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10 17:30수정 2026.06.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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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 달은 애들한테 웃어주면 안돼, 이것만 잘 기억하면 담임하는 1년 편하다."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기간제 교사로 첫 발을 뗀 26살, 새학기를 시작하기 직전 들었던 이야기다.
영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 촬영장 대신 나는 대안학교에서 일을 시작했다. 교육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교직이수를 위해 나갔던 교생실습이 한몫을 했다. 졸업직전에 교생으로 만난 영상 특성화고 아이들은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었다. 나의 졸업 작품이 칸 영화제에 진출할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영화과에 입학했던 그 옛날의 반짝임을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졸업을 하고, 칸영화제에 가는 대신, 학교를 선택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전까지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면 핑계이고 교생실습 때 마주한 아이들의 눈빛이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반짝거렸다. 유한한 나의 모든 것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한 학기 동안 전교생이 4명밖에 안 되는 작은 대안학교에서 영상수업을 진행했다.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했던, 지금은 없어진 영상대안학교였다. 독실한 무교인 나는 학교에 온전히 젖어들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서로의 놀림감이 되어가며 신나는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 선배의 추천으로 영상 특성화고 기간제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한 학년에 10개 반이 있는 큰 학교였다. 1학년 담임이 되었고, 새학기 직전 인수인계를 받으며 27명의 아이들 명단과 사진을 받았다. 명단을 받았을 뿐인데 손이 무거웠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는 나에게 선배 교사들은 대안학교 때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3월 한 달은 아이들에게 웃어주면 안 된다는 조언을 남겼다. 아이들에게 기세를 보여주어야 통제하기 쉽다는 이야기였다.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교사의 역할에 포함되는 것인가?
관리자로 성장하는 교사
선배들의 조언을 뒤로 하고 미소를 가득 지으며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곧 웃지 않는 교사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교복을 '예쁘게' 입지 않는 건 담임의 관리 소홀.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이 많은 것도 담임의 지도 역량 부족. 교실 책상 줄이 똑바르지 않은 것도 관리 소홀이라는 명목으로 부장 선생님에게 여러 번 불려간 결과였다. 1년마다 기간제 계약을 갱신해야 했던 상황에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을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교사로 성장했다.
시험기간 오후에 교무실에 있으면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천국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에 기이함을 느끼다가 무감각해졌다. 아이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묻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규칙을 우선으로 제시하고 통제를 하는 교사로 성장했다. 강당으로 아이들이 행사 때문에 모인 날, '강당 무대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앞사람 뒤통수가 보여야 잘 서있는 거다. 다들 똑바로 서라'는 교감선생님의 이야기에 울화가 치밀어도 한마디도 못하는 나 자신에게 무기력함을 느꼈다.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 발언에 항의한 여학생이 젠더 갈등을 조장시키는 유별난 아이라고 전교생 앞에서 평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황과 나 자신 모두 끔찍했다. 그리고 곧 그런 일쯤이야 담아두지 않고 흘려듣는 교사로 성장했다.
부서지고 회복하고 질문하고
그러다 결국,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1년마다 익명으로 받는 교원평가에서 몇 아이들의 도를 넘은 장난질이 트리거가 되었다. 6년간의 기간제 생활을 끝냈다. 지속하면 나 자신이 부서지게 될 거 같은 느낌이었다. 꽉 끼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다가 피가 안 통해 괴사하기 직전이었달까. 학교라는 공간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깊이 침잠한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보냈다. 사회에서 판단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맞는다고 하는 일이 아닌, 나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의 지하철 행동의 이유를 알아보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기후환경 문제를 마주했다. 세상의 모든 건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했다. 오래도록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비로소 내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발을 측정해 신발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알게 되어 받으러 갔다. 발모양과 아치의 높이, 걸을 때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 움직임 패턴과 발의 정확한 크기, 신어야 하는 신발의 형태를 알게 되었다. 달리기를 좋아한 세월이 나름 긴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30살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무척 만족스럽게 신발을 사서 집으로 향하던 중 '이런 걸 왜 학교에서 안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건강하게 걷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기하와 벡터를 먼저 배웠다. 발 모양 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여성이 자신의 가슴이 어떻게 생겼고 속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를 20대 초중반쯤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통해 알게 된다.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왜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신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하는, 입고 먹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는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중 고양자유학교의 교사 채용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기대감을 갖게 했던 교사 채용 공고문

▲고양자유학교 전경 초등과정인 싹터 재학생이 그린 학교 전경
고양자유학교
공고문에는 아이가 직접 그린 학교의 전경이 있었다. 그 그림에서 깊은 따스함을 느꼈다. 학교가 지향하는 사고, 감성, 의지를 키우는 교육과 미디어나 사교육, 먹거리에 대한 약속을 읽으며 공감을 많이 했다.
특히 미디어에 대한 약속이 인상적이었다. 미디어와 정말 가까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학교의 신념과 교육 방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음악을 들려주는 것 보다 직접 음악을 부르고 연주해보게 하는 것. 사진을 찍는 것 보다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깊이 느끼고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 영상을 소비하는 것 보다 나로 시작해서 직접 즐길 수 있는 걸 찾아보는 걸 우선으로 한다. 그래서 중1 과정인 7학년 때까지 아이들은 개인 휴대폰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약속을 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학교는 어떨까?' 기대감이 차올랐다. 자기 자신으로 시작하여 미디어를 천천히 접하고 중등과정부터 미디어리터러시를 철저히 배우는 학생들이 만드는 영상은 어떨까? 고등과정에 있다는 미디어 수업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등줄기에 땀이 고였던, 교사회 전원이 참여하는 면접을 통해 고양자유학교의 식구가 되었다. 지금은 고등과정인 숲터의 미디어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깊이에 매번 놀라곤 한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아이들의 당당함이 매번 감탄스럽다. 처음으로 1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떡볶이부터 키에 대한 고민, 콤플렉스와 가족이 된 존재 등 여러 주제를 아이들이 가져왔다. 알록달록하게 완성될 작품이 무지막지하게 기대된다.
고양자유학교에서는 하나의 아이를 길러내기 위해 그 아이의 명확성과 탁월함만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나의 주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세상과 나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한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주변을 구성하는 존재들과 환경이 안정적이니 화살표는 자연스럽게 내면과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한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나와의 연결성을 찾아낸다. 누가 잘했는지 경쟁하고 비교하고 평가 하는 게 아닌,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어떻게 빛이 나는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학교가 문제없는 유토피아는 아니다. 아이들 간의 사건은 언제나 존재하고 서로 상처 받는 일도 생긴다. 교사, 학부모, 학생의 수를 합하면 100명이 훌쩍 넘는 교육 공동체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혹은 상상 이상의 여러 가지 일이 언제든 생긴다. 하지만 언제나 사건을 마주하고 해결해나가며 공동체는 점점 단단해졌다. 잔뜩 엉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실타래는 한명의 숙제가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마주하고 함께 고민하고 엉켜버린 실을 풀어나간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짐이 무거우면 같이 짊어지고 함께 길을 걸어간다. 그 과정이 지난하기도 하고 세상의 속도에 비교하면 굉장히 느리지만 함께 하기 위해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학생이 그려준 캐릭터 25년 12학년이 그려준 네임카드
이민애
학교에서 교사들과 부모들은 별칭을 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별명인 '신나'를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서로의 속도를 바라보고 발맞추어가며 신나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언제든 아이들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살피고 지켜보면서, 곁에 있는 안전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러다 학교가 신나지 않으면 그 이유를 함께 솔직하게 나누고 질문하며 함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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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엔 웃지 말라"던 선배 교사의 충고, 통제하는 교사에서 곁에 선 어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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