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공안합수부에 의해 구속된 리영희 <한겨레> 고문이 8월 1차 공판 법정에 들어서는 가운데 임재경 초대 <한겨레> 부사장이 격려하는 모습.
한겨레 제공
임재경 선생의 저서로는 <상황과 비판정신>, <반핵>, <펜으로 길을 찾다> 등이 있으며, 아랍 문제에 관심이 커 <아랍의 거부>, <아랍과 이스라엘의 특징> 같은 번역서도 냈다.
임마누엘 칸트는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두 가지 일이 내 마음을 끊임없이 가득 채운다. 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라고 썼다. 하늘에 별이 반짝이듯이 내 마음에는 '양심의 별'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하늘의 별처럼 높이 섬기고 존경하고픈 언론인 선배님들이 계시다. 네 분은 고인이고, 세 분은 생존해 계시며, 하나는 단체다. 출생 연도가 빠른 순서로 말하자면 송건호 선생(1927-2001), 리영희 선생(1929-2010), 박권상 선생(1929-2014), 장행훈 선생(1937-2018)으로 고인이 되셨다. 생존해 계신 분으로는 김중배(1934년 생), 임재경(1936년 생), 김삼웅 선생(1943년 생) 세 분이다. 단체는 51년 전인 1975년 자유언론수호 투쟁을 하다 쫓겨나 현재까지 한 분도 복귀하지 못하고 계신 '동아투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다.
동아투위가 자유언론수호 투쟁을 벌일 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있다가 기자들에게 동조해 사표를 던진 송건호 선생은 그 뒤 1988년 <한겨레>가 창간될 때 초대 사장을 맡았다. 언론인이면서 빼어난 현대사학자인 송건호 선생은 <민족지성의 탐구>,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등 뛰어난 저작을 남겼다. 리영희 선생은 기자와 교수로도 뛰어났지만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대화> 등의 저서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머리를 일깨우며, 죽비로 내리친 분이다.
<동아일보> 런던특파원 출신으로 <영국을 생각한다>는 저서로 유명한 박권상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필(후에 KBS 사장)은 IPI(국제언론인협회) 종신회원일 만큼 국제 경쟁력이 있는 언론인이었다. 1957년 '관훈클럽'을 만든 분이기도 하다. 장행훈 선생은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출판국장 출신으로 파리, 모스크바, 베를린 특파원과 유럽총국장을 역임했으며 4개 국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경쟁력의 기자였다. 그는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 7년간 정부가 언론인 자녀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거부한 유일한 언론인이기도 할 만큼 강직했다.
생존해 계신 세 분 중 김중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후에 한겨레신문과 MBC 사장을 역임했다. 명문으로 유명한 김중배 전 국장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의 물고문사에 대해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는 명칼럼으로 시민들을 울렸다.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전 대한매일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는 주로 재야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평전 20여 권 등 30권 이상의 책을 낸 부지런한 저술가 겸 언론인이다. 그는 다산 정약용, 백범 김구, 안중근, 신채호, 홍범도, 전봉준, 한용운, 장준하, 리영희, 신영복, 김대중, 노무현 등 엄청나게 넓은 영역의 인물 평전을 썼다. 오늘 상을 받은 임재경 선생은 강원 김화 출신으로 전북 군산고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65년 전인 1961년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동아투위는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DBS)의 기자, 아나운서, PD 180여 명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가 이듬 해인 1975년 3월 17일 134명이 회사 측이 동원한 폭력배들에게 끌려나간 후 강제로 해직되면서 구성했다. 동아투위 구성원 중 벌써 45명이 작고했으며, 동아일보 측은 동아투위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언론사에서 51년간의 강제 해직과 자유언론 수호 투쟁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가장 긴 기록이다. 대부분 80대 중후반이고, 90대도 있는 동아투위 위원들은 지금까지도 10월 24일(자유언론실천선언일)과 3월 17일(동아투위 구성일)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있다.
송건호.리영희.임재경의 공통점, "세상을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

▲ 임재경 전 부사장은 군부독재에 맞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해직과 투옥을 겪고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새 언론(<한겨레>) 창간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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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일 회고록 <펜으로 길을 찾다> 출판기념회에서 팔순의 언론인 임재경은 기자로서 어려움에 처하거나 회의가 들 때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럴 나이를 지나쳐버린 자신을 실패한 '데카당 문청(문학청년)'인 양 자조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이 회고록이야말로 그가 성공한 '문청'(문학청년)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물증이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철원군 김화읍 인근이 고향인 그가 소학교(초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해방, 야반도주에 가까운 남으로의 이주, 전쟁, 피난 등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마침내 언론인으로서 입신하고 활약해가는 과정을 가족과 동무들,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배합한 그의 글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이자 한 편의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그의 개인사는 그대로 르포 문학이었다.
회고록 제2부로 들어가면 언론인 임재경의 굴곡진 현대사 증언과 사회정의, 평등지향의 언론자유 분투기가 나온다. <조선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후배 신홍범 두레출판사 대표가 '발문'에서, 한국 언론사에 훌륭한 발자취를 남긴 언론계 선배로 송건호, 리영희, 임재경 세 사람을 꼽으면서 한 이야기는 유신독재 체제 하의 저항기를 거쳐 <한겨레> 창간과 그 이후까지를 돌아본 제2부 내용과 관련이 깊다.
신홍범 대표는 이들 셋이 언론인 노릇 똑바로 해보려다 언론 현장에서 추방당하고, 독재 정권의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가고, 그러면서도 굽힘없이 신념을 지키며 이 땅에 참된 언론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를 창간할 때 큰 역할을 맡고, 그곳에서 함께 일한 점도 같다고 평했다. 여기에 험난했던 시대에 이런저런 유혹을 뿌리치고 언론인으로서 멀고 험한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는 점을 추가하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 세 분들에게 언론이란 권력(정치·자본 권력)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조각이나 주워먹는 개가 아니었다. 권력과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비판하고 질타하는 '시민'이요 '국민'이었다. 언론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이었고, 세상을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이었다.
임재경은 1972년 10월 17일 계엄령과 함께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영구집권 체제로 간 또 한 차례의 박정희 쿠데타 때 지리멸렬했던 언론계를 "방성대곡은 기대할 수 없더라도 입 험한 기자들한테서 '개새끼들!' 하는 소리 하나 듣지 못할 정도로 편집국은 교교(皎皎, 매우 조용하다는 뜻)했다"라고 묘사했다. 그는 "변화의 표피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기자는 대서소의 서기와 다를 게 없다"라고 했다.
정부의 발표문을 신문에 옮기면서 국민을 의도적으로 기만할 생각으로 펜대를 굴리는 기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내용에 의문을 품고 분석, 탐사, 해설, 논평을 하지 않을 때 신문(방송)은 속이는 집권자의 공동정범으로 아무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 기자는 권력이 차린 밥상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개'가 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읊조리는 "이 사람아! 기자는 지사(志士)가 아니란 말이야. 우리는 월급쟁이일 뿐이야!"란 말은 그 문턱에 걸려 있는 위험 신호다. '레거시 미디어'나 '기레기'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고 기자들이 연성화된 고액의 봉급자가 되어 버린 오늘날, 90세 노병 임재경 기자가 회고록에서 한 일갈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은 4일 한국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기자의 혼‘ 상을 수상했다. 수상을 축하하러 온 가족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회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임 전 부사장.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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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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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혼' 상 수상 임재경 "떳떳하게 사는 게 기자의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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