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사카의 새벽. 새벽은 여전히 푸르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그 시간, 늙어가는 몸을 안고 다시 정신을 깨운다.
이안수
몸의 변화가 기분뿐 아니라 정신까지 흔들어 놓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보니, 아무리 푸른 정신도 결국 몸이라는 집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젊었을 때의 모든 자신감이 용기라는 정신을 담고 있는 집에서 비롯되었음이 새삼스러워진다. 마치 노화에서 예외일 것 같은 지난 생각들이 얼마나 큰 만용이었는지 반성하는 날들이 잦아지고 있다.
정신과 육체의 불화
정신을 담는 집이 몸이라면 그 집이 감옥이 아니라 여전히 안온한 가정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들은 모두 자기반성에서 출발한다. 젊은 시절 남용과 만용이 그 출발점이었다. 길을 걸을 때 아내를 뒤따라오게 하던 습관을 바꿔 앞서 걷도록 한 것도, 내 몸의 불편함을 겪으면서 생긴 인식 변화였다.
몇 주 전, 글을 쓰고 있는 호스텔의 공유 업무 공간으로 와서 아내가 말했다.
"일어나 보세요!" 아침 명상을 마치고 내려온 아내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영문을 몰라 일어서는 대신 아내의 눈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매일 당신과 허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제야 부부 사이의 허그가 오래 잊혀 있었음을 알았다. 몇 해 전 내가 죽거나 아내가 먼저 떠난다면 가장 후회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떠오른 것이 '허그'와 '칭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실천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아내가 "안고 함께 잠자리에 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늦은 밤까지 공부를 이유로 아내를 홀로 잠들게 했던 것이 일상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그제 새벽, 아내와 함께 눈을 떴을 때 아내가 말했다.
"내가 아프면 나를 한국으로 데려다 주세요."
아내와 함께한 47년 동안 내가 들은 가장 아픈 말이었다. 나는 내 몸이 늙고 있는 것만 알았지, 아내의 몸이 노화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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