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새로움·문화의 새로움"을 내걸고 계간지 <상상>이 1993년 가을호로 창간되었다. 편집위원 심재철·서영채·강헌·김종엽, 편집장 주인석·편집인 전형준, 발행인 심만수 체제이고 도서출판 살림에서 발행했다.
시·소설·영화·연극·비평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다루는 문화계간지를 표방하고 여기에 과학 분야도 빼 놓지 않았다. 어느 측면에서 문화는 소설이 아니라도 상상의 산물이다. 공상에서 출발하여 추상을 거쳐 상상이 나타난다. 더러는 망상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문화에 있어서 상상은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의 이름이다.
주인석 편집장의 이름으로 발표된 '상상, 넘나들며 감싸 안는 힘'이라는 창간사는 무려 10쪽에 이른다. 여기서는 중간 부문인 '상상, 넘나들며 감싸 안는 힘, 힘주지 않는 힘'을 소개한다.
상상, 넘나들며 감싸안는 힘, 힘주지 않는 힘
이제 우리는 <상상>을 창간한다. <상상>은 위기와 경계 사이에서 태어나는 셈이다. 유령이 떠돌아다니는 시대에, 때 아닌 마녀사냥의 시대에, 분열과 착란의 시대에, 혼란과 침체의 시대에, 정말이지 우리는 희망에 가득 차 있지 못하다. 절망적으로 희망을 희망한다. 절망 속에 희망의 눈을 뜬다.
<상상>이라니까 이 세상에 없는 것을 허황되게 떠올리는 망상을 일삼는 자들의 작당이라 오해하지 마시기를, 상상은 세계를 보고 그 세계를 넘어선 어떤 것까지 보려는 폭넓은 의식과 무의식의 종합적 작용이니까.
우리는 상상의 그 넘나들며 감싸 안는 작용이야말로 지금 우리를 둘러싼 겹겹의 경계를 넘어 간극을 메우며, 죽어가는 문화를 살려내는, 죽음의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바꿔낼 수 있는, 충분한지는 모르지만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낼 정기간행물의 제호를 <상상>이라 부르기로 했다.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그 너머, 창작과 이론, 문학과 철학, 장르와 장르, 세대와 세대, 소위 고급문화와 소위 대중문화, 기억과 망각, 질서와 혼돈, 이성과 광기, 그런 경계를 넘나들며 감싸 안는 일을 <상상>은 해나갈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 힘으로 이루어지는 거라면 <상상>은 넘나들며 감싸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힘은 결코 힘주지 않는 힘이다.
우리는 어느덧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에서 산업화된 대중문화가 대중들의 정서를 무차별적으로 유린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한다. 처음에는 자본의 주변부에 기생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괴물처럼 비대해진 대중문화산업이 자행하는 문화의 천박한 상품화, 즉 문명적 야만상태에 철저히 저항해나갈 것이다. 한편, 그 시대의 격류 앞에서 무력감과 자조에 빠져 아예 세계화와 통로를 닫아버리고 자폐적 공간으로 숨어들어간 소위 엘리트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도 신랄한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그들의 전문가주의와 엄숙주의는 흠험하게도, 또한 비겁하게도 장르를 권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은 우리가 직면한 문화의 절망적 교착상태를 타개하려 한다. 반성이 결여된 물신적 대중문화와 전문주의를 가장한 자폐적 엘리트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그 간극을 메우는 비판적인 가교가 되고자 한다.
넘나들고 감싸 안으며, 이 죽음의 절망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서 행동하는 문화를 생성해낼 것이다. 요컨대, <상상>은 세대와 장르를 넘어서 작가적 대중주의, 대중적 작가주의를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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