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5년... 해남에서 고정희 시인을 기리며

민중에 대한 사랑의 시를 완성한 시인... 시인의 생가에서 열린 기억식

등록 2026.06.08 17:38수정 2026.06.0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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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삶은 행복한 것 같다. 많은 사람의 삶 중에서 시인의 삶은 시를 통해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들녘의 황토빛이 자연과 함께 아름답게 채색되어 가고 있는 남도땅, 이 들녘에서는 한창 모내기를 하고, 마늘을 캐고, 양파를 캐고, 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은 다 바삐 손놀림을 해야 하는 시기다. 시인이 유독 많은 땅끝 해남, 해남 땅을 기억하게 하는 시인 중에는 고정희 시인(1948~1991)이 있다. 1980년대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고정희 시인이 살았던 동네가 삼산면 송정마을이다. 들판 건너 마을에 '혁명시인'이라 일컫는 김남주 시인(1946~1994)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정희 시인이 가신지도 벌써 35년이 흘렀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매년 그녀가 태어난 마을과 묘소를 찾아 추모제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6일 '고정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시인의 생가와 무덤 앞에서 그녀의 지나간 삶을 애도하는 기억식을 가졌다. 추모제와 함께 이 기간 중에는 시인을 기억하기 위한 고정희 영화제, 시인을 기리는 북콘서트, 시 그림 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고정희 시인의 삶을 기억하며

고정희 시인의 묘 마을뒤 솔숲 아래에 자리잡은 묘지에도 금계국이 화려하다
▲고정희 시인의 묘 마을뒤 솔숲 아래에 자리잡은 묘지에도 금계국이 화려하다 정윤섭

고정희 시인은 흐드러지게 핀 길가의 꽃처럼 그의 시가 전성기를 맞이할 때, 홀연히 1991년 6월 9일 지리산 계곡에 휩쓸려 지리산의 혼이 되었다. 아득하고 암울한 시대에,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다 간 그의 삶을 위로하듯, 마을로 들어가는 길 옆에는 노랗게 핀 금계국이 초여름 바람에 가녀린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시인이 태어난 송정마을 앞 들판은 모내기하는 농부들의 바쁜 손놀림이 한창이다. 인적 없는 마을도 이때 만큼은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활기차다. 고정희 시인이 태어난 송정마을 뒤 푸른 소나무 동산, 그 아래에 고정희 시인은 잔잔한 저수지를 내려다 보며 잠들어 있다. 그녀의 무덤 옆에도 노란 금계국이 피어있다.

무덤 아래 펼쳐지는 저수지와 들판의 모습이 목가적이다. 무덤 앞 묘비석에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자취가 간략히 새겨져 있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묘비석의 기억으로 영원히 살아남는다. 고정희 시인의 무덤 뒤편은 시인의 시에도 등장하는 아름드리의 소나무 숲이다. 시인의 생가와 묘를 방문하면 소나무 숲길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한번 걸어볼만 하다.


고정희 시인은 삼산면 송정마을에서 태어나 성장, 20대에 접어들면서 고향을 떠나 광주, 서울로 이어지며 대부분 객지의 생활이 이어진다. 그러나 고향 송정마을은 어머니와 같은 영원한 안식처였다. 지난 1987년에 나온 <지리산의 봄>에 수록된 <땅의 사람들8 –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는 고향의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이 가득하다.

고정희 시인 추모행사 제35회째 고정희 시인 추모제가 시인의 생가마을 묘지에서 있었다.
▲고정희 시인 추모행사 제35회째 고정희 시인 추모제가 시인의 생가마을 묘지에서 있었다. 강순이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 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갚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 본다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은 어머니

고정희 시인의 시 세계


고정희 시인의 시 세계를 평가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여성 해방주의자' '페미니스트'라는 말이다. 고정희의 시 세계를 연구한 논문은 지금까지 100여 편 나와 있는데, 그의 시가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적 역량이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정희 시인의 시 세계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삶의 공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그중 하나는 1970년대 중반의 수유리 한국신학대학교 시절이고, 두 번째는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세 번째는 1984년 '또하나의 문화' 동인 활동으로 들고 있다.

그중 고정희 시인이 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그의 시 세계의 가장 밑바탕이 된 시절이 수유리 한국신학대학교 시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신학대학은 진보적 신학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학대학으로 이 때문에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교수들이나 신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진보적 사회 운동이라 할 수 있는 민중 신학의 모태가 된 학교다.

1970년대 한국기독교계는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 통치 체재 하에서 사회 현실에 직접 참여하려는 일부가 있었다. 이들은 자유와 민주,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가 심하게 위협 받고 있는 상황에 맞서고자 하였다.

고정희 시인이 한국신학대학을 다닐 당시는 박정희의 유신 독재가 가장 극악한 상황에 치닫고 있었던 시절로, 그에 대응하여 진보 신학계의 민족, 민중, 민주 운동도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던 때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고정희 시인의 시는 부조리하고 모순된 사회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진보신학계의 현실참여 운동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지는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의 시에 결정적인 각성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고정희의 시에서 기독교는 그가 희구한 민주적 공동체 형성의 길과 민중에 대한 사랑의 시를 완성하는 근원적 지평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고정희 시인의 시는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시를 썼던 많은 시의 저편에 혁명 시인 김남주의 서정적인 시 만큼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고정희 시인 생가 고정희 시인의 생가집에는 시인의 유품들이 그대로 남아 시인의 자취를 느낄수 있다
▲고정희 시인 생가 고정희 시인의 생가집에는 시인의 유품들이 그대로 남아 시인의 자취를 느낄수 있다 정윤섭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 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 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람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한 시인의 삶을 길러낸 토양은 고향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정희 시인은 그 뿌리의 토양에 누워 편히 안식하고 있다.
#고정희 #시인 #해남 #송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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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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