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11 13:22수정 2026.06.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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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30여 년 째 '부모성 함께쓰기'를 실천해 온 육십 넘은 남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직업은 버스운전원. 그러면서 바이크와 요트를 타고 평화 운동, 생태운동의 현장 곳곳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김송기은(이하 기은)님을 수국이 막 피어나는 지난 6월 초, 드넓은 백사장을 드러낸 제주도 표선 바다 앞 카페 플로에서 만났다.
기은님은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서 8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살던 집이 지대가 높은 곳이라 집에서도 멀리 바다가 보였다. 밀물에 바닷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장면, 해질 무렵이면 고깃배들이 가득 올라오는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어린 시절, 졸(부추의 충청도 방언)을 가지고 마당의 구멍에 쑤셔 넣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자그마한 구멍에 졸을 넣으면 벌레가 꼬물꼬물 올라오는데 그게 그렇게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 흙이 깔려 있는 마당은 농사를 준비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추수 타작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잔치가 있을 때면 차일을 쳐 햇빛도 가리고 비가림도 하는 여러 기능을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부모성 함께 쓰기'를 실천한 이유

▲ 바이크로 제주 일주 중에 성산 섭지코지 앞에서(2016년)
김송기은
인터뷰 중 '부모성 함께쓰기' 실천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기은님은 이렇게 답했다.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97년 무렵 여성운동 단체에서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성차별이고 사회적 편견이라 생각했어요. '나'를 이루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인데 한쪽의 성만을 이어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어머니의 '김'과 아버지의 '송'을 함께 쓰며 이후 30여 년 가까이 '김송기은'으로 살고 있습니다."
41세에 얻은 늦둥이 막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어머니와 정서적 유대가 매우 강했다.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억눌려 살던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컸던 것도 어머니의 성을 함께 된 계기도 된 것 같다고.
"한국 사회에서 살다 보면 시민운동 조직 혹은 생태 환경을 기치로 내거는 정당 같은 곳에서도 민주와 평등을 지향한다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가부장성을 목격하게 되거든요. 그런 가부장성은 때론 권위주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필요 이상의 대응으로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가해자로부터 폭력적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기에 성인지 교육은 어려서부터, 가정내에서부터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카페에서 인터뷰 중
김연순
기은님은 대전에서 대학을 마치고 청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아이도 둘을 낳았다. 마흔 여덟살 되던 해 사별을 하고 이듬해엔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삼우제를 마치고 아들에게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선뜻 따라 나서 주었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임실을 지나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거쳐 장흥 노력항까지 와서 오렌지 호 배를 타고 성산항으로 들어왔다. 사흘 반이 걸렸다. 이어서 자동차를 렌트해 제주 일대를 좀 돌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아들이 학교에 가서 아빠와 함께 자전거 타고 제주도 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 했단다. 이 아들이 지금은 서른 한 살이 되었고 딸은 서른 네 살이 되었다. 둘 다 육지에 살아 가끔씩 만나곤 한다고.
제주에 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53세 되던 2015년도의 일이니 이제 11년째다. 현재 서귀포 공영버스 소속의 버스 운전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7년 3월에 입사했으니 이제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10년차 버스 운전원의 보람은 무엇일까?
"운전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
"제주시에 비해 서귀포시 쪽은 손님도 적고 차량 통행도 적어 시간에 그리 쫓기는 편은 아니에요. 손님들은 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거나 병원에 가는 어르신들인데,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어르신들을 기다려 줄 여유가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올라오면서 '아이고'를 대여섯 번 하면서 올라오시거든요. 버스에 오르는 게 산을 하나 오르는 것 같은 힘든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운전하는 노선은 승객이 많지 않다 보니 자주 오가는 분들과 인사하게 되어 좀 지나니 친숙해 지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자기 가족 얘기도 하고 그러십니다.
신흥 2리 고수동이 버스 종점인데 오늘도 거길 돌아 나오는데 거기 사는 사람이 저보고 '오라방 오라방' 하더라고요. 106세 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분인데, 그런 분 만나면 어머니 안부도 묻고 또 산책 나오시면 내려가 인사도 드리고요. 귤 철이면 어떤 분은 버스에서 내려 귤을 올려놓고 가셔요. 먹으라고. 이런 건 마을에서나 가능하지 도시에는 없는 일이잖아요. 운전하면서 그런 게 참 보람있고 좋습니다."
승객들과 안부 인사 나누는 모습,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르신들을 태우면서 높은 버스 계단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았다. 휠체어나 유아차 등을 위한 저상버스 필수 운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맞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있다거나, 장애가 있거나, 또는 노인이 버스 타는 데 제약이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차별이고 불평등이죠. 우리 회사도 저상버스가 있긴 해요. 저상버스를 타면 확실히 편하다고 말씀하시고요."
이어서 어렵고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제주가 따뜻할 거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겨울철 제주는 춥고 눈도 많이 내리거든요. 폭설이 내리면 운전원들은 긴장하게 되죠. 전날 밤부터 눈이 얼마나 내리나 예의주시하고 새벽이 되면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체인도 감고 단단히 준비를 합니다. 그럴 때 좀 진땀을 빼죠. 그 외에 특별히 애로사항은 별로 없습니다."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진도 팽목항에서(2015년 4월 초)
김송기은
해양환경단체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는 지인의 소개로 가입했고 창립총회에도 참석했다. 제주는 사면이 다 바다라 그가 바다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했다. 버스 운행하다가 쉬는 시간에 잠시 맨발로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곤 한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봉지를 하나 들고 걷는다.
줍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담배꽁초라고. 특히 담배꽁초 필터가 물에 풀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경악스럽다고 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플라스틱 빨대도 많이 보인다고 했다. 미세플라스틱이 먹이사슬 타고 인간에게까지 영향 미친다고 하니, 바다를 지키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은님은 20여 년 전 바이크 면허를 딴 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제주 전역의 집회 현장에 바이크를 타고 나타난다. 제주에는 더 이상 공항이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동검은이오름 '제2공항 반대 달맞이 행사'에도 참여한다. 남원의 남선사에서 열리는 '좋은 영화보기 모임'에도 참여하고 '송악산 알뜨르 사람들' 주최의 송악산 달마실에도 주기적으로 참여한다.
요즘 특별하게 관심 갖는 곳은 반전평화운동 하는 '개척자들'이란 단체라고.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들 덕에 요트에 흠뻑 빠져 있다고 했다.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 구호품을 전달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들과 교류하며 요트 조종 면허도 따고 바다에 나가 훈련도 함께 한다. 예측불가능한 기후 앞에서 제주 바다에 대한 어떤 바람이 있는지 물었다.
"제주 바다의 백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산호초 군락이 훼손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느리고 불편하게, 좀 덜 갖고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으로 전환이요."
기은님은 육십을 넘긴 후부터는 음력 대신 양력 생일을 기념하는데, 양력 생일이 공교롭게도 10월 10일이다. 세상을 하직할 때도 스스로 원하는 날,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다고 했다. 평소 스콧 니어링을 존경하는데 그는 딱 100세 되는 해, 100세 생일밥을 먹은 후에 곡기를 끊고 18일 만에 이 세상을 떠났다고. 본인도 스콧 니어링처럼 때가 되면 곡기를 끊어 이 세상을 마치고 싶단다. 별 탈 없이 오래 살게 된다면 미수인 88세 혹은 망백인 91세쯤 지인들을 불러 장례식 대신 2박 3일 잔치를 하며 세상에 하직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기은님의 생애를 마무리 하는 잔치에 초대받길 고대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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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제주에 살고 있다. 섬과 뭍을 오가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홍시'라는 별칭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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