 '지식인 134명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강제해직에 투옥까지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의 회고록 <펜으로 길을 찾다> 출간기념회.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의 회고록 <펜으로 길을 찾다> 출간기념회. 한정희

임재경 전 부사장은 군부 독재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해직과 투옥을 겪고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새 언론 창간을 주도한 인물로, 한국 현대 언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61년 <조선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1974년 <한국일보>로 이직했다.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역임한 그는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를 규탄하는 '지식인 134명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강제로 해직되고 투옥까지 당한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1979년 10·26 사건(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이후 유신체제가 붕괴됐으나 정치, 사회 현실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1979년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했으며, 신문마다 전두환 사진이 뻔질나게 게재되는 등 군의 정치 개입이 이미 깊어지고 있었다. 전두환은 4월 중순 보안사령관과 합수본부장, 중앙정보부장(서리)을 겸임해 헌법상의 문민통솔 원칙과 중앙정보부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5월 초부터 "계엄 철폐", "군정 종식"을 외치는 대학생과 일부 시민 중심의 데모가 가열차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5월 15일 경 절정에 이르렀다. 1980년 4월 말, 송건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도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의 모임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서울 아현동 기독교 선교교육원에서 유인호(중앙대 교수), 이문영(고려대 교수), 이효재(이화여대 교수), 장을병(성균관대 교수, 국회의원), 한완상(서울대 교수)과 이돈명·홍성우 변호사 그리고 소설가 이호철과 언론계의 송건호· 임재경 등이 참여했다. 선언문의 서두는 이러했다.

국군은 정치적으로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국군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시정되어야 한다.

신군부의 정치 개입 반대 수위를 선언문에 어떻게 표현할지가 주요한 논쟁점이었다. 장을병 총장은 "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확신한다"라는 안을 제안했으나, 홍성우 변호사가 반대했다. 전두환의 겸직이 명백한 불법인데 "군 중립 확신은 무의미하고 안이한 현실인식"이라고 주장했다. 임재경도 이에 동조하며 "그 정도라면 구태여 선언문을 낼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고 강조했다.

결국 1980년 5월 15일 나온 '지식인 134인 선언'은 명확하게 전두환의 의표를 찌른 내용이 담겼다. 임재경은 지식인 선언 적극 참여로 인해 1980년에 강제 해직당하고 투옥된다. 그 후 미국 하버드대학 국제문제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한 뒤 귀국해 민주화 운동과 언론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지식인 134명 시국선언', 지식인들이 군사독재에 맞서 공개적으로 저항한 대표적인 사례

 4일 ‘기자의 혼’ 상을 수상한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이 동아투위 등 언론계 선후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4일 ‘기자의 혼’ 상을 수상한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이 동아투위 등 언론계 선후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제공

이 '지식인 선언'은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의 2차 쿠데타(계엄령 전국 확대) 직전, 지식인들이 군사독재에 맞서 공개적으로 저항한 대표적인 사례로 높이 평가된다. 1980년 5월 15일 발표된 '지식인 134 명 시국선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 뜻을 같이하는 1백 34명 일동은 민주 발전에 대한 과도정부의 모호한 태도,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경제위기 그리고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항의시위에 다만 강압적으로 맞서고 있는 당국의 무능무책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오늘의 난국은 기본적으로 지난 19년간 독재정권의 반민중적인 경제시책과 강권정치의 소산이다. 이는 민주발전을 저해하는 비상계엄령의 장기화로 빚어진 필연적인 사태 악화이다. 만약 국민이 납득할 만한 발전적 조치를 당국이 하루 빨리 취하지 않는다면 정국불안에 경제적 위기까지 겹쳐 회복할 수 없는 파국이 초래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에 다음 6개항을 요구한다.

1. 비상계엄령 즉시 해제
비상계엄령은 10·26, 12·12 사태 등 전적으로 집권층의 내부사정에 의해 선포된 것으로 이는 분명히 위법일 뿐만 아니라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2. 최규하 과도정권의 정권 이양 단축
최규하 과도정권은 평화적 정권이양의 시기를 금년 안으로 단축시켜야 하며, 그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현 과정은 의당 폐기될 유신헌법의 절차에 의한 시한적 정권으로서, 명분면에서나 체질면에서나 허약하여 난국의 극복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현 과정이 개헌에 관여하는 것은 명분 없는 개입이므로 이를 반대한다. 국회의 개헌 심의라는 정권 야욕에 사로잡힌 작태를 청산하고 민중의 의사를 올바르게 반영하여야 한다.

3. 학원 민주화 보장
학원은 병영적 성격을 일절 청산하고 학문의 연구와 발표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같은 자유를 위한 대학인들의 자율적 민주화 운동은 존중되어야 한다. 사학(私學)에 뿌리 박은 족벌재단, 교수 재임용제 등 학원의 민주화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독소적 운영방식과 제도는 폐기되어야 한다.

4. 언론자유 보장
언론의 독립과 자유는 민주발전에 가장 불가결한 요소로서 절대 보장되어야 한다. 언론인들은 그간의 잘못을 반성하고 특히 동아, 조선 두 신문사는 부당하게 해직시킨 자유언론 기자들을 전원 지체없이 복직시켜야 한다. 그들의 복직 없는 자유언론 표방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우리는 필요한 경우 성토, 집필 거부, 불매운동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그들의 원상회복을 위한 운동을 벌일 것이다.

5. 근로자 권리 보장 및 경제정책 전환
일터를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거나 기아 임금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을 위한 시급한 생활대책을 강구하여야 하며 근로자들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대기업 편중의 지원정책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시급히 구제·육성되어야 한다. 저곡가 정책으로 영농의욕을 잃은 농민들에 대한 정책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6. 군의 정치적 중립 (전두환의 직권 겸직 시정 요구)
일인독재의 영구화로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많은 민주인사에 대한 석방, 복권, 복직조치는 지체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국군은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국군보안사령관직과 중앙정보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오늘의 난국은 국민의 자발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만 극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이 정당한 요구가 외면되고 강권정치가 계속 자행된다면 과도정권은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역사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처럼 높이 섬기고 존경하고픈 언론인 선배들

 1989년 공안합수부에 의해 구속된 리영희 <한겨레> 고문이 8월 1차 공판 법정에 들어서는 가운데 임재경 초대 <한겨레> 부사장이 격려하는 모습.
1989년 공안합수부에 의해 구속된 리영희 <한겨레> 고문이 8월 1차 공판 법정에 들어서는 가운데 임재경 초대 <한겨레> 부사장이 격려하는 모습. 한겨레 제공

임재경 선생의 저서로는 <상황과 비판정신>, <반핵>, <펜으로 길을 찾다> 등이 있으며, 아랍 문제에 관심이 커 <아랍의 거부>, <아랍과 이스라엘의 특징> 같은 번역서도 냈다.

임마누엘 칸트는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두 가지 일이 내 마음을 끊임없이 가득 채운다. 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라고 썼다. 하늘에 별이 반짝이듯이 내 마음에는 '양심의 별'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하늘의 별처럼 높이 섬기고 존경하고픈 언론인 선배님들이 계시다. 네 분은 고인이고, 세 분은 생존해 계시며, 하나는 단체다. 출생 연도가 빠른 순서로 말하자면 송건호 선생(1927-2001), 리영희 선생(1929-2010), 박권상 선생(1929-2014), 장행훈 선생(1937-2018)으로 고인이 되셨다. 생존해 계신 분으로는 김중배(1934년 생), 임재경(1936년 생), 김삼웅 선생(1943년 생) 세 분이다. 단체는 51년 전인 1975년 자유언론수호 투쟁을 하다 쫓겨나 현재까지 한 분도 복귀하지 못하고 계신 '동아투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다.

동아투위가 자유언론수호 투쟁을 벌일 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있다가 기자들에게 동조해 사표를 던진 송건호 선생은 그 뒤 1988년 <한겨레>가 창간될 때 초대 사장을 맡았다. 언론인이면서 빼어난 현대사학자인 송건호 선생은 <민족지성의 탐구>,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등 뛰어난 저작을 남겼다. 리영희 선생은 기자와 교수로도 뛰어났지만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대화> 등의 저서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머리를 일깨우며, 죽비로 내리친 분이다.

<동아일보> 런던특파원 출신으로 <영국을 생각한다>는 저서로 유명한 박권상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필(후에 KBS 사장)은 IPI(국제언론인협회) 종신회원일 만큼 국제 경쟁력이 있는 언론인이었다. 1957년 '관훈클럽'을 만든 분이기도 하다. 장행훈 선생은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출판국장 출신으로 파리, 모스크바, 베를린 특파원과 유럽총국장을 역임했으며 4개 국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경쟁력의 기자였다. 그는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 7년간 정부가 언론인 자녀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거부한 유일한 언론인이기도 할 만큼 강직했다.

생존해 계신 세 분 중 김중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후에 한겨레신문과 MBC 사장을 역임했다. 명문으로 유명한 김중배 전 국장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의 물고문사에 대해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는 명칼럼으로 시민들을 울렸다.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전 대한매일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는 주로 재야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평전 20여 권 등 30권 이상의 책을 낸 부지런한 저술가 겸 언론인이다. 그는 다산 정약용, 백범 김구, 안중근, 신채호, 홍범도, 전봉준, 한용운, 장준하, 리영희, 신영복, 김대중, 노무현 등 엄청나게 넓은 영역의 인물 평전을 썼다. 오늘 상을 받은 임재경 선생은 강원 김화 출신으로 전북 군산고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65년 전인 1961년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동아투위는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DBS)의 기자, 아나운서, PD 180여 명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가 이듬 해인 1975년 3월 17일 134명이 회사 측이 동원한 폭력배들에게 끌려나간 후 강제로 해직되면서 구성했다. 동아투위 구성원 중 벌써 45명이 작고했으며, 동아일보 측은 동아투위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언론사에서 51년간의 강제 해직과 자유언론 수호 투쟁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가장 긴 기록이다. 대부분 80대 중후반이고, 90대도 있는 동아투위 위원들은 지금까지도 10월 24일(자유언론실천선언일)과 3월 17일(동아투위 구성일)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있다.

송건호.리영희.임재경의 공통점, "세상을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

 임재경 전 부사장은 군부독재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해직과 투옥을 겪고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새 언론(<한겨레>) 창간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임재경 전 부사장은 군부독재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해직과 투옥을 겪고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새 언론(<한겨레>) 창간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오마이뉴스

2015년 11월 2일 회고록 <펜으로 길을 찾다> 출판기념회에서 팔순의 언론인 임재경은 기자로서 어려움에 처하거나 회의가 들 때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럴 나이를 지나쳐버린 자신을 실패한 '데카당 문청(문학청년)'인 양 자조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이 회고록이야말로 그가 성공한 '문청'(문학청년)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물증이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철원군 김화읍 인근이 고향인 그가 소학교(초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해방, 야반도주에 가까운 남으로의 이주, 전쟁, 피난 등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마침내 언론인으로서 입신하고 활약해가는 과정을 가족과 동무들,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배합한 그의 글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이자 한 편의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그의 개인사는 그대로 르포 문학이었다.

회고록 제2부로 들어가면 언론인 임재경의 굴곡진 현대사 증언과 사회정의, 평등지향의 언론자유 분투기가 나온다. <조선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후배 신홍범 두레출판사 대표가 '발문'에서, 한국 언론사에 훌륭한 발자취를 남긴 언론계 선배로 송건호, 리영희, 임재경 세 사람을 꼽으면서 한 이야기는 유신독재 체제 하의 저항기를 거쳐 <한겨레> 창간과 그 이후까지를 돌아본 제2부 내용과 관련이 깊다.

신홍범 대표는 이들 셋이 언론인 노릇 똑바로 해보려다 언론 현장에서 추방당하고, 독재 정권의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가고, 그러면서도 굽힘없이 신념을 지키며 이 땅에 참된 언론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를 창간할 때 큰 역할을 맡고, 그곳에서 함께 일한 점도 같다고 평했다. 여기에 험난했던 시대에 이런저런 유혹을 뿌리치고 언론인으로서 멀고 험한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는 점을 추가하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 세 분들에게 언론이란 권력(정치·자본 권력)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조각이나 주워먹는 개가 아니었다. 권력과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비판하고 질타하는 '시민'이요 '국민'이었다. 언론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이었고, 세상을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이었다.

임재경은 1972년 10월 17일 계엄령과 함께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영구집권 체제로 간 또 한 차례의 박정희 쿠데타 때 지리멸렬했던 언론계를 "방성대곡은 기대할 수 없더라도 입 험한 기자들한테서 '개새끼들!' 하는 소리 하나 듣지 못할 정도로 편집국은 교교(皎皎, 매우 조용하다는 뜻)했다"라고 묘사했다. 그는 "변화의 표피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기자는 대서소의 서기와 다를 게 없다"라고 했다.

정부의 발표문을 신문에 옮기면서 국민을 의도적으로 기만할 생각으로 펜대를 굴리는 기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내용에 의문을 품고 분석, 탐사, 해설, 논평을 하지 않을 때 신문(방송)은 속이는 집권자의 공동정범으로 아무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 기자는 권력이 차린 밥상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개'가 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읊조리는 "이 사람아! 기자는 지사(志士)가 아니란 말이야. 우리는 월급쟁이일 뿐이야!"란 말은 그 문턱에 걸려 있는 위험 신호다. '레거시 미디어'나 '기레기'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고 기자들이 연성화된 고액의 봉급자가 되어 버린 오늘날, 90세 노병 임재경 기자가 회고록에서 한 일갈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은 4일 한국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기자의 혼‘ 상을 수상했다. 수상을 축하하러 온 가족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회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임 전 부사장.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은 4일 한국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기자의 혼‘ 상을 수상했다. 수상을 축하하러 온 가족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회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임 전 부사장. 오마이뉴스 구영식
덧붙이는 글 글을 함께 쓴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은 <동아일보> 노조위원장과 정치팀장으로 활동했고, 김대중 정부 시기 청와대 공보비서관과 춘추관장, 김원기 국회의장 공보수석을 지냈다. 19대 대선과 20대 대선 당시 각각 문재인 후보 언론멘토와 이재명 대선후보의 언론멘토단장을 맡기도 했다.
#임재경 #기자의혼상 #한국기자협회 #지식인134명시국선언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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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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