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05 10:04수정 2026.06.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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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촬영 포항 월포해수욕장
최옥화
주기적으로 바다가 보고 싶다. 바다가 내 영혼의 메마름을 적셔주리라는 믿음은 언제부터였을까?
돌이켜보면 바다가 고향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바다 수영도 잘 못하는 내가 바다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은 여고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등의 끝도 없는 생각이 극에 달했을 때다. 인류의 기원이 바다에서 시작되었을 거란 어느 학설을 접하고부터, 내 유전자에도 바다로 향하는 그리움이 새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나의 소망은 집으로부터 탈출하는 '자유'였으니까. 지금도 자유를 찾아 훌쩍 떠나고 싶은 건 고질적 습성이다. 그럴 때 꼭 포함되는 곳은 '바다가 있는' 장소다.
지난 6월 첫날, 이른 아침 포항 바다에 도착했다.

▲파도 포항 월포해수욕장
포항 월포해수욕장
날이 맑아서 파도가 잔잔할 거라 예상했으나 의외로 파도가 꽤 높았다. 예전에는 이렇게 탁 트인 바다를 보며 밀려오는 파도에 내 마음을 담아 하염 없이 그네를 타는 듯한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얼마 전 운해 가득한 바다를 담은 한 장의 사진을 본 후로는 바다를 보는 시선이 조금 변했다. 고요한 바다가 좋아진 것. 사진 작가의 말씀으로는 운해 가득한 바다는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한 계절에나 가능한데, 6월에 만날 확률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이럴 때는 노출 시간을 길게 하면 파도의 흔적이 지워져서 파도가 운해처럼 보인다고 한다.
노출 시간을 길게 하는 방법으로 전문 작가들은 ND 필터를 렌즈에 끼워서 셔터 속도를 느리게 하는 방법을 쓴다고 하였다. ND 필터는 선글라스처럼 렌즈에 빛을 차단하는 효과를 준다. 그러면 카메라는 자동으로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하여 셔터 속도를 길게 만들어서 느리게 찍는 시스템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거친 파도가 흔적만 남고 고요한 운무가 깔린 것처럼 된다. 성난 바다를 잠재우는 것이다.
퇴직 후 글 쓰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마음이 널뛰듯 한다. 글을 잘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잘하고 싶은 일이 되고 말았다. 나태주 시인은 이런 고민에 대한 답으로 "잘하는 거 말고 좋아하는 걸 하라"고 했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잘하는 걸 하다 보면 더 잘하려 하게 되고, 그래서 힘들고 지치니 좋아하며 끝까지 하라는 말씀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말고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면 된다고 했는데, 이게 말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성난 파도처럼 몰려오는 외부의 인정과 평가에 휘둘려 생채기 나고, 다른 사람과 비교되어 의기소침해지면 점점 더 글이 안 써지고, 조급함과 답답함으로 마음이 소란스럽다. 거칠게 달려오는 파도는 해안선을 밀어내며 포말이 되어 흩어지지만 뒤이어 더 큰 파도가 덮치고 또 밀려온다. 마음을 다스리려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겨우 가라앉은 마음에 작은 돌이라도 날아 오면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파도가 인다.
출렁이는 바다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필터 하나를 끼우고 찍어도 파도를 운무처럼 만들기엔 노출 시간이 부족하다. 더 느리게 찍기 위해 필터를 두 개 겹 씌운다. 그제야 겨우 파도의 흔적이 사라지고 수평선과 하나 되어 바다가 고요해진다.

▲장노출 바다 포항 월포해수욕장
포항 월포해수욕장

▲장노출 바다 포항 월포해수욕장
포항 월포해수욕장
고요한 바다는 아름답다. 구름인지 운무인지 구분 없이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하다. 출렁이는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한 물속으로 물밑 모래알까지 투명하게 보인다. 투명하게 내 감정도 보이는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의 필터는 무엇일까? 마음의 속도를 느리게 느리게 만들어 주는, 그래서 필터를 끼우는 순간 널 뛰는 마음이 고요해지는 그것. 바다를 잠재우듯 내 마음을 잠재우는 필터를 찾아야겠다. 그래서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 마음이 고요해지면 세상을 넓게, 너그럽게 볼 수도 있으리라. 바다처럼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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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교사와 교장으로 걸어온 교단을 마치고 시를 쓰면서 블러그 운영 및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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