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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원에 이만큼, 포슬포슬 햇감자가 우르르!

내가 심고 길러 100% 믿고 먹는 맛... 가족들과 나눠 먹을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등록 2026.06.21 19:40수정 2026.06.2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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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부터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쉼터 '느루뜰'로 향합니다. 이 글은 시골 쉼터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지난 3월 15일에 감자를 심었으니, 딱 90일 되었네."

남편은 핸드폰 속 농사 기록을 찾아보며 말했다. 감자는 보통 파종 후 90일에서 100일 정도 지나 수확하는 것이 적기라고 한다. 지난 주 읍내 장에 나갔을 때 바구니마다 팔고 있는 햇감자를 보았다. 지인의 카카오톡 소식엔 신나게 감자 캐는 모습이 담겼다. 2주 전 <오마이뉴스> 기사에도 감자 수확 내용이 담겼다. 기사에서는 '심은 지 90일 전후로 잎이 쪼글쪼글 마르고 노래지는 시점이 수확의 적기'라고 했다(관련 기사 : 들깨 농사의 핵심은 '꿀잠', 알고 계셨나요?).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사실 우리는 걱정하고 있었다. 감자를 심은 후 싹은 옹골차게 올라왔는데 그 이후 잎이나 줄기의 자람 상태가 생각만큼 풍성해지지 않았다. 하얀 감자꽃이 피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가 없는 주중에 피었다가 그 사이 꽃이 져 버리는 건 아닐 테고. 우리는 '감자 농사는 아무래도 실패인가 보다' 하며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햇감자를 캐다

 감자 수확
감자 수확 이정미

지난 금요일 퇴근 하자마자 서둘러 느루뜰에 갔다. 감자의 작황을 빨리 보고 싶었다. '혹시나 알이 굵은 감자가...' 하며 기대하는 마음도 50%는 있었다.

"감자 몇 개만 캐 보자."

나는 감자 줄기를 잡고 쑤욱 뽑았다. 흙이 부드러워 쉽게 뽑혔다. <오마이뉴스> 기사에서는 호미로 파면 감자에 상처가 생길 수 있으니 삽 등을 이용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양이 적으니 그냥 호미와 손을 이용해 흙을 살살 걷어내며 감자를 캤다.


"오~ 감자 잘 컸네. 꽃도 안폈는데 알이 이렇게 굵어지네."
"그러네. 굵어지는 게 신기하네."

우리는 저녁 식사에 곁들일 몇 개를 캤다. 알이 작은 것을 골라 전자레인지에 6분 가량 돌리니 포슬포슬하게 잘 익었다. 저녁 식사로도 먹고 읍내 목욕탕에 다녀온 후 출출해져 야식으로도 먹었다. 부드러워 야식으로 먹어도 부담이 없었다.


토요일 아침 6시경, 어젯밤에 쪄 놓은 햇감자를 한 입 씩 먹고 본격적으로 감자 수확에 나섰다. 나는 감자 줄기를 뽑고 남편은 호미와 손으로 흙을 살살 파헤치며 상처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감자를 캤다. 큰 것은 어른 주먹만 하고 작은 것은 한 입에 쏙 들어갈 만큼 조그마했다. 남편은 작은 알을 보며 "더 굵어지게 둘까?" 했지만 나는 다양한 크기의 감자가 더 좋다고 했다. 알이 작은 것은 알감자로, 알이 굵은 것은 감자볶음, 된장찌개, 카레 등 재료로 이용하면 되니까.

감자도 이만하면 풍년이다. 감자를 수확했으니 아침상에는 빵 대신 건강한 탄수화물인 찐감자를 올렸다. 수분이 많고 부드럽고 포슬포슬했다. 점심 때는 감자, 양파, 당근을 채 썰어 야채 볶음을 만들었다. 당분간 우리집 밥상에는 은은한 감자향이 단골 손님이 될 것 같다.

"씨감자 오천 원어치에 이만큼 수확이면, 완전 남는 장사지."

우리가 들인 노력이라 해봐야 물주기, 순치기, 흙 돋우어 주기 정도였다. 우리의 수고에 비하면 몇 배 이득인 셈이다. 이 맛에 텃밭을 하나 보다. 기분 좋을 만큼의 적정한 노동이 주는 상쾌함, 그리고 더 큰 기쁨으로 보답하는 열매. 내가 심고 기르니 100% 믿고 먹는 '이 맛' 말이다.

나누고 저장하고

 감자도 이만하면 풍년이다. 빵 대신 건강한 탄수화물 찐감자를 아침상에 올렸다.
감자도 이만하면 풍년이다. 빵 대신 건강한 탄수화물 찐감자를 아침상에 올렸다. 이정미

여름날이면 엄마는 껍질을 깐 감자를 포슬포슬 쪄서 설탕을 뿌린 간식을 자주 만들어 주었다. 어린 날에는 감자 맛보다 설탕의 단맛이 더 좋았다. 어른이 된 지금은 감자 자체의 은근하고 부드러운 맛 그대로가 좋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위장에 부담도 없다. 연한 노란빛이 감도는 감자의 피부도 나는 참 좋다.

감자는 저장이 까다롭다. 햇볕을 받으면 녹색으로 변하고 기온이 높으면 발아도 쉽다. 싹이 튼 감자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소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7~10도 정도의 서늘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는 오래 보관하기 보다는 맛있을 때 나눠 먹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은 벌써 형제, 직장 동료, 이웃 등 얼굴을 헤아리고 있었다.

먼저 형제에게 보낼 감자를 담을 마땅한 상자를 구하기 위해 마을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 가 보았다. 운 좋게도 적당한 크기의 스티로폼 상자를 발견했다. 알맞은 굵기로 잘 자란 감자를 골라 상자에 나눠 담았다. 받아 보고 기뻐할 언니네와 동생네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나머지는 박스에 신문지를 깔고 감자를 올리고 또 그 위에 신문지를 깔고 감자를 올리는 방식으로 하나 하나 정성껏 담았다. 세 상자로 나눠 담은 감자를 보니 할 일을 다한 것처럼 뿌듯했다.

잡초와 싸우지 않기로 했다

감자 나누기 언니와 동생네에 보낼 감자를 나눠 담았다.
▲감자 나누기 언니와 동생네에 보낼 감자를 나눠 담았다. 이정미

일을 마치고 쉼터 발코니에 앉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피부에 닿았다. 이렇게 쉬면서 나는 가끔 유튜브로 일본 관련 뉴스나 생활을 접한다. 그래서인지 내 계정에는 알고리즘에 따라 일본 관련 내용들이 하나 둘 올라온다. 얼마 전에는 EBS 프로그램 <숲이 그린 집>에서 일본 나가노 지역의 숲에 사는 부부 이야기를 보았다.

농부인 '켄지 우스이'씨의 밭은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밭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풀과 채소, 작물이 한데 섞여 자란다. 그는 풀을 뽑지도 땅을 갈지도 않는다고 한다. 풀을 뽑고 땅을 갈면 오히려 잡초가 더 잘 자라는 환경이 된다고 했다. 씨앗을 놓을 곳에 잡초를 밀어내어 땅을 확보했다. 그는 그렇게 "잡초랑 싸우지 않고 작물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우리는 잡초를 모두 뽑아내는데, 원래 잡초는 땅이 비옥하게 유기탄소를 제공해 줘요."

'켄지 우스이'씨의 이 말이 나에겐 큰 의미가 되고 있다. 올 여름 나는 무리하게 '풀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을 생각이다. 잡초와 적당히 타협할 것이다. 시각을 바꾸면 잡초와 싸울 필요가 없다. 잡초와 싸우지 않으면 그 만큼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시간'이 많아진다.

 <숲이 그린 집 - 일본 나가노, 숲이 된 부부> 갈무리
<숲이 그린 집 - 일본 나가노, 숲이 된 부부> 갈무리 EBS

지난번 토실 통통 잘 큰 양파를 보며 나의 언니는 말했다.

"신기하지. 이렇게 아무렇게 키워야 잘 자라는 거야."

언니가 보기에 느루뜰은 분명 잘 관리된 밭은 아니다. 여기 저기 잡초도 많고 농약과 비료도 전혀 쓰지 않는다. '흙이 좋은가 보다'며 형제들은 신기해 한다. 점점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농법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무엇보다 노동 시간과 수고가 몇 배로 줄어드니 얼마나 좋은가. 간단한 채소류를 자급자족하는 것이 목적인 오도이촌 농부에게 딱 알맞은 농법이다.
#햇감자 #협생농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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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글쓰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자신의 성장을 너머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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