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한인회 결성과 이념을 넘어선 통합의 불꽃

[화중 한인회와 함께하는 임정로드: 상하이와 충칭 사이] 3부 난창

등록 2026.06.04 16:01수정 2026.06.0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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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성 루산(여산) 김구, 김원봉, 류자명 등과 중국 장개석 총통이 회담을 했던 루산(여산) 전경
▲장시성 루산(여산) 김구, 김원봉, 류자명 등과 중국 장개석 총통이 회담을 했던 루산(여산) 전경 장시성 여행네트워크

화중 지역 3개 한인회가 함께하는 '역사 복원 프로젝트', 그 대미를 장식할 세 번째 기록은 장시성(江西省)의 성도 난창(南昌)입니다.

우한(武漢)에서 항일 무장 투쟁의 든든한 기틀을 확인하고 , 창사(長沙)임시정부의 짧은 평화와 남목청의 시련, 그리고 영원한 한국인 류자명 선생의 이야기를 살피고 우리의 발걸음은 이제 화중 임정로드의 종착지인 난창으로 향합니다.

장시성과 난창은 단순한 피난처나 군사적 기착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중국에서 '한인회'라는 단어가 최초로 시작된 뜻깊은 요람이며, 좌우를 망라한 독립운동의 거두들이 이념을 넘어 굳건한 연대를 이뤄낸 외교의 최전선이기도 했습니다. '장시성 정착 1호 대한민국 교민'이자 장시성 한인회를 이끄는 박광보 회장의 시선으로, 이 뜨거웠던 연대와 투쟁의 역사를 샅샅이 파헤쳐 봅니다.

'비밀 단체'에서 '무장 군사 조직'으로 발전하게 된 의열단

박차정 의사 김원봉의 아내이자 조선 의용대 핵심 대원이었던 박차정 의사
▲박차정 의사 김원봉의 아내이자 조선 의용대 핵심 대원이었던 박차정 의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난창은 의열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1926년 신익희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출신 의열단원 성주식 연성대장이 훈련시킨 500여명의 군사조직인 분용대(奮勇隊)를 난창에 주둔중인 장개석을 만나 한중 군사 합작을 교섭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이종희 지사는 난창 중국 국민혁명군 부대에 근무하며 의열단 난창지부원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듬해인 1927년에는 김원봉과 의열단 핵심 요원들이 황포군관학교로 맺어진 주은래와의 인맥으로 '난창 무장 봉기'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의열단은 실전을 경험하며 '무장 군사 조직'으로 발전하게 되며 훗날 '조선 의용대'를 창립하는 계기가 됩니다.

대한민국과 중국의 역사적 결맹(結盟), '장시성 루산(여산廬山) 회담'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동아시아의 정국이 요동치던 시기, 난창과 인접한 장시성 북부의 명산 루산(廬山)에서 역사적인 회담이 열립니다. 중국 국민정부 장개석 총통의 초청으로 김구, 김원봉, 류자명 등 각 노선을 대표하는 한국 독립운동의 거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사상과 파벌의 차이를 잠시 접어두고, 오직 '조국 독립과 한중 항일 전선 구축'이라는 목표 아래 중국 수뇌부와 연대를 논의했습니다. 장개석은 루산 회담을 통해 한·중 연합 항일전선 구축을 제안하며, 한국 독립운동 진영에 대한 공식적이고 대폭 확대된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이 루산 회담의 결과는 이듬해 우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로서 훗날 우리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에도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장시성 산하를 적신 조선의용대의 붉은 피

유진산 장시성에서 중국 최초의 한인회를 결성한 옥계 유진산 선생
▲유진산 장시성에서 중국 최초의 한인회를 결성한 옥계 유진산 선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루산 회담의 결과로 1938년 10월 우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됩니다. 그리고 곧 후난성과 장시성 전선에 직접 투입되었습니다. 1938년 12월 3일, 조선의용대 제3분대는 후난성 헝양을 출발, 주저우를 거쳐 장시성 난창에 도착하며 치열한 공작과 전투를 펼쳤습니다.

난창이 함락되던 1939년 봄을 전후하여, 조선의용대는 장시성의 곤륜산, 구룡산, 오동산 일대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일본군과 수십 차례의 맹렬한 유격전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1939년 2월,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서 김원봉의 아내이자 핵심 대원이었던 박차정 의사가 전장에서 중상을 입었습니다. 박차정 의사는 부상으로 후유증을 앓다가 1944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듯 조선의용대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조국 독립을 향한 투쟁의 흔적을 장시성 산하에 붉게 새겼습니다.

타향에 뿌리내린 동포애, 중국 최초의 한인회가 결성된 장시성

나라 잃은 한인 동포들에게 장시성과 난창은 생존을 위한 든든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 유진산 선생은 임시정부와 수시로 연락하며 장시성 일대에 이르면서 중국 최초의 '한인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이 최초의 한인회 조직은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동포들을 하나로 단합하게 하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은밀하게 지원하는 강력한 후방 기지였습니다. 타국에서 한인 공동체를 조직하여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유진산 선생과 한인회 일원의 고귀한 헌신은, 오늘날 중국 한인 사회가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역사적 뿌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화중 임정로드, 끝나지 않은 역사 복원의 길

장시성 한인회장 박광보 유진산 선생의 중국 최초의 한인회 창립 자료를 조사하기 난징까지 찾아간 장시성 한인회 박광보 회장
▲장시성 한인회장 박광보 유진산 선생의 중국 최초의 한인회 창립 자료를 조사하기 난징까지 찾아간 장시성 한인회 박광보 회장 박광보

장시성과 난창은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스쳐 지나간 단순한 기착지가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한인회가 조직되어 서로를 끌어안았던 '따뜻한 요람'이었고, 루산 회담을 통해 분열을 극복한 '통합의 상징'이었으며, 조선의용대가 목숨 바쳐 싸운 '항전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우한에서 시작되어 창사를 거치고, 난창에서 마무리한 금번 화중 임정로드 연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 재중 한인들과 대한민국이 더욱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야 할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잃어버린 화중 한민족의 숭고한 역사를 찾는 우리의 끈질긴 여정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난창 #장시성 #한인회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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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관련된 역사 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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