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하루지만, 마을은 영원합니다

갈등의 파도를 넘는 '교량형 공동체'의 힘

등록 2026.06.10 16:16수정 2026.06.10 16:16
0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지나갔습니다. 골목마다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걸렸고, 유세 차량에서는 어디선가 본 듯한 목소리들이 인삿말과 공약을 쏟아냅니다. 그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엔 다를까 싶어 솔깃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홍보단의 흥겨운 댄스가 지나가는 길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지기도 하죠. 어느새 선거는 우리 사회의 큰 이벤트이자 일종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되면 마을 곳곳에서 낮은 한숨 소리도 들려옵니다. 어제까지 정답게 인사를 나누던 이웃이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색한 침묵을 지키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차가운 설전이 오가기도 하죠. 빨리 선거가 끝나기를 바라지만, 이대로라면 선거가 끝난 뒤에도 관계가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왜 정치는 우리를 갈라놓는 걸까요?" 그리고 희망을 담아 질문을 바꿔봅니다. "그럼에도 우리 마을은 어떻게 화합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선거철 갈등을 건너고, 마을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공동체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양극화라는 파도, 우리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마음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사회 양극화 진단과 대응 모색> 보고서 중 '정치·사회 참여의 양극화 실태(김기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정치 참여는 경제적 배경과 사회적 자본의 크기에 따라 일정한 격차를 보입니다. 삶의 만족도가 높고 사회적 연결망이 탄탄한 사람일수록 투표나 정책 제안 같은 시민적 권리 행사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도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타적인 면모입니다. 같은 불이익을 당했을 때도 본인의 피해보다 사회적 불공정, 즉 부정과 비리를 목격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서겠다고 응답했거든요. 나의 이익보다 우리 모두의 공정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특징이자 공동체의 밑바탕입니다. 사회를 위해 한 겨울에도 촛불을 들고 나갔던 것은 비단 나의 이익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관적 사회 기여감'입니다.


출처 : 1차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1)사회참여, 자본, 인식 조사자료 2차 정치. 사회참여의 양극화 실태(김기태)
▲출처 : 1차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1)사회참여, 자본, 인식 조사자료 2차 정치. 사회참여의 양극화 실태(김기태) 이언주

2025년 PLOS ONE에 발표된 미시간주립대 연구팀의 연구(Reinhart et al.)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회에 가치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투표 의향이 현저히 높고, 정치적 목적의 기부나 자원봉사 같은 적극적 참여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마을공동체 활동은 바로 이 기여감을 키우는 토양입니다. 함께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참여형 모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의 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자연스럽게 싹트게 됩니다. 투표율은 그 부산물일 뿐입니다.

사회적 기여 인식이 정치 참여에 미치는 영향 (연구 1)
▲사회적 기여 인식이 정치 참여에 미치는 영향 (연구 1) 이언주

마을 안의 대화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왜 선거 기간에만 되면 이 효능감에 균열이 생기는 걸까요? 정치인들의 토론은 승리를 위해 날이 서 있지만, 마을 안에서의 대화는 결이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우리 지역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CivicPulse가 작성한 카네기 재단의 2025년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내 공직자들은 국가 전체의 양극화에 대한 우려는 89%로 매우 높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에 대해서는 30% 수준으로 훨씬 낮다고 응답했습니다. 거대한 정치 담론에서는 갈등이 크게 보이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주민의 일상과 맞닿은 구체적 문제를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나라 전체의 온도계와 우리 마을의 온도계는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데이터가 주는 희망입니다.

출처 : : Polarization in America: Survey of Local Government https://www.civicpulse.org/
▲출처 : : Polarization in America: Survey of Local Government https://www.civicpulse.org/ 이언주

특히 이 리포트는 지역 기반의 참여 활동이 시민 참여를 높이고 양극화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합니다. 주민들이 직접 만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활동, 바로 우리가 마을에서 해오던 그것이 공동체 회복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활동을 통한 더 많은 대화가 회복을 북돋을 수 있습니다.

결속형 자본 교량형 자본
▲결속형 자본 교량형 자본 이언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량형 공동체'

사회적 자본 연구의 대가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혈연·지연·학연처럼 같은 집단 안에서 끈끈하게 묶이는 결속형(Bonding) 자본과,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이들을 가로질러 연결하는 교량형(Bridging) 자본입니다.

퍼트넘은 결속형을 '강력접착제'에 비유합니다. 내부를 단단하게 붙여주는 힘이죠. 하지만 강력접착제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같은 생각끼리만 더 굳게 뭉치고, 다른 생각은 밀어내게 됩니다. 반면 교량형은 공동체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윤활유'입니다. 서로 다른 부품들이 마찰 없이 맞물려 돌아가게 해주는 역할이죠.

마을공동체가 지지하는 후보가 같은 사람들끼리만의 모임에 그친다면, 오히려 외부를 배척하는 확증편향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령도, 직업도, 정치적 견해도 다양한 주민들이 섞인 교량형 공동체는 다릅니다. "당신의 의견은 나와 다르지만, 우리 마을을 아끼는 마음만은 같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철 우리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교량형 자본, 즉 이웃 간의 신뢰입니다.

선거 이후의 마을을 준비하며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입니다. 모두 함께 참여하고, 그 과정을 즐기고, 결과에 수긍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축제가 끝난 뒤 마을에 상처만 남는다면, 축제가 아니라 재난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해 꾸준히 쌓아온 사회적 신뢰는, 선거철의 뜨거운 열기를 마을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전환해주는 힘이 됩니다. 다소 오래된 연구이지만,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2016)에서도 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경제적·정치적 이익보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관계의 소중함, 이른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마을공동체가 그 사이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마을의 미래를 위해서는 씨실과 날실이 엮이듯,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번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마을 곳곳에는 다양한 공약과 목소리가 오갔고, 때로는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다시 함께 살아가야 할 일상이 남아 있습니다.

데이터가 증명하듯, 공동체 안에서 쌓아온 신뢰와 교량형 자본은 그 어떤 정치적 풍랑에도 마을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뿌리가 됩니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마을의 '다양한 의견'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마을은 비로소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우리 마을을 나누는 칼날이 아니라, 어떤 마을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또한 갈등의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고 더 나은 마을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기를 기대합니다.

선거는 하루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마을과 이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언주 귤커뮤니케이션 대표

참고 데이터

- Reinhart, E.C. et al. (2025). Perceived social contribution and its associations with political participation. PLOS ONE.
<u>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30385
- <u>https://www.civicpulse.org/research/democracy-and-elections/polarization-in-america/december-2025
- <u>https://www.socialcapitalresearch.com/wp-content/uploads/2018/11/Functions-of-Social-Capital.pdf
- 김기태. (2023). 정치·사회 참여의 양극화 실태. <보건복지포럼>, 2023년 2월호(No.316), 51-66. 한국보건사회연구원.
<u>https://repository.kihasa.re.kr/handle/201002/42083
- 백영민, 김용찬, 채영길, 김유정, 김예란. (2016). 시민들의 가치지향, 정치적 이념성향, 그리고 마을 공동체 활동 참여의 관계:
서울시민에 대한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 사회과학논집 (SOCIAL SCIENCE REVIEW) >, 47(1), 239-263.
<u>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10674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도 실립니다.
#9기지방정부 #지방선거 #마을공동체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댓글

지속가능한 마을과 자치, 도민과 새로운 경기도를 만들고 연대와 협력의 자치공동체, 마을의 권리를 보장하는 지원의 혁신을 미션과 비전으로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국서 두 번째로 큰 수목원이 갑자기 폐쇄...이해가 됩니까? 전국서 두 번째로 큰  수목원이 갑자기 폐쇄...이해가 됩니까?
  2. 2 독일인들이 한국을 동경하게 만든 남자 독일인들이 한국을 동경하게 만든 남자
  3. 3 아기띠 메고 7.3km 행군, 고속 노화의 여름이었다  아기띠 메고 7.3km 행군, 고속 노화의 여름이었다
  4. 4 "김혜경 여사, 몽골 대통령과 악수하고 손 털었다" 거짓 "김혜경 여사, 몽골 대통령과 악수하고 손 털었다" 거짓
  5. 5 안규백 국방부 장관 흔드는 의도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흔드는 의도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