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지키고 얻은 선물, 캐나다 텃밭서 맛본 고향의 맛

캐나다 낯선 땅에서 이웃의 온기로 차려낸 풍성한 여름 모둠쌈

등록 2026.06.10 11:55수정 2026.06.1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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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몇 달 동안 남편이 있을 한국에 다녀온다면서 우리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떠나기 전, 지인은 자신의 아들딸에게도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고 가끔 시간이 허락되면 집에 들러달라고 부탁했다. 어른이 없는 집에 온기가 돌고 있다는 존재감을 주변에 시각적으로 보여달라는 의미였다. 지인은 뒷뜰 텃밭에 상추와 치커리, 깻잎, 파, 부추 등 여러 종류의 채소들을 심어 놓았으니 오며 가며 뜯어 먹으라는 말도 남기고 비행기에 올랐다. ​

​지인이 떠난 지 며칠이 지난 오늘, 커뮤니티 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지인의 집을 찾았다. 익숙하게 작은 쪽문을 열고 뒷뜰로 들어섰다. 푸릇푸릇한 잔디로 뒤덮인 정원 한편에는 깻잎이, 다른 화단에는 치커리와 쑥갓, 파, 부추 이외에 몇 가지 이름 모를 채소가 옹기종기 자라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채소들이라 과감하게 속을 솎아내다 보니 어느새 비닐봉투가 가득 찼다. ​


사실 오기 전 깻잎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일전에 지인이 솎아다 준 상추와 쑥갓, 부추 덕에 고기파티를 맛있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텃밭의 깻잎 모종을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못 뜯어 왔다고 했기에, 오늘은 제법 자라났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런데 깻잎은 캐나다의 낯선 토양과 햇살이 맞지 않아서인지 푸른 기운 없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당장 밥상에 올리기에는 무리다 싶어 아쉽지만 깻잎은 남겨두고 다른 채소들만 정성껏 수확해 집으로 돌아왔다. ​

 지인의 뒷뜰 화단에 자라난 상추와 치커리,부추,파 등등의 채소류
▲ 지인의 뒷뜰 화단에 자라난 상추와 치커리,부추,파 등등의 채소류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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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토양이 낯선지 푸른빛 대신 노란 낯빛을 띠고 있는 어린 깻잎 모종들
▲ 아직은 토양이 낯선지 푸른빛 대신 노란 낯빛을 띠고 있는 어린 깻잎 모종들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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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에 아내가 오늘 뜯어온 채소들을 채반에 받쳐 수북하게 담아 식탁에 올렸다. 말 그대로 풍성한 모둠쌈이다. 캐나다에서도 대형 채소 매장에 가면 얼마든지 싱싱한 야채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부드러운 '한국식 상추'는 한인 마트에나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다. 그마저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구경하기 힘들고, 시중 마트에 있는 양상추나 한국 상추와 비슷하게 생긴 현지 상추들은 아무리 씹어도 고향에서 먹던 그 감칠맛과 쌉싸름한 풍미가 나지 않는다. ​

오늘은 고기를 굽지 않았다. 그저 갓 지은 밥에 정성껏 만든 양념장, 그리고 방금 텃밭에서 따온 신선한 채소만을 싸서 입에 넣었다. 현지 텃밭에서 방금 수확한 덕분인지 신선도가 최상이었다. 씹을수록 입안에 퍼지는 단맛이 기성 매장에서 산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

문득 예전에 주택에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뒷마당 한편에 텃밭을 일구고 야심 차게 여러 모종을 사다 심었지만,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던 기억이다. 다음 해에는 거름도 듬뿍 주고 정성을 다했건만 캐나다 땅은 쉽게 수확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흙이 있는 곳에 씨만 뿌려도 토양을 가리지 않고 쑥쑥 잘만 자라던 채소들이 왜 이리 야박한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 낯선 흙을 달래가며 이만큼 채소를 키워낸 지인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오늘 맛본 쌈은 단순한 채소의 가치를 넘어선 귀한 맛으로 다가왔다. ​

해외에 살면서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이유는 이런 소박한 계절감의 부재 때문이다. 한국의 봄과 여름이라면 들녘에 흔히 널린 냉이를 캐고, 무더워지는 이 시기엔 앞마당에서 상추를 툭툭 뜯어 장망태기처럼 쌈을 싸 먹던 일상이 이곳에서는 커다란 그리움이자 아쉬움이 된다. ​


오늘 지인의 집 앞마당에는 아들의 차량으로 보이는 차가 한 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뒷뜰에서 채소를 솎는 내내 기척이 없는 것을 보니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비록 인기척은 없었지만, 우리 부부가 지인의 집 마당에 차를 대고 뒷마당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이 집이 비어있지 않다는 든든한 방범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

집을 지켜주는 작은 임무를 수행한 대가치고는 오늘 저녁 밥상이 너무 과하게 풍성했다. 고향의 맛을 음미하며 흐뭇해하는 마음 한편으로, 정작 본인은 땀 흘려 키워낸 채소들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떠난 지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멀리서 불어오는 캐나다의 여름 바람 속에, 이웃이 남겨둔 초록빛 온기가 입안 가득 번지는 저녁이다.
#캐나다이민 #텃밭가꾸기 #한국상추 #이웃사촌 #해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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