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등록 2026.06.14 10:18수정 2026.06.14 16:2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일상을 예술로 가꾸어가며 좋은 책, 공연, 전시 등을 소개합니다.[기자말] |
'그림책 속 세상으로 들어가면 어떤 기분일까?'
어릴 적부터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권윤덕 작가님의 새 그림책의 제목이자 배경인 <만희네 꽃밭>에 다녀온 것이다. <만희네 집>에 이어 30년 만에 나온 <만희네 꽃밭>(2026년 6월 출간)은 실제 작가님께서 살고 있는 마당의 사계절을 담은 그림책이었다.
출간을 기념하며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는 '권윤덕 작가의 꽃밭으로 초대합니다'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열었다. 작가의 집, 꽃밭, 작업실에서 열리는 매우 특별한 북토크이기도 했다. 이벤트 게시물에 댓글로 사연을 써서 당첨 소식을 받고 며칠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렜다.
그도 그럴 것이 <만희네 꽃밭>은 내가 어릴 적 읽었던 <만희네 집>의 후속편과도 같은 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가슴 절절하게 만난 <꽃할머니>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일과 도구> 등으로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그림책들의 작가님을 작업실에서 뵙는다는 게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다

▲ 만희네꽃밭
길벗어린이
북토크는 지난 5일 오후 2시부터였다. 안내 문자에는 오후 1시 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쓰여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는데 대문부터 그림책 표지와 똑같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그림책 속 여름 꽃밭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팔처럼 활짝 피어난 주황 나리꽃과 달빛처럼 은은한 노란빛의 낮달맞이꽃, 새빨간 앵두가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과일야채 샐러드와 보리차, 오미자오디청 등 시원한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탁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그림책 속 탁자와 책장, 조명과 의자, 접시까지 똑같아 무척 놀라웠다. 잠시 뒤 그림책에서와 꼭 같은 얼굴을 한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셔서 직접 커피를 내려주셨다. 그 순간 정말인지 그림책 속 만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북토크에는 총 10명의 독자들이 함께 했다. 각자 간단히 소개를 한 뒤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따스하게 환대해 주셨던 권윤덕 작가는 그림책에도 등장한 사연이 깃든 오래된 가구들과 어머님께 받으셨다는 그릇들도 소개해 주셨다.
<만희네 집>을 작업하셨을 때 5살이었던 만희가 이제는 35살이 되었지만, 그림책 속에서 아이의 어린 시절을 다시 불러내어 그리는 내내 행복하셨다고. 그 말씀을 하실 때엔 작가님의 얼굴에 모란처럼 큰 미소가 피어났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게 되었다. 작가님의 말씀 끝에 잠시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내가 가르치던 6학년 학생의 질문을 대신 전했다.

▲ 만희네꽃밭
이정현
"작가님께 그림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작가님께서는 당신이 그림책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우울증에 빠졌을 것 같다는 말로 말문을 여셨다. 당신의 삶에서 드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그림책 작업을 해오셨다며, '그림책은 나를 살리는 것'이라는 표현에서 내 안에서 뭔가가 울컥하며 움직였다. <만희네 집> 30주년 특별판 마지막에 있던 인터뷰에서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건 매일매일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그 시간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바람이 그림으로 발현됐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작은 화판>이라는 자전적 에세이에서의 글귀도 떠올랐다.
나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농사짓는 일과 비슷하다. 책이 나올 때쯤이면 나는 다시 세상과 나에게 새로운 물음을 갖게 되고, 새로운 씨를 뿌리기 시작한다. 지혜롭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성실하게 땅을 일구는 농사꾼처럼 나도 그렇게 한 걸음씩, 한 권씩 일구면서 그림책의 싹을 틔우고 거두려 한다.
이 글귀들은 내 안에서 메아리처럼 계속 울려 퍼졌다.
'수를 놓듯' 섬세한 선들과 고운 색감의 비결

▲ 만희네꽃밭
이정현
질의응답을 마치고 2층 작업실로 함께 올라갔다. 2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창문에 붙어있는 독수리 모양 버드세이버 스티커였다. 책 표지에서 보고 무슨 새일지 궁금했는데, 새들이 창문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작가님께서는 서재와 몇 권의 책들을 소개 시켜 주신 후 서재 창문 앞에 모아두신 것들을 보여주셨다. 새의 깃털, 죽은 매미와 사마귀와 돌 등 마당에서 수집하신 것들과 말린 디포리, 불가사리 등이 있었다. 작은 사물도 놓치지 않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이 찾으시는 작가님의 깊은 시선이 느껴졌다.
이후 자리를 옮겨 이젤 앞에 서신 작가님께서는 작업을 하실 때 쓰시는 물감과 붓 등을 보여주셨다. 수많은 붓들 중, 첫 책에서부터 쓰시는 아끼는 붓과 엄청 얇은 붓도 있었다. 한지 위에 여러 겹 색을 올리는 전통 민화 기법을 활용하신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마치 '수를 놓듯' 그려지는 작가님 특유의 섬세한 선들과 깊고도 고운 색감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 비결을 알 수 있었다.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린 원화들의 느낌과 색을 잘 살리기 위해 디자이너 분께서 여러 노력을 하신 이야기와, 도장처럼 파여 있는 제목의 색을 지붕 선의 색깔과 통일한 이야기 등 그림책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들으니 정말 흥미진진했다. 그림책에 담긴 한 사람의 인생과 이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그림책의 무게가 왠지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림책을 안은 두 팔에 더 힘이 들어가 품 속에 소중하게 꼭 끌어안게 되었다.
다시 꽃밭을 나서며, 나는 내 마음 안에도 그림책에서와 같은 꽃들이 만개한 것이 느껴졌다. 그 꽃에 이름을 붙인다면, '행복, 기쁨, 사랑, 감사'라 할 수 있겠다. 겨울의 추위 같은 고통을 견디고, 천둥 번개 같은 고난을 거름 삼아 기어코 피어난 꽃들 말이다.
만희네 꽃밭
권윤덕 (지은이),
길벗어린이, 202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공유하기
대문 열자마자 감동 받은 집, 가구 보고 놀란 이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