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1997년 6월 반년간 무크 <신인문(新人文)>을 창간했다. 새로운 인문학을 내세운 전문지의 역할을 다짐했다. 창간호는 문명과 문명론을 중심으로 꾸몄다. 편집위원에 김상봉·김호기·윤형식·이정우·이필렬·최정한·한정숙 등 전문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신인문>은 '열린 사유'의 지평을 넓힐 다양한 관점을 포괄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새로운 담론형성에 기여하고, 인문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할 것을 내세웠다.
김상봉 편집위원이 쓴 창간사 '시대의 전환과 인문학의 부흥'의 서두에 F. 휠더린의 "가까이 있으면서 붙들기 어려워라. 신은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따라 자란다."를 인용했다. 장문의 창간사에서 후반부를 뽑았다.
새로운 인간성과 새로운 총체성을 위하여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역사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인간성의 이상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낡은 인간성의 이상, 파괴하고 정복하며 모험을 찾아 세상의 끝에서 끝으로 뜻없이 방랑하는 헤라클레스적 삶이 영웅의 삶이던 시대는 지났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타인을 도구삼아 나의 몸을 살찌우는 문화가 아니라, 너를 살림으로써 나도 사는 살림의 문화, 오직 서로 섬김으로써 자기의 모자람을 채워나가는 섬김의 문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구호를 통해서는 실현될 수 없다. 오직 해산을 기다리는 산모의 인내와 정성을 통해서만 그리고 혼돈과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정신의 강건함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 깊은 시대의 어둠으로부터 '새로운 인간성'(nova humanitas)의 이상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신인문>(Nova Humanitas)은 그런 새로운 인간성의 이상을 모색하는 열린 반성의 지평이다. 그것은 특정한 제도학문에 제한된 담론의 공간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서양 옛적 인문학의 7학과는 문법과 수사학부터 기하학과 천문학 그리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로 말 하자면 비단 인문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은 물론 예술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문학이란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의 기초에 관계하는 학문이었던 셈이다. 이는 인문학이 특정한 학문분야를 표시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학문과 예술의 어떤 특별한 태도를 뜻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학문과 예술이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의 기초인 동시에 지향점인 인간성에 관계할 때, 모든 것은 인문학적인 것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인간의 삶의 지평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시대에 새로운 인간성의 모색을 위해서는 학문과 학문, 동양과 서양 그리고 전통과 현대 열린 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신인문>은 그런 모든 분열된 사유영역들 사이의 다리이기를 원한다. 이런 다리를 통해 분열된 삶의 계기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는 곳에서만, 삶의 총체성이 회복되고 '새로운 인간성'이 도래하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시대의 어둠을 떠맡기엔 우리는 너무도 초라하고 가난하다. 하지만 언제나 정신의 가난이야말로 참된 창조의 모태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시대의 위험을 기뻐하고 우리의 가난을 신뢰하자. 위험이 있는 곳엔 구원도 따라 자라는 것이기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