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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6.10 11:32수정 2026.06.1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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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갤러리 2303*에서는 맹일선과 박근호의 2인전 '다다르려는 마음'이 진행 중이다. 전시 작품에서 눈앞의 대상에 다가가려는 두 작가의 곡진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실 한쪽 벽에 걸린 라임색 조형물(<I'm all ears>)이 눈에 띈다. 둥근 형태가 사람의 귀나 커다란 콩을 연상시킨다. 옆에는 검은색 오브제들이 날렵하게 그려진 그림이 나란히 걸렸다. 곡선의 밝은 조형물과 어두운 오브제 그림이 대비를 이룬다. 전자는 필라델피아에서 스튜디오 스퐁(Studio SPONG)을 운영하며 목공 작업을 하는 박근호 작가의 작품이다. 후자는 안동에서 그림을 그리는 맹일선 작가의 것이다.
맹일선의 '정물 느와르', 제약과 실패로 빛나는 검은 오브제

▲<정물 느와르 No 26_07>,<정물 느와르 No 26_08>, 맹일선, 2026 맹일선 작가의 '정물 느와르' 시리즈. '느와르(noir)'는 검은색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영화에서 '필름 느와르'는 인간의 불안과 욕망, 결핍과 고독을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로 풀어낸 영화양식을 일컫는다(하갤 전시 리플렛 참조).
김현진
맹일선 작가는 어린 시절 앓은 질병으로 오른쪽 시신경이 손상되었다. 왼쪽 눈으로만 볼 수 있어 대상을 보는 시야가 제한적이다. 그로 인해 보이는 쪽의 이미지를 대칭으로 반영해 보이지 않는 쪽의 이미지를 짐작하는 습성이 생겼고, 이는 작가가 대상을 파악하는 고유한 방식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습관을 알아챈 뒤 그는 '본다'는 감각에 더 집중했다. 눈앞의 사물을 완벽한 대칭으로 표현하는데 강박적으로 몰두했다. 그러기 위해 대상의 오른쪽만 그린 뒤 종이를 회전시켜 나머지 부분을 대칭이 되도록 그리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림 속 오브제는 완벽한 대칭에 다다르지 못한다. 작가는 이러한 실패를 눈속임하기 위해 단순한 도형에 장식성을 더하거나 좌대에 올려놓는 시도를 한다.
작가의 강박은 표현 기법에서도 전해진다. 단단한 목탄을 날카롭게 다듬어 쓰기에 작가의 선은 정교하고 섬세하다. 하얀 도화지에 검게 그려진 오브제의 외곽선은 검은 종이를 오려 붙인 듯 한 치의 오차 없이 곧게 뻗어 나간다. 밑그림이나 지우개 없이 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작가에게 선을 긋는 행위는 수행과 유사할 것이다.
현재 전시 중이 '정물 느와르' 시리즈 속 오브제는 상상의 산물이다. 스무고개를 하듯 관람객이 오브제의 정체를 상상하길 바랐다는 작가의 의도를 읽으면 단서를 찾기 위해 그림을 살펴보게 된다. 관람객이 오브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작가는 빛과 그림자 같은 외부적 요소도 제거했다. 희고 깨끗한 종이 위에서 검은 광채를 발하는 오브제들이 금방이라도 회전하고 미끄러지며 움직일 것 같다.
맹일선 작가의 그림은 흑백의 대비, 사물의 운동성과 짜임새 있는 구도로 강렬한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그런 그림 앞에서 내게 생생해지는 건 오히려 청각이다. 작가가 강박적으로 선을 긋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이 목탄이 종이를 긁어내는 소리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샥, 샥, 끼익, 샤샤샤샤샥….
상상은 이렇게 이어진다. 관람객이 떠나고 어둠이 내리면 꼿꼿하게 서 있던 그림 속 오브제들이 영화 '토이 스토리' 속 장난감들처럼 긴장했던 자세를 풀며 숨을 내쉴 거라고. 하루 동안 마주했던 사람과 장면을 저희들끼리 속살거릴 거라고. 어느 순간엔 낮고 비밀스러운 대화가 그림에서 흘러나올 것 같다.
경건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띄던 오브제들이 어느덧 익살스러운 기운을 머금는다. 시각적 제약으로 생긴 습성을 결핍이 아닌 본인의 고유한 표현법으로 다듬어 낸 작가의 담대한 태도와 그림에 대한 애정이 내게로 건너온다.
박근호의 나무 조형물, 기억을 어루만지는 시간

▲I'm All Ears, 박근호, 2026 박근호 작가의 라임색 조형물. 커다란 귀 한쪽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듯한 작품으로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과 흔적을 드러내 살아있는 피부 같은 인상을 전한다(하갤 전시 리플렛 참조).
김현진
맹일선 작가의 작품과 대조적으로 박근호 작가의 작품은 밝고 따스하다. 가오리 모양의 스툴(<레이(Ray)>과 귀 형상의(<I'm All Ears>) 오브제, 사람의 뒷모습을 연상시키는 조형물과 알록달록한 색감의 옷걸이와 접시들. 박근호 작가는 나무 고유의 결을 살리면서 일부에는 요철을 새기고 색을 입힌 작품을 선보인다. 사람이나 동물의 신체,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동심을 자극한다.
회화를 전공했던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데서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관람객들이 만지고 겪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회화에서 공예로 방향을 바꾸었다. 공예에서도 가구, 특히 의자를 만들게 된 데에는 어릴 적 아빠의 무등을 탔던 기억이나 아빠가 발을 만져 주었던 기억이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작업에 반영하면서 그는 사람을 닮은 의자를 제작했다.
박근호 작가는 나무가 사람을 닮았다고 여긴다. 나무에게는 생물이 갖는 따듯함이 있고, 사람의 피부처럼 결이 있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나무를 만지는 행위는 신체 접촉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커다란 목제를 통으로 사용하는 게 아닌 손바닥만한 조각으로 잘라 연결하는 '세그먼트 우드카빙(Segmented Woodcarving)' 방식으로 작업한다. 철저하게 계산된 각도의 직육면체로 자른 뒤 그 조각들을 이어 붙여 부드러운 곡면을 만든다. 곡선을 위해 직선을 경유하는 것은 작가만의 특징이 되었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패치워크처럼 조형물만의 우연하지만 독창적인 결을 만들어 낸다.
관객이 작품을 만지고 겪길 바랐다는 그의 바람처럼 작품 앞에 서면 손을 뻗어 나무를 쓰다듬게 된다. 나무가 지닌 본래의 결과 박근호 작가가 새겨 넣은 결이 공존하는 작품은 나무의 일부이자 박근호라는 사람의 일부 같다.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을 지어주기 위해 그 사람의 체형과 피부결과 색을 살피듯 그는 작업에 앞서 나무의 결과 색을 살핀다고 한다. 나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와 질감, 색을 입혀주려 했던 작가의 마음이 요철과 색으로 나무에 옮겨졌다. 작가의 기억과 상상력이 이끄는 무수한 어루만짐으로 나무는 새로 태어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형물은 누군가의 삶으로 옮겨가 또 다른 기억을 덧입을 것이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벽에 그린 예술가의 문을 엿보다

▲하우스갤러리 2303 전경 맹일선 작가의 '정물 느와르' 시리즈와 박근호 작가의 스툴 '레이(Ray)'가 놓인 전시장 모습
하우스갤러리
'본다'에서 비롯해 듣고 만지고 상상하는 세계가 하우스갤러리에 있다. 펼치면 여러 겹의 레이어가 등장해 입체적인 세계가 지어지는 그림책처럼 내 앞의 조형물과 그림은 결과물이라는 닫힌 점이 아니라 어딘가로 열리는 문처럼 놓였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맹일선과 박근호 두 사람의 작품 세계가 그렇게 보인다. 볼 수 없는 벽, 만질 수 없는 벽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을 그린 후, 문을 열어 관람객을 초대하고 있다고.
그 문은 두 사람의 시간을 거쳐 유년의 기억으로, 타자의 결을 헤아리는 쓰다듬으로, 사물의 움직임과 속삭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도약으로 옮겨가게 해준다.
갤러리에 한 시간 반을 머물다 밖으로 나오자 먼 곳을 다녀온 기분이다. 여행을 다녀온 듯 감각이 새롭게 열린다. 감각을 리셋하고 싶은 당신을 맹일선과 박근호 작가의 작품 앞으로 데려가고 싶다.
* 하우스갤러리 2303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인스타그램(@housegallery_2303) DM을 활용한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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