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04 17:24수정 2026.06.04 17:2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과 수제 카메라로 담은 사과
김민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가 이토록 일상 속에 깊이 들어올 줄 생각하지 못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말하는 '매끄러움'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은 느낌. 그리하여 내 삶이 아무런 불편함이 없고, 고통도 없고, 깊이는 점점 얕아지는 삶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글쓰기를 할 때에는 챗GPT의 도움 없이 초안을 쓰고, 최소한의 검열(?)만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왜냐하면 6개월 정도 챗GPT의 도움을 받아가며 글을 쓴 결과 글 쓰는 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졌으며, 상상력도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결정은 아주 잘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익숙하게 챗GPT가 써 준 문장들을 인간이 쓴 것처럼 다듬는 작업이나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병과 찔레 수제 카메라로 담은 화병
김민수
나의 일상에서 사진은 아주 중요하다. 사진을 담고, 그 사진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거의 매일 해왔다. 그렇게 매일 할 수 있었던 것은 필름 카메라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는데, 필름 카메라와 비교하면 비용 절감이나 편리성 뿐 아니라 작업 속도의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그래서 그 이후 20여 년 디지털 카메라도 작업을 해왔다.
간혹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있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불편함과 기다림과 비용 등은 다시 디지털 카메라를 들게 했다.

▲나비란과 화병 수제 카메라도 담은 화병
김민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접점이 없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아날로그처럼 찍되 디지털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카메라를 고민했다. 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광학 메커니즘은 이해했지만, 실제로 모형을 만들어보면 생각했던 것처럼 결과물을 도출해 내질 못했다. 렌즈의 문제, 초점판의 문제, 조명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6개월 여의 고민 끝에 유리 초점판을 사용하는 자바라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내가 담고 싶었던 사진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직접 만든 수제 카메라가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일단은 '정물 사진'을 담고 다양한 '초점판'을 만드는 과정까지 내가 생각했던 수제 카메라의 50% 정도를 완성했다.
이 기사에 소개하는 사진들은 수제 카메라로 담은 이미지들이다. 흐릿하고, 이런저런 스크래치가 있고, 몽환적이다. 디지털과 결합되었지만 매끄럽지 않고 거칠다. 다 보여주지 않음으로 보는 이들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진이라고 할까?

▲안개꽃과 프레지아 수제 카메라로 담은 사진
김민수
이 행위는 나 나름대로 AI시대의 매끄러움에 대해 반기를 드는 행동이고, 그냥 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가고 싶지 않다는 저항 같은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은퇴 후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냥 시간의 흐름 속에 압도되거나 단순히 양적인 삶을 오래 산다면 노년의 삶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년의 삶을 살아갈 때에 "사진은 참 좋은 취미다"라고 주장하면서 '셔터 누를 힘만 있으면 노년에도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노년의 문지방을 넘어보니 그 말은 틀렸다. 셔터 누를 힘 뿐 아니라 시력도 있어야 하고, 카메라를 들고 다닐 힘도 있어야 하고 기타 등등... 사진을 담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백량금과 화병 수제 카메라로 담은 사진
김민수
그래서 이 카메라를 생각했던 것이다. 카메라가 조금 커서 휴대성은 약하지만, 실내에서 작업하기에는 적합하고, 조명을 이용해야 하기에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힘 들이지 않고 언제든지 작업을 할 수 있고, 야간에 작업하기에는 더더욱 좋다.
며칠 전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십 여 년 만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놓고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휴대폰으로 추억을 몇 장 담기는 했지만, 카메라에서 해방되니 눈과 마음에 더 많은 것을 담아오게 되었고, 짐도 줄어드니 몸도 가벼웠다.
휴대폰 카메라의 보급으로 전 국민이 카메라맨이 된 시대를 살면서, 한 장을 담기 위해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런 사진을 담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AI시대, 디지털 시대의 매끄러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혹은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행위라고 자평하며 작은 성취를 대견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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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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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AI 시대의 '매끄러움'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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