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나는 절대 갑옷을 벗지 않아
피카
갑옷을 입은 소년, 마일로
주인공 마일로는 대대로 이어져 온 기사 가문의 후손이다. 마일로는 완벽한 기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그친다. 웃고 춤추며 자유롭게 사는 어릿광대가 부럽지만, 자신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 나타날지 모를 용을 대비해 칼을 갈고 갑옷을 닦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갑옷을 벗지 않고 입은 채로 생활한다.
마일로에게 갑옷은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하지만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감춘 마음의 껍질이기도 하다. 그는 갑옷 덕분에 안전하다고 믿지만, 갑옷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책을 읽어 주며 손자 로리에게 물었다.
"마일로는 왜 갑옷을 벗지 않을까?"
로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갑옷을 좋아하나 보다."
다시 물었다.
"용은 정말 있을까?"
그러자 로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용은 공룡을 말하는 게 아닐까? 공룡은 지구에서 다 떠났잖아."
아이의 대답은 단순했지만 오래 남았다. 실제로 마일로의 나라에는 지난 1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용이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삶을 꽁꽁 묶어 둔다.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로리도 마음속에 자신만의 갑옷을 입고 있지는 않을까?
로리는 제법 완벽하려는 성향이 있다. 잘하고 싶어 하고, 스스로 세운 기준을 지키려 애쓴다. 그런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혹시 '실수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조금씩 쌓여 자신만의 갑옷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사실 마일로의 이야기는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패할까 봐, 상처받을까 봐, 뒤처질까 봐 우리는 저마다의 갑옷을 입고 살아간다. 좋은 부모가 되려 하고, 좋은 직장인이 되려 하고, 좋은 자식과 배우자가 되려 애쓴다. 그렇게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책을 읽으며 마일로의 갑옷은 그런 불안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해 주던 갑옷이 어느새 자유를 빼앗고 삶을 옥죄는 족쇄가 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감옥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옷을 벗어야 고칠 수 있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비가 쏟아지던 날 찾아온다. 비에 젖은 갑옷은 붉게 녹슬고, 마일로의 몸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그때 지나가던 어릿광대가 말한다.
"갑옷을 고치려면 일단 벗어야 해."
짧은 한마디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마일로는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투구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어릿광대와 눈을 마주한 순간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슬픔 때문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혼자 짊어졌던 부담과 긴장이 녹아내리는 해방의 눈물이다.
우리는 흔히 용기를 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용기를 다른 이야기로 들려준다.
진짜 용기는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며, 때로는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고.
갑옷을 더 단단히 입는 것이 아니라 벗어던질 수 있는 힘이야말로 진짜 용기라는 것이다.
갑옷을 벗은 마일로는 처음으로 햇살과 바람을 온전히 느낀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동안 무서워하기만 했던 용을 직접 만나 보고 싶어진 것이다.
용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생각하던 아이가, 이제는 만나 보고 싶은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성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고,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성장하는 거다. 기사가 아니어도 마일로는 마일로이고, 갑옷이 없어도 그의 가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갑옷을 입고 있나요
마지막 장면에서 마일로는 갑옷을 벗어 두고 노을 속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로리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네가 무엇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소중한 것이 아니란다. 그냥 너라서 소중하고 멋진 거야."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건네게 된다.
늘 괜찮다고 말하며 버티는 어른들에게, 너무 일찍 완벽함을 배우려 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혹시 당신도 너무 오래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책을 덮으며 나의 갑옷을 만져 본다. 그것이 정말 나를 지켜 주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녹슬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지.
만약 무겁고 답답한 갑옷을 입고 있다면, 잠시 벗어 두어도 괜찮다. 이 그림책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과 바람이 기다리는 진짜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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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당신은 어떤 '갑옷'을 입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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