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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남편과 산행, 북한산에서 찾은 '와비사비'

'작은 명상' 같은 산행이 가르쳐 주는 삶의 방향

등록 2026.06.13 10:48수정 2026.06.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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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행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시간 만큼은 누구도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간다는 데 있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숨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햇살과 바람이 살갗에 닿는 감각이 또렷해지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누군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함도 사라진다. 그저 오늘의 몸 상태에 맞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한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산행(山行)은 말 그대로 '산(山) 갈 (行)', 즉 산을 걷는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의미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이 산행 속에서 마주하는 '우리 부부의 가장 자연스러운 시간'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일정 없는 주말, 남편이 산행을 제안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좋아" 사인을 보낸다. 전날 저녁에는 김밥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둔다. 살짝 절인 오이, 볶은 김치, 계란 지단, 채 썬 당근 볶음이면 준비는 끝이다.

부부의 단단한 일상이 된 산행

오랜 시간 남편과 함께 산을 다니다 보니, 배낭을 꾸리는 일도 서로의 몫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나는 김밥 두 줄을 빠르게 말아 썰고 과일을 챙긴다. 남편은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고 얼음 물을 준비한다. 이런 호흡이 쌓일수록 산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단단한 일상이 된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기대가 시작된다. 지난 5월엔 강화도 혈구산과 고려산 산행을 두 번 했다. 지난 7일, 철저한 계획형인 남편의 제안으로 이번 산행 코스는 북한산 여성봉과 오봉으로 정했다.


6월의 북한산은 유난히 생기가 짙었다. 주황빛 나리꽃과 흰 함박꽃이 숲의 틈마다 얼굴을 내밀고, 짙어진 녹음은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했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은 조금씩 풀어진다.

함박꽃과 나리꽃 지난 일요일 북한산 오봉을 오르던 중 만난 여름꽃
▲함박꽃과 나리꽃 지난 일요일 북한산 오봉을 오르던 중 만난 여름꽃 김남정

산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대부분은 내가 이야기를 꺼내고, 남편이 짧게 답을 이어가지만 어느 순간에는 말없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각자의 보폭으로 움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속도는 맞춰진다.


남편이 한동안 산행을 쉬어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주말이면 당연하게 챙기던 등산화가 현관 한쪽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산에 갈 수 없는 동안 우리는 집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휴식이었다.

하지만 다시 산길을 걷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산행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 오히려 마음이 쉰다. 집에서의 휴식이 정적인 회복이라면 산에서는 움직임 속에서 마음이 풀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생각이 과하게 흘러가던 때와 달리, 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바위 하나, 나무 하나, 숲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까지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산새 소리는 배경 음악처럼 이어지고, 어느 순간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이 시간은 나에게 작은 명상과도 같다. 언젠가 내가 왜 산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산행은 살아있다는 감각이야. 땀을 흘리면서 걷다 보면 몸의 세포들이 움직이는 게 느껴져.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몸으로 알게 되고."

그리고 덧붙였다.

"사람은 결국 움직여야 하는 존재잖아. 집 안에만 있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산에는 있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 순간 나는 요즘 읽고 있는 베스 켐프턴의 <매일매일, 와비사비>에 나온 구절을 떠올렸다.

"와비사비는 마음의 상태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느끼는 완전한 순간이다. 기꺼이 소소한 것들을 알아차리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 와비사비를 느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산행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다. 정상에 얼마나 빨리 오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숲길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 바위 틈에 핀 꽃 한 송이, 땀을 식힌 뒤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모금 같은 소소한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그 순간 만큼은 충분히 충만하다. 산은 늘 더 높이 오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지금의 속도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북한산 오봉 다섯 개의 봉우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습니다.
▲북한산 오봉 다섯 개의 봉우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습니다. 김남정

각자 다른 속도로, 같은 풍경 앞에 서는 일

오봉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한참 동안 말을 잊고 풍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봉우리를 문어에 비유하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다섯 개의 바위 봉우리는 여전히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가 시야 가득 펼쳐졌다.

바위 위에는 오봉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는 사람도 있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르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는 오래 머물기 위해 천천히 자리를 잡았고, 누구는 잠시 스쳐 지나가듯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각자 다른 속도로 올라왔지만 결국 같은 풍경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 초여름 산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쌀쌀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늘 불확실한 삶을 산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길 위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길을 잃은 듯한 감각 속에 머물기도 한다. 하지만 산행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정상만이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가끔은 쉬어 가도 괜찮고, 예상보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볼 여유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삶에서도 필요한 태도인지 모른다.

숲속에서 하얀 함박꽃을 발견하고 미소 짓는 순간처럼, 삶도 그렇게 작고 소중한 장면들로 이어져 있는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산행 #북한산 #오봉 #주말일상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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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를 읽고, 글을 씁니다.나이 들어가는 삶의 감각과 가족. 부부의 시간, 일상에서 건져 올린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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