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오이가 아롱사태 만나면 이게 바로 여름의 맛

아롱사태 충분히 삶아, 하루 이상 숙성... 오이냉채 얹어 한입

등록 2026.06.10 15:46수정 2026.06.10 15:4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롱사태 오이냉채
아롱사태 오이냉채 김선아

5월 중순 이후에는 봄인지 한여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더웠다. 그런데 지난주 몇 차례 비가 내린 뒤로는 다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작 봄인 5월에는 여름 같더니,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는 오히려 봄 날씨라니 참 요상한 계절이다.

계절을 준비하는 엄마의 부엌


날씨가 시원해지자 친정엄마가 곰탕을 끓이겠다고 나섰다. 여름에 기력이 떨어질 때 먹어야 한다며 우족과 꼬리뼈, 아롱사태를 한가득 사 오셨다. 더운데 무리라고, 정육점 가면 한 병에 만 원이면 살 수 있다고 만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여름에 기력이 없을 때 먹어야지, 파는 건 잡뼈인지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잖아. 집에서 해야 우족도 다 녹아 나오고 진짜야."

먹을 사람 없다고 하얀 거짓말을 했지만 손녀가 어릴 때부터 곰탕을 끓여주면 당면과 함께 한 그릇 뚝딱 해치웠는데, 만들어두면 장마철 선선해질 때까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침부터 부엌은 바빠졌다.

 잘 우러나고 있는 곰탕 국물과 곧 함께 삶아질 아롱사태.
잘 우러나고 있는 곰탕 국물과 곧 함께 삶아질 아롱사태. 김선아

엄마는 늘 계절을 준비하며 산다. 저번 주에는 양배추 물김치, 열무김치에 소금물로만 담근 전통 오이지, 식초·설탕·소금으로 절인 요즘 식 오이지, 간장 오이지까지 여름 준비로 몇 가지를 내리 만드시더니, 이번 주는 곰탕이다. 칠순을 맞이한 엄마의 음식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걸 실제로 해내는 에너지는 볼 때마다 새삼 놀랍다.

 친정엄마가 담근 전통 오이지가 누름돌 아래서 잘 익어가고 있다.
친정엄마가 담근 전통 오이지가 누름돌 아래서 잘 익어가고 있다. 김선아

엄마가 나이 들며, 일 년에 두 번쯤 허리가 아파 꼼짝 없이 누워 계실 때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꼭 이맘때처럼 여름, 겨울 대비 김치와 곰탕을 만드신 직후다. 그럴 때마다 병원비 생각하면 사 먹는 게 훨씬 싸다며 자식으로서 화를 내봐도, 그때마다 엄마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친정 아빠가 속상하게 해서 그런다며 허리 병의 원인을 돌렸다.


어릴 때부터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일까. 나 역시 음식 만드는 일과 먹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요리는 누구에겐 노동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겐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엄마에게 배웠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 많은 엄마를 보며 커오면서 봐왔기에 나 또한 음식, 요리에 대한 열정과 만들고 먹는 즐거움을 갖은 사람으로 큰 것 같다. 그러며 음식을 만들고 먹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자란 것 같다.

한동안 해외에서 생활할 때 감기 몸살이 심하게 걸려 이삼일을 꼼짝 없이 누운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의 갈비탕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아픈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가서 한국 갈비와 비슷한 숏 립(Short rib)을 사다 반나절을 끓여, 먹었더니 다음 날 신기하게 나았다.


오이지가 먹고 싶어 한국 오이와 비슷한 페르시안 큐컴버(Persian cucumber)를 사다 오이지를 담근 적도 있다. 해외 생활 내내 엄마 음식을 흉내 내며 살다 보니 어느새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엄마의 음식은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엄마의 사랑으로 자라고, 그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버티고, 다시 주방에서 즐겁게 요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사람은 엄마이고, 나를 지탱해 준 장소는 부엌이다.

칠순 엄마의 곰탕에 딸의 변주를

 칠순 엄마의 정성이 담긴, 하루 종일 푹 고아낸 곰탕
칠순 엄마의 정성이 담긴, 하루 종일 푹 고아낸 곰탕 김선아

그런 엄마의 곰탕에 내 나름의 변주를 하나 얹었다. 칠순 엄마 버전은 곰탕에 사태고기가 전부라면, 나는 그 사태고기를 건져내어 하루 냉장고에 둔 뒤 냉채를 만들었다.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던 시절 익힌 생활의 지혜다. 한 번에 한 가지 음식만 만드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음식을 뽑아내는 솜씨, 말하자면 칠순 엄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중국집에서 먹던 오향장육 냉채를 떠올렸다. 하지만 집에는 오향도 없고 고수도 없었다. 대신 냉장고에 있던 오이를 두드려 사용했다. 얼마 전에 담가둔 붉은 고추청을 넣었더니 맵싸한 맛이 올라와 입맛을 돋운다. 진 오이 사이사이로 양념이 스며들고, 얇게 저민 쫀득한 아롱사태를 얇게 저민 쫀득한 아롱사태로 싸 먹으니 이건 미미(美味), 진짜 맛있는 맛이다.
그렇게 칠순 엄마의 곰탕과 나의 아롱사태 오이냉채가 완성됐다.

 하루 숙성된 아롱사태를 얇게 써니, 쫀득한 결이 살아나 한층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하루 숙성된 아롱사태를 얇게 써니, 쫀득한 결이 살아나 한층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김선아

냉동실에는 곰탕이 가득 쌓여 있다. 이제 장마가 오고 무더운 여름이 시작돼도 든든하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칠순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엄마의 사랑이 함께 담겨 있으니 말이다.

 엄마의 곰탕에 나만의 변주로 탄생된 아롱사태 오이냉채
엄마의 곰탕에 나만의 변주로 탄생된 아롱사태 오이냉채 김선아

[아롱사태 오이냉채]
▶ 재료
아롱사태, 오이, 마늘, 파, 붉은고추, 간장, 식초, 겨자, 설탕, 후추

▶ 만드는 법
① 아롱사태는 핏물을 뺀 뒤 한 번 애벌로 삶아낸다. 이후 1시간 정도 충분히 삶는다. 뚜껑을 열고 삶아야 고기 냄새가 안 난다.
② 충분히 삶아진 아롱사태는 한 김 식힌 뒤 랩으로 단단하게 싸서 냉장고에 하루 이상 두고 숙성시킨다.
③ 마늘, 파, 붉은고추는 잘게 다진다. 여기에 간장, 식초, 설탕을 1:2:1 비율로 넣고 후추와 겨자는 취향에 맞게 가감해 소스를 만든다.
*취향에 따라 견과류나 깨를 넣으면 더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④ 하루 숙성한 아롱사태는 얇게 저미듯 썬다.
⑤ 오이는 껍질을 벗긴 뒤 칼등이나 방망이로 두드려 부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⑥ 준비한 오이 위에 아롱사태를 올리고 소스를 끼얹어 완성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인스타에도 실립니다.
#요리 #곰탕 #레시피 #엄마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 문화와 예술, 요리, 사는 이야기로 글을 씁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압록강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압록강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 2 '이수지 영상'에 충격 받은 미국 어린이집 교사들, 이런 말까지... '이수지 영상'에 충격 받은 미국 어린이집 교사들, 이런 말까지...
  3. 3 전 세계 50여 명 연구자들의 카이스트 보이콧, 약속은 지켜졌나 전 세계 50여 명 연구자들의 카이스트 보이콧, 약속은 지켜졌나
  4. 4 '이재명 실패론' 유시민, 유튜브 여론은 비판 우세... 극우 채널에선 "잘 싸운다" '이재명 실패론' 유시민, 유튜브 여론은 비판 우세... 극우 채널에선 "잘 싸운다"
  5. 5 '미국 교재 영어교실' 공약 세종교육감, 본인 한글 맞춤법은 엉터리 '미국 교재 영어교실' 공약 세종교육감, 본인 한글 맞춤법은 엉터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