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대국민 사과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5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한 선거 관리를 목적으로 설립 운영되는 헌법기구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특히, 이번 투표용지 부족사태와 같은 혼란을 가져온 것은 백번 지탄받을 일이고 책임져야 한다.
더 나아가, 만약, 일부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처럼, 국민의힘 강세지역에서 국민의힘 지지 투표를 막기 위하여 선관위가 계획적으로 투표용지를 적게 인쇄하여 유권자들의 참정권을 고의로 침해한 것이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이 과연 그런가? 수사 당국이 밝혀야 할 일이다. 국정조사, 특검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법이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말로 그랬는지 아닌지 따져야 한다.
이번 송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이 정말로 투표권 박탈의 결과를 가져왔는지 사실 관계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송파구를 비롯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에서 정말로 투표용지가 부족해서 투표를 못한(투료를 '안 한'이 아니라 투표를 '못 한' 유권자)가 있나?
특히, 송파구 투표소와 개표소에서 지금까지 부정선거 또는 재선거를 외치고 있는 2030 젊은이들 또는 태극기부대, 아니면 일반 유권자 중에 정말로 투표를 하고 싶었는데 투표용지가 없어서 투표권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하여 투표를 못한 유권자가 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Yes)"라고 한다면, 그 분노는 전적으로 정당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투표권을 보장해야 했다는 연대와 지지, 그 사람의 투표권을 박탈한 선관위로 대표되는 정부에 대한 분노 역시 지극히 정당하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오(No)"라면, 즉, '그런 유권자는 없다'라면 지금의 부정선거니 재선거 어쩌고 하는 시위대의 주장에는 손톱만큼도 동의할 수 없다.
조금 더 풀어서 쓰자면, 투표용지가 부족하여 투표를 못한 유권자가 정말로 있었는가 하는 질문은 이런 의미이다.
투표를 하러 갔는데 투표용지가 부족하여 당장 투표를 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는데, 인근 투표소나 시도선관위 본부에 연락하여 투표용지를 확보하여 가지고 왔다면,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면 판단은 달라진다. 그걸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줄 서서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이 귀찮아서 투표를 포기하고 집에 가버려서 결과적으로 투표를 하지 못한 거라면 그걸 투표권 원천 박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투표권이 박탈되었으니 이를 이유로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걸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아니오(No)"이다. 투표용지가 모자라는 상황이더라도 기다리면 인근투표소나 선관위 본부에서 투표용지를 가져와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유권자가 개인적인 일 있다고 해서 집에 가버려서 투표를 못한 것까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 그런 것까지 투표권 박탈이라면서 다른 시민들이 연대해서 재선거를 요구할 일이냐라고 물으면 역시 나의 대답은 "아니오(No)"이다.
투표를 하기 위한 약간의 불편함, 그러니까 정도의 다름은 있을지언정 불편함은 누구에게라도, 어디에서라도,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 '투표소가 너무 멀다', '투표소가 2층에 있어서 이동이 불편하다', '대규모 아파트단지 등 유권자가 너무 많아 대기줄이 너무 길어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하필 투표하러 가는 시간에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불편하다' 등등 투표가 불편한 이유는 수없이 존재할 수 있다.
몇 십분에서 몇 시간 기다리는 것은 투표용지 부족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본인 역시 사전 투표일에 직장 근처 동사무소에 갔다가 관외투표 줄이 너무니 길어 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직장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결국 본투표를 했지만. 이 기다리는 시간 등의 약간의 불편함을 이유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서 '투표권이 박탈당하고, 참정권이 침해당했다'고 하는 주장은 별로 동의가 안 되는 것이다.
선관위에서 투표할 수 없으니 집으로 가라고 했나? 그게 아니라면 불편하더라도 기다리면 투표용지 부족이 해결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진실이 무엇인가? 몇 분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면 투표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가? 아니면 아무리 기다리더라도 원천적으로 투표용지 부족을 해결할 수가 없어서 원천적으로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가?
왜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유권자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 나라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서방 대부분의 국가뿐 아니라 중국, 북한 등 우리와 다른 체제를 가진 나라와도 다르게 평일을 별도의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여 투표일을 유급휴일로 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평일에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여 투표를 진행하기 때문에(즉, 투표일이 유급휴일이다. 투표를 하지 않아도 당일 월급이 나온다.) 투표일 당일에는 무엇보다 투표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선거일을 평일에 별도 법정공휴일, 즉 유급 휴일로 지정하여 운영하는 이유이다.
물론, 개인의 정치적 선택으로 투표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기다림이라는 시간적 불편함을 이유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그것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나아가 단 1명이라도 투표권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사람이 있다면 분노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지고지순하고 타당하고, 그 분노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부정선거로 연결되거나 재선거의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왜 계엄에는 침묵하고 장애인 투표권에는 무관심했던가?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전국 12곳 동일 득표수 논란에 관한 현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소연
또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권이 박탈되었는지 아닌지에 그토록 민감하고, 그렇게 믿으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왜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1층으로, 턱이 없는 건물에 투표소를 설치해 달라던 장애인들의 요구에는 그토록 무관심했던가? 이것이 더 근원적인 투표권 박탈이고 참정권 침해 아닌가? 투표보조인을 금지하여 이번 6.3 선거에서도 원천적으로 투표권을 박탈당한 것이 명백한 발달장애인들이 투표보조인을 허용하고, 발달장애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해 달라는 피맺힌, 너무나도 정당한 투표권 보장 요구에는 연대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던가?
직업적인 영역이라 교사로서 수없이 겪는 시험 상황이 오버랩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투표 용지 부족과 부정 선거는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학교에서 정기고사를 보는데 답안지, 심지어 시험지가 몇 장 부족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학급마다 학생수가 다르고, 해당 과목을 선택한 학생이 달라서 해당 과목의 시험지나 답안지가 처음부터 남거나 부족하게 포장되는 경우는 흔히 일어난다. 물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학생수보다 몇 장을 더 세어서 넣는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학급을 착각하거나 학생수를 착각하여 시험지나 답안지가 부족한 경우가 발생한다. 조금 어려운 과목에서는 답안지 교체 요구가 너무 많아서 원래 남았던 것이 모자라는 상황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시험에서 시험지나 답안지가 모자라면 급하게 옆반에 연락하여 빌려 오거나 또는 시험본부에 연락하여 배달해 달라고 한다. 그러다가 시험 시간이 몇 분씩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학생들에게 시험 시간이 종료하더라도 조금 더 시간을 부여하고 다른 학생이나 다른 학급보다 조금 더 늦게 시험을 종료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역시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만약에 앞의 학교 시험 상황에서 학생이 기다려도 부족한 시험지나 답안지를 갖다주지 않아서 시험을 못 본 경우라면 그 시험은 심각하게 정당성이 훼손되어 재시험 요구를 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해당 학생이나 해당 학급에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지체된 시간만큼 시험 시간을 추가로 부여하여 시험을 보게 한 후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종료하였다면 그 시험의 효력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런데, 답안지나 시험지 부족을 이유로 단 몇 분도 기다릴 수 없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에 가버린 학생이 시험 부정이라면서 재시험을 요구하면 이를 받아들일 학교는 없다. 다른 학생들 역시 이에 동조해주지 않는다.
물론, 시험 지연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불편하고, 또 긴장하고, 또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시험 점수가 자기 실력보다 낮게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시험 전부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
학교 시험뿐 아니라 수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2년 전 수능 시험에서 어느 학교의 종료 타종 시간 설정이 잘 못되어 원래 보장된 시각보다 종료령이 먼저 울리는 사태가 있었다. 나중에 이를 인지하고 그 반 학생들만 다시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누어지고 먼저 울린 시간만큼 시간을 더 주었다.
물론 이 때문에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심적 스트레스를 받은 학생들은 시험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를 이유로 해당 학년도의 수능을 무효로하고 재시험을 보지는 않았다. 그런 요구도 없었고, 그런 요구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젊은이들도 없었다. 왜 같은 젊은이 입장에서 수능을 망친 이 학생들에게 동조하여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이들이 없었을까? 그 수험생에게 수능 시험은 투표에서 유권자가 행사하는 1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무거운 것이었을텐데.
이렇듯 어떤 시험에서든 인간이 하는 일이라 시험지나 답안지가 부족하여 시험에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시험을 원천적으로 보지 못하게 했다면 모를까 약간의 불편함을 준 것을 이유로 시험 무효 또는 재시험이 어려운 것처럼,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투표 지연을 이유로 선거 부정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것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탱크를 앞세워 모든 정당의 활동을 중단하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재명, 한동훈 등 여당과 야당의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과 비판적 언론인들, 판사까지 군인과 경찰을 동원하여 잡아가려 했던, 그야말로 전국민의 참정권을 비롯한 정치기본권을 박탈하려고 했던 계엄에는 어떻게 침묵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냉정해져야 할 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언론과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략적 이익을 좇아 음모론에 편승하려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가서는 안 된다. 정당한 투표권의 부당한 박탈에 대한 분노와 연대라면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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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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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능도 무효인가? 교사가 본 투표용지 부족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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