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
박형숙
드뷔시의 음악에서 물결처럼 흐르는 피아노 소리는 모네의 그림에서 보이는 빛의 번짐과도 많이 닮았다. 처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본 것은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 아침 신문을 뒤적이다가 한 귀퉁이에서 전시회 소식을 접했다. 그날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섰다.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지하철역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본 모네의 그림은 대부분 수련이었다. 말년에 시력을 잃은 뒤에도 그렸다는, 형태를 알 수 없는 빛의 산란 같던 그림들. 어슴푸레한 눈길 속에도 빛났을 노화가의 열정이 그림 위에 어른거렸다.
모네의 <루앙 성당> 연작을 실물로 본 것은, 몇 년 전 파리 여행 때였다. 같은 성당을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다른 색채로 그려낸 그림. 오르세 미술관에는 다섯 점의 그림이 있었다.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성당의 형체는 흐릿했고 색채 또한 번진 듯 모호했다. 모네는 그 연작을 그리는 당시 악몽을 꾸었다.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나는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고 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목신의 오후>
드뷔시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목신의 오후 전주곡> 때문이었다. 대학생 때 학교 가까운 사거리에 '목신의 오후'라는 카페가 있었다. 단 한 번 그 카페에 가 본 적이 있다. 그 카페에서 친구와 친구의 선배를 기다리다가 결국 만나지 못했다. 스물한 번째 생일날의 일이었다. 그때 만나지 못했던 친구의 선배는 지금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는 이가 되어 있으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여름에 들으면 곧 가수(假睡) 상태에 빠진다. 나른하고 몽롱하며 분명한 데가 없기 때문. 목신(木神)은 그리스 신화에서 판으로 불리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염소 같기도 한 모습을 한 신이다. 드뷔시는 이 곡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말라르메의 시를 자유롭게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목신의 갖가지 욕망과 꿈이 열기 속을 헤맨다. 님프와 나이아드는 겁을 먹고 달아나고, 목신은 깊은 잠에 빠져들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꿈에 취한다."
말라르메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시인이다. 시어에서 사전적 의미를 가능한 한 제거하려고 애쓴 그의 시를 읽으면 우리는 언어의 미로에서 헤매게 된다.
드뷔시의 음악 또한 그렇다. 목신의 나른한 낮잠과 꿈 사이를 오가는 음악. 이 몽롱함은 생활인의 감각에 쉽게 와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번 사로잡히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드뷔시는 목신의 피리 밑바닥에 남겨진 꿈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꿈. 플루트의 가느다란 관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관능.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꿈에 이끌릴지도 모른다.

▲ 헝가리 화가 팔 시니이 메르세의 작품 <파운>.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모티프로 삼은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에서 목신이 피리를 불어 요정들을 유혹하는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바다>
밤인데도 기온은 식지 않는다. 이럴 때는 시원한 바다를 떠올리면서 상상의 휴가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연히 떠오르는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렸던 바다가 떠오른다. 어디였을까? 인상파 화가들이 자주 그리곤 했던 노르망디 해안의 바다. 모네가 80여 장을 그렸다는, '코끼리 바위'로 유명한 '에트르타(Étretat)' 해안가가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마티스가 점묘법에 영향을 받아 그린 <사치, 향락, 정적>의 지중해 바다도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바다일까? 어느 것이 진짜 바다일까?
드뷔시의 <바다>는 디종의 방 안에서 드뷔시가 상상한 바다이다. 자신의 주관적 인상을 오케스트라로 만든 한 폭의 그림 같은 곡. 이 곡을 감상하려면 눈을 감고 바다를 떠올려야 한다. 해가 떠오르기 전 어두운 바다. 경계가 불분명한 고요한 수면 위에서 한순간 번쩍, 해가 떠오른다. 파도는 일렁이고 해는 점점 높아져 정오의 태양이 된다는 것이 1악장의 내용. 2악장은 파도의 유희이다. 점묘법을 찍듯이 악기를 꾹꾹 눌러 파도의 유희를 표현했다. 그리고 3악장의 '바람과 바다의 대화'. 연주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마치 파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처럼.
드뷔시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전통 음악인 '가멜란(Gamelan)'을 듣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우리가 드뷔시의 음악에서 느끼는 낯섦은, 사실은 서양의 음악에서 동양적인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뿐이 아니다. 드뷔시는 1905년 교향시 <바다>의 첫 악보를 출판할 때,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판화를 악보의 '표지'로 쓰겠다고 출판사에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유럽에 소개된 후 자포니즘을 낳게 한 우키요에의 대표적인 판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말이다.

▲ 2025년 국립청주박물관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 전시회에서 공개된 가츠시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판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박형숙
이 판화는 1831년 처음 발매되었을 당시, 대략 5000장에서 최대 8000장 가까이 인쇄되었다가 현재 전 세계에 100여 개가 남아 있다. 그중 하나인 진품을 2025년 9월 국립청주박물관의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라는 전시회에서 감상한 적이 있었다. 이중 삼중의 유리와 어두운 조명 아래 놓인 판화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이토록 작은 판화가 서양인의 감성을 사로잡다니.
드뷔시는 상징주의 문학과 인상주의 미술을 자신의 음악 안으로 끌어들여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인상주의 음악을 창시했다.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생활은 흑역사이다.
그에게 배신당하여 권총 자살을 시도한 여성만도 두 명이나 되고, 부유했던 엠마와 재혼한 후 낭비와 사치를 일삼아 재산을 탕진했으며 말년에는 암에도 걸렸다. 놀라운 점은, 첫 번째 결혼 생활 중에 시작했다가 엠마와의 재혼 중에 완성한 <바다>가 완숙기의 걸작이라는 점이다. 교향시 <바다>는 사생활의 흑역사조차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선율로 다 씻어 내린다.
드뷔시의 <바다>를 다 들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바다'를 찾아 나설 때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희롱하는지, 그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드뷔시의 '프렐류드 곡집'에 수록된 <아마빛 머리의 소녀>가 <소리와 향기는 저녁 공기 속을 떠돌고>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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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소설집 3권과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에 관한 논문을 썼다. 중학교 교사로 국어를 가르쳤고 대학에서 소설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작가. 문학 외에도 다양한 예술 장르를 좋아하고 즐겨 감상한다. 문학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문학과 예술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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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시도한 여성만 2명... 흑역사로 남은 유명 작곡가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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