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07 15:54수정 2026.06.0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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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살면서 처음으로 단독 주택을 구매했다. 그때 바로 옆집에 살던, 튀니지에서 오래전에 이민을 온 이웃을 만났다. 우연히도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였다. 비록 언어의 장벽은 있었지만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마당과 정원이 있는 주택이다 보니 서로 외부로 노출되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소통하다 보니 어느새 부쩍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3층짜리 콘도(한국의 아파트 형태)로 이사를 했다. 집으로 올라갈 때 이용하는 통로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사는 곳이 3층이다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물리적인 시간 자체는 아주 짧았다. 하지만 걸어서 오르내릴 수 있는 3층임에도 매번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 보니, 오히려 그 좁은 공간에서 잠시나마 이웃과 머무는 시간의 밀도는 훨씬 높아졌다. 엘리베이터는 집을 오가는 길목에서 이웃들과 가장 자주 마주치는 공간이자 소중한 소통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만나 눈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대화라도 한 마디 나누다 보면, 그 찰나의 순간들이 쌓여 한층 더 친밀한 관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집 바로 옆인 306호에는 '린다'라는 이름을 가진 60대 중후반의 캐네디언 여성이 살고 있었다. 이 콘도는 소형부터 중대형까지 평형이 다양해 여러 이웃들이 모여 산다. 학교 선생님으로 교직에서 은퇴했다는 린다는 혼자 지내고 있었다. 사적인 가족사까지 깊숙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사 온 후 거의 10년 동안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가볍게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인 관계였다.

▲ 콘도 복도 전경
김종섭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린다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친구와 함께 자동차로 2주일 동안 캐나다 순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집에서 키우는 반려식물들을 돌봐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아내는 지체 없이 "물론이지요!"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가족이 장기 여행을 갈 때도 서로의 식물을 품앗이하듯 돌봐주기로 자연스럽게 약속했다.
사실 반려식물을 보살핀다고 해봐야 주기적으로 물을 주는 것이 전부이다. 린다는 내심 미안했는지, "집 키를 줄 테니 편하게 드나들며 물을 줄래? 아니면 화분 수가 얼마 안 되니 너희 집으로 가져가서 돌봐줄래?" 하며 우리가 편한 쪽으로 결정하라고 했다.
며칠 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어제 린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내는 린다의 집으로 건너가 화분 세 개를 받아왔다. 그중 하나는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나머지 두 개는 거실에 예쁘게 자리 잡았다. 아내의 손에는 화분뿐만 아니라 린다의 집 현관 열쇠와 우편함 열쇠까지 함께 들려 있었다. 린다는 여행 중에 가끔 우편물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 린다의 집에서 맡아온 세 개의 반려식물 화분, 거실과 베란다에 자리 잡은 모습
김종섭
요즘은 국경을 초월해 어디를 가든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면서도 서로 통성명조차 하지 않고 낯설게 살아가는 세대가 참 많다. 그런 삭막한 세상 속에서 린다는 자신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현관 열쇠를 우리 부부에게 온전히 맡기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지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특별한 왕래나 부딪침 없이 조용히 살아왔지만, 그 긴 세월 동안 곁에서 지켜본 우리의 모습 속에서 린다는 깊은 신뢰를 느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괜스레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진다.
타국 땅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캐네디언 이웃을 만난 것은 참 커다란 행운이다. 흔히 주거 지역을 고를 때 주변 환경과 인프라를 중요하게 보지만, 결국 삶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건 '이웃과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웃 사촌조차 만나기 힘든 이 시대에, 이웃에게 따뜻한 신임을 받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거실 한편에 놓인 린다의 화분이 오늘 따라 더욱 푸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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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거주,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다음'브런치'활동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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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 좀 봐줄래요?" 여행 떠난 이웃이 맡긴 현관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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