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의병 최초 순국, 의병장 정시해 120주기 추모제

전북 고창에서 11일 추모제 열려

등록 2026.06.12 14:49수정 2026.06.12 14:49
0
원고료로 응원
일광(一狂) 정시해 의병장 순국 120주기에 부쳐

강산이 통곡하고 사직이 무너지는데
어느 선비가 붓을 쥐고 제정신으로 살랴
스스로 미치광이라 부르며
피눈물로 수염을 적시던 서른셋 청춘

태인 무성서원에서 일어난 병오창의의 불길
그 선봉에서 군사를 호령하던
호남의 굳센 중군장이여!

남도의 산천을 깨우며 전장을 누비던 발걸음
순창 객사에 몰아친 왜적의 빗발치는 총탄 앞에
임은 스승을 방패 막아 서슴없이 몸을 던졌도다

최초의 호남 의병장 피 흘려 쓰러지던 날
그 장렬한 선혈이 영천과 순창의 대지를 적셔
식지 않는 구국의 불꽃으로 타올랐나니

보아라
고창의 하늘 아래 모인 후손들의 눈빛을!
백스무 해를 굽이쳐 흐르는 저 의로운 광기(狂氣)는
목숨을 버려 대의를 취한 사생취의(捨生取義)의 불꽃
임이 심어놓은 서슬 퍼런 투지는
이 강산이 다하도록 활활 타오르리라.

이는 어제(11일) 낮 2시,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동리국악당 대강당에서 거행된 '순국 제120주기 일광 추모제'를 지켜보며 기자가 쓴 시다. 고창의 하늘이 마치 가을하늘처럼 푸르른 날, 기자는 이날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5시 서울에서 고창을 향해 달렸다. 이날 추모제는 (사) 일광정시해의사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으며 국가보훈부, 광복회, 고창군의회, 고창향교, 무장향교, 흥덕향교 등의 단체가 후원했다.


추모제 인사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 김진 광복회 수석부회장, 박성만 고창군의회의 자치행정위원장, 최용규 전 국회의원, 정시해 의병장 증손자 정만기 일광기념관장(왼쪽부터)
▲추모제 인사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 김진 광복회 수석부회장, 박성만 고창군의회의 자치행정위원장, 최용규 전 국회의원, 정시해 의병장 증손자 정만기 일광기념관장(왼쪽부터) 이윤옥

추모제에는 면암 최익현의 현손자인 최진홍 박사를 비롯하여 전영복 의병선양회 회장 등 독립유공자 관련 단체 회원들을 비롯하여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김진 광복회 수석부회장, 정운천 초대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영식 고창군 부군수, 박성만 고창군의회의 자치행정위원장 등 중앙과 고창 지역의 인사들과 지역 주민 등이 500석의 대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2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추모제에 앞서 학생콘텐츠 경진대회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임승희(고창초), 문지성·정유진(강호항공고), 김희태(고창중), 류연제(자유중), 전서빈(고창초) 등 학생들의 시상식이 있었다.


학생컨텐츠 경진대회 시상식 학생컨텐츠 경진대회 시상식, 김진 광복회 수석부회장이 상을 주었다.
▲학생컨텐츠 경진대회 시상식 학생컨텐츠 경진대회 시상식, 김진 광복회 수석부회장이 상을 주었다. 이윤옥

이날 권오을 국가보훈부장관은 추모사에서 "120년 전에는 총칼로 남의 나라를 식민지화했으나 미래 시대는 뛰어난 기술력과 문화의 힘으로 제압할 것이다. 그 기초는 일광 정시해 의병장 등 선열들의 투철한 독립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자강(自强)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세계로 도약하는 민족으로 성장해야 한다. 국가보훈부는 선열들이 흘린 피의 역사에 제대로 된 예우로 보답해 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진 광복회 수석 부회장은 "의병항쟁은 민족의 위대한 정신적 자산이다. 의병들은 열악한 전투환경에서도 결사 항전의 정신과 사생취의 정신을 실천하다 순국의 길을 걸었다. 의병들의 활동은 독립군과 광복군에 이어 오늘날 국군의 뿌리가 되었으며 이는 한민족을 지탱해 주는 영원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김영식 고창군 부군수, 박성만 고창군의회 자치행정위원장 등의 내빈들은 추모사에서 "일광 정시해 의병장 순국 102주기를 추모하며 앞으로 의병정신 선양과 독립운동 정신 계승을 위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보훈문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생명력 있는 활동을 뒷받침하고 이끌어 가겠다"라는 의지를 내비치는 등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삶을 이어 가기 위한 지역 나름의 포부를 밝히는 추모사를 들으며 장내에서는 뜨거운 응원의 함성이 장내를 달구었다.

한편, 일광 정시해 의병장의 증손자이자 일광기념관을 맡고 있는 정만기 관장은 유족대표 인사에서 "증조 할아버님인 정시해 의병장의 삶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는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추모제 참석자 추모제에 참석한 분들
▲추모제 참석자 추모제에 참석한 분들 이윤옥

오후 2시 추모제에 앞서 일찍 도착한 기자는 추모제가 진행될 동리국악당 바로 앞에 자리한 일광기념관에 들러 정시해 의병장의 삶을 눈으로,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기념관 2층에 전시해 놓은 전시장은 매우 정갈하게 꾸며져 있을 뿐 아니라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일광 정시해 의병장의 서른두 해 삶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의미 깊은 공간이었다.

특히 전시관 벽에 걸린 '일광자호기(一狂自號記)'는 1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보는 이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일광자호기는 정시해 의병장이 국권 침탈의 비통함을 담아 스스로 미치광이라 칭하며 남긴 한시다.

主辱臣當死 (주욕신당사) 임금이 치욕을 당했으니 신하된 자 죽어 마땅하리니
從何輸此身 (종하수차신) 이 내 몸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뇨?
放歌歌又哭 (방가가우곡) 목놓아 목청껏 노래하다가 또다시 통곡하니
疑是一狂人 (의시일광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미치광이라 의심치 않으랴.

정시해 일광 정시해 의병장
▲정시해 일광 정시해 의병장 일광기념관

일광 정시해(一狂, 鄭時海) 의병장은?

일광 정시해 (1874~1906) 의병장은 1874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부모상에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 효자이자 면암 최익현의 문하에서 공부한 정통 선비이다. 선생은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침탈당하자 나라가 망하는데 지식인이 어찌 제정신이겠냐며 스스로 한 명의 미치광이(一狂)라 칭하고 구국 투쟁에 나섰다. 1906년 6월 스승 최익현이 태인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소모장 겸 중군장을 맡아 남도의 산천을 누비며 군사를 호령했다.

그러나 사방이 포위된 순창 객사 전투에서 왜적의 빗발치는 총탄에 맞서 스승을 온몸으로 방패 막아 보호하다가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장렬히 순국했다. 이는 을사늑약 이후 일어난 호남 의병장 가운데 첫 순국으로, 목숨을 버려 대의를 취한 사생취의(捨生取義)의 고결한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선생의 서슬 퍼런 투지와 애국정신은 정부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와 고향 고창에 세워진 일광기념관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일광 기념관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 있는 일광기념관(관장 정만기)은 구한말 순창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장 일광 정시해 의사를 추모하기 위해 1991년 사단법인 일광정시해의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1994년, 3000여 명의 성금과 후손의 출연금으로 건립된 현충시설이다. 내부에는 선생의 영정과 유품 등 50여 점의 사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후손들에게 선열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기념관에서는 역사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항일역사교실과 일광 아카데미등의 대표적인 상설 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서부보훈지청 등과 함께하는 일광 추모제(6월 11일)를 비롯하여 유적지를 직접 찾아가는 일광 답사단 등의 참여형 행사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일광기념관은 단순한 유물 전시 공간을 넘어 지역 사회와 긴밀히 호흡하며 오늘날에도 '실천하는 역사'를 성실히 만들어가고 있다.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중앙로 264(고창초등학교 정문 앞)
*전화: 063-564-2263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실립니다.
#일광 #정시해 #호남의병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반칙 논란, 예매 전격 중단 된 '스파이더맨' 반칙 논란, 예매 전격 중단 된 '스파이더맨'
  2. 2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 사인 받다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 사인 받다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3. 3 "홍명보 전술 판단 돋보여" → " 스리백 고집이 화불러" "홍명보 전술 판단 돋보여" → " 스리백 고집이 화불러"
  4. 4 축구 혁신 그리고 박지성과 이영표 축구 혁신 그리고 박지성과 이영표
  5. 5 "그냥 웃긴 말인 줄 알았어요"... '5·18밈' 보던 학생이 고개숙인 이유 "그냥 웃긴 말인 줄 알았어요"... '5·18밈' 보던 학생이 고개숙인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