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보문산 정상에서 지켜달라고 외치는 환경활동가들
이경호
그러나 보문산은 오랫동안 관광개발의 대상으로 접근되어 왔습니다.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전망타워와 각종 관광시설 계획은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자연휴양과 생태체험이라는 명분이 붙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인공시설을 산에 들이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모든 산을 관광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숲은 시민 곁에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공적 가치가 됩니다. 숲의 경쟁력은 인공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도시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자연성을 얼마나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문산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까. 더 많은 관광객 수입입니까. 더 화려한 시설입니까. 아니면 도시 속에서 자연과 연결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입니까.
세계 여러 도시는 이미 다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는 2015년 북미 최초로 '밴쿠버 조류전략(Vancouver Bird Strategy)'을 수립했습니다. 밴쿠버시는 새를 단순히 보호해야 할 야생동물이 아니라 도시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종으로 인식했습니다. 새가 살 수 있는 도시는 사람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철학이 정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밴쿠버는 조류 서식지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을 도시계획의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공원과 하천, 녹지를 연결하는 생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건축물 유리창 충돌을 줄이는 설계 기준을 도입했으며, 인공조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시민들이 새를 관찰하고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과 프로그램을 확대했고, 이를 생태관광과 도시 브랜드 가치로 연결시켰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조류전략이 환경부서만의 계획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도시계획과 건축, 공원과 관광, 교육이 함께 참여하는 도시 전체의 비전이었다는 점입니다.
대전 역시 충분히 가능합니다. 갑천 국가습지보호지역과 3대 하천, 보문산과 식장산·계족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은 다른 도시가 쉽게 갖기 어려운 자산입니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토목사업이 아니라 이러한 생태적 자산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재해석하려는 행정의 의지입니다.
갑천 국가습지보호지역을 중심으로 3대 하천 자연성 회복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하천 준설의 원칙과 기준을 재정립할 수 있습니다. 파크골프장 등 하천 이용시설에 대해서는 생태적 수용력을 기준으로 제한할 수 있습니다. 보문산과 식장산, 계족산을 연결하는 도시 생태축 보전계획을 수립하고, 조류친화형 건축 가이드라인과 생물다양성 전략 및 행동계획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계획의 철학입니다. 지금까지 도시계획은 생명을 훼손한 뒤 피해를 줄이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개발을 먼저 결정하고 사후적으로 환경영향을 완화하는 접근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먼저 확보하고, 그 위에 사람의 삶을 설계하는 도시. 새와 곤충, 물고기와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 도시. 생태적 수용력을 도시계획의 출발점으로 삼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허태정 당선인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의 4년 동안 하천을 개발 가능한 빈 땅으로 보지 말아 주십시오. 보문산을 관광시설을 채워 넣을 공간으로만 바라보지 말아 주십시오. 대전은 과학도시를 넘어 생명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얼마나 높은 건물을 지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아남았는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성장했는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지가 도시의 품격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자연을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시민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미래세대의 삶을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투자입니다. 도시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콘크리트를 쌓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명을 품었는지로 평가받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허태정 당선인께서 개발의 속도를 자랑하는 시장이 아니라, 생명을 지켜낸 시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갑천의 수달과 물새, 보문산의 숲과 야생동물, 그리고 그 곁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함께 행복한 도시! 대전이 대한민국 최초의 '생명도시'로 나아가는 길에 대전환경운동연합은 때로는 엄중한 감시자로, 때로는 든든한 협력자로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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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설과 친수개발, 파크골프장과 보문산 개발... 대전이 이래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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