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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수유 없애려다가... 4개월 아기에게 사과한 사연

말 못하는 4개월 아기와 시작한 '회복적 서클'... 1인 3역 육아의 기록

등록 2026.06.16 17:17수정 2026.06.1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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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서클은 회복적 정의 실천 모델 중 하나로 구성원 모두에게 동등한 발언권이 주어지는 대화 모임입니다. 회복적정의협회(사)를 비롯하여 많은 대화 모임에서, 서클의 개념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번역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인 3역 회복적 서클의 시작

대화는커녕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아이와 회복적 서클을 시작했다. 월령 4개월 차 정도였다. 고백하건대, 숭고한 뜻이 있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시간 때우기'였다. 아침 7시에 기상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나면 낮잠을 재워야 하는 시각까지 얼추 남아있는 1시간이 더디게 흐를 때가 종종 있었다.


아이가 토하거나 대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놀아줄 새도 없이 순식간에 그 시간이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 못 하는 아이와 단둘이 대면하여 할 수 있는 놀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특히 척추 힘이 완전하지 않은 시기에는 몸으로 놀아줄 수 있는 데에도 한계가 많아 더욱 그랬다.

아이가 5개월 중반이 될 때까지 아침 시간은 아빠인 내가 아이를 전담하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새벽 4시까지 아이를 돌보다가 교대 후 오전 10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기의 혼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피차 멍하게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내 아이는 칭얼댔다.

그러다가 문득 동료들과 함께 공부했던 '회복적 정의'와 그 실천 방안인 '회복적 서클'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이어 스스로 웃고 말았다. 언어적 표현이 기초가 되는 대화의 방식인데, 내 앞의 아기는 아직 '엄마'라는 말도 의미를 담아 말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회복적 서클 원칙'의 의의를 지키면서, 약간의 변형을 통해 대화 모임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방법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 받아야 할 것도 아니니, 따뜻하고 건전한 놀이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어보고자 했다.

'회복적 서클' 진행의 두 가지 한계점


 회복적 서클의 4가지 원칙
회복적 서클의 4가지 원칙 안사을

서클을 진행하는 데에는 두 가지 한계점이 있었다. 첫째는 서클의 구성원이 둘 뿐이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나 이외의 유일한 구성원인 아들 녀석이 아직 언어적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를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했는데 말 그대로 촌극이 따로 없었다.

아이가 평소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구성원으로 들여 총 세 명의 서클원을 확보했다. 아들과 인형이 발언해야 할 순서에는 1인 3역이라는 참신하고도 엉뚱한 방법으로 서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따져보면 원맨쇼나 다름없는 웃긴 광경이었는데, 막상 시행해 보니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뜻밖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빠와 아들, 그리고 헝겊인형이 함께 하는 회복적 대화 모임 가운데 수박 모양 치발기를 '센터피스'이자 '토킹스틱'으로 활용했다.
▲아빠와 아들, 그리고 헝겊인형이 함께 하는 회복적 대화 모임 가운데 수박 모양 치발기를 '센터피스'이자 '토킹스틱'으로 활용했다. 안사을

일단 애초의 목적처럼 시간이 잘 갔다. 아이의 발달 상황에 맞추어 여는 의식과 닫는 의식은 30초 이내로 최대한 간단하게 진행하고, 보통 네다섯 개 정도 배치하는 질문을 두 개로 줄였음에도 시계를 보면 15분가량 훌쩍 지나 있었다. 그동안 아이는 칭얼거리지 않고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뜻 모를 언어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뜻밖의 큰 이점은, 말 못 하는 아기의 마음을 역지사지의 자세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초 회복적 서클이 지닌 장점과도 같은 것인데, 그 발현 과정은 반대라고나 할까.

서클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발언을 끊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다.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순서대로 한 사람씩 온전히 발언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끊김 없이 마칠 수 있다. 토론에서 밀릴 염려도 없다. 사나운 사람이 순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평화로운 독백이 연결된다.

영아기 아기와 함께 하는 대화 모임에서, 역지사지는 내가 아들의 발언을 대신하면서 발생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하나의 완전한 문장과 문단이 되어 입 밖으로 발현되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생겨난다. 내가 말해놓고도 '아, 이 녀석이 이런 마음일 수 있었겠구나'하는, 깊은 공감이 생겨난다. 아래는 어느 날 나누었던 대화의 한 장면을 요약한 것이다.

질문 1. 간밤에 우리 별헤가 이앓이 때문인지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었지요. 별헤는 직접 그 어려움을 겪었던 입장에서, 아빠와 코야(헝겊인형)는 지켜보던 입장에서 말해볼까요? 아빠가 먼저 말하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갈게요.

아빠: 솔직히 별헤가 너무 자주 깨고, 칭얼거림을 지나서 짜증을 내는 식으로 아빠에게 고함을 지르니까 순간적으로 지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앓이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마자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아빠 마음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었답니다. 자 이제 별헤가 이야기해 볼까요?

별헤(목소리를 바꾸어 아빠가 대신 말함):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제는 평소와 달랐어요. 평소에는 더워서, 시끄러워서 깼다가도 엄마나 아빠가 달래주면 괜찮았는데 어제는, 아니 글쎄, 왜 깼는지 모르게 깼는데 완전히 처음 겪는 불편한 느낌이 입 안에 있는 거예요. 간지러운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손으로 긁어도 똑같고... 그래서 그렇게 크게 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아빠가 안아줘서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을 수 있어요.

코야(목소리를 바꾸어 아빠가 대신 말함): 그래. 우리 별헤가 많이 힘들어 보였단다. 별헤도 알겠지만 나 코야는 눈을 감을 수 없단다. 그래서 24시간 내내 별헤와 엄마, 아빠를 관찰하고 있지. 코야는 별헤를 보면서 참 장하다는 생각을 했어. 불편해서 울다가도 진정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코야는 분명히 보았단다.

언젠가는 이 대화 모임을 통해서 아들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새벽 수유를 없애야 바람직하다는 말에,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밥을 달라고 우는 아이를 20분이 넘게 내버려 둔 날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이의 울음이 건강하게 잦아들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카메라를 돌려보니 강하게 울다가 지쳐 잠든 과정이 담겨 있었다.

다음날 아침 대화 모임에서 질문을 설정하고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알아듣건 말건 한 인격체를 대하는 존중의 마음을 담았다. "아빠의 본심은 네가 앞으로 좀 더 깊은 잠을 자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그 방법이 다소 급했고, 적잖이 놀랐을 너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아빠의 사과를 받아주는 것이 어떠냐며 헝겊 인형으로 분하여 말하기도 했다.

2인 4역 완전체 서클의 구성

평화의 전당 나들이 오전에 나눈 대화가 이날의 풍경을 만나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아름다움으로 깃들지 않았을까.
▲평화의 전당 나들이 오전에 나눈 대화가 이날의 풍경을 만나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아름다움으로 깃들지 않았을까. 안사을

아이가 조금 더 자라자, 이제 불침번을 서는 것처럼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 옆에서 잘 수 있으니 굳이 교대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어차피 아이가 깨면 젖을 물려야 하므로 본인이 아이와 아침까지 함께 있겠다고 아내가 제안했다. 염려와 고마움을 표하면서, 대신 나는 낮에 더욱 많은 가사를 담당하겠노라 말했다.

처음으로 아침 7시에 세 식구가 함께 눈을 떴다. 아이의 표정이 그날따라 밝아 보인 것은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 양 옆에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에도 역시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며칠 후 드디어 3명, 아니, 인형까지 4명이 둘러앉아 회복적 대화 모임을 가졌다. 엄마는 인형을, 아빠는 아이를 각각 대변했다. 2인 4역으로 이루어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서클이 만들어졌다. 마침 맑은 하늘과 깨끗한 대기가 조화를 이루는 청명한 날이었다.

옆사람의 손을 만지며 "사랑해요"라는 말을 전하는 것으로 간단한 여는 의식을 마치고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아래는 그 질문과 발언의 일부이다.

질문 1.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을 색깔로 표현하고, 그 이유를 말해주세요.

아빠: 연두색이에요. 오늘 오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평화의 전당에 나들이를 갈 건데, 그곳에 가득한 연둣빛이 기대되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연두의 연두'라는 시어로 별헤를 표현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날 것이니 더욱 연두색이 떠올랐어요.

별헤(목소리를 바꾸어 아빠가 대신 말함): 저는 하늘색이요. 누워서 올려다본 하늘의 색깔이 정말 깨끗해서 오늘 하루의 시작이 참 기분이 좋았어요. 아빠가 말한 연둣빛과 하늘색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택하기도 했답니다.

엄마: 엄마는 일명 똥색이라고도 하는 황갈색을 선택하겠어요. 별헤가 쾌변을 해야 이따가 나들이가 수월할 테니 별헤의 응가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똥색이요!

매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이러한 대화 모임을 진행할 생각이다. 그러다가 아들이 말문이 터져, 지금처럼 역할극 같은 모습이 아닌 진정한 서클 대화가 이루어질 날을 기대한다. 유년기를 지나 사춘기가 되어서도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평화롭게 늘어놓는 대화 시간을 꿈꾼다.

'당신은 모른다'가 아닌, '나는 모른다'의 자세를 유지하고자 한다. 어린 자녀에게 '너는 어려서 모른다'라고 말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아빠는 너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하며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아빠 또한 나의 이야기를 담담히 해주겠노라 말하며 평화로운 대화의 장이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날 아침에 나눴던 대화의 내용처럼, 온 가족이 함께 찾은 평화의 전당 잔디밭은 연둣빛과 하늘색의 향연이었다. 강렬한 태양에도 아직 무더위가 찾아오지 않은 6월의 공기는 새 이불처럼 기분 좋게 바스락거렸다. 아이는 돗자리에 누워 마음껏 뒹굴었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냥 행복하게 웃었다.





#육아 #육아일기 #회복적서클 #회복적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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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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