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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아드레날린 폭발, 과연 성지답네요

올림픽수영장에서 한계를 깨부순 날... 50m 레인에서 마주한 놀라운 반전

등록 2026.06.18 11:57수정 2026.06.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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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실 예전에는 수영장 하나 가겠다고 다른 동네, 하물며 해외까지 원정을 간다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무슨 유난이람' 싶었습니다. 수영장이면 다 똑같은 수영장이지, 뭐가 그리 특출나겠냐 싶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제가 요즘은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세계의 아름다운 수영장을 검색하고 있습니다. 거친 남태평양의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레인 안으로 밀려드는 호주의 오션풀 '본다이 아이스버그', 100년이 넘은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 속에서 호젓하게 유영할 수 있는 영국 버밍엄의 '모즐리 로드 배스'. 그 특별한 물빛과 공간들의 사진을 보며 혼자 가슴 설레는 중년의 아저씨라니. 저도 몰랐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 될 줄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출렁이는 곳

 드디어 마주한 수영인들의 성지, 올림픽수영장. 입장 전부터 마음이 청량하게 출렁였습니다.
드디어 마주한 수영인들의 성지, 올림픽수영장. 입장 전부터 마음이 청량하게 출렁였습니다. 문현호

이러한 동경은 비단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영에 한번 깊이 빠지면 저마다 마음 속에 품게 되는 푸른 버킷리스트가 있습니다. 사계절의 햇살이 천장 가득 쏟아지는 강릉 아레나 수영장, 박태환 선수의 뜨거운 숨결이 물속 깊이 남아있는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영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어 하는 수영인들의 성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수영장' 같은 곳들입니다. 그 성지에 몸을 담그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청량하게 출렁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토요일,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수영복과 수경을 꼼꼼히 챙겨 넣은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결혼식에 가는 건지 수영하러 가는 건지 스스로도 살짝 의심스러웠지만, 좋은 날이니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전하고 식장을 나선 뒤, 저는 지하철역 대신 근처의 초록색 따릉이로 향했습니다. 삼성동에서 송파 올림픽수영장까지, 한강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달리기로 한 것입니다. 조만간 온몸으로 거슬러야 할 한강의 물줄기를 오른 편에 나란히 두고 페달을 밟는 길은 유독 상쾌했습니다. 성지 순례를 앞둔 순례자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요. 한강 변을 달리는 내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올림픽수영장은 과연 대단한 크기와 위용이었습니다. 오후 입장권을 결제하고 라커를 지나 풀장 안으로 들어선 순간, 압도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0번부터 9번까지 탁 트인 10개의 레인, 아득하게 높은 천장, 한낮의 햇살이 수면에 내려앉으며 만들어내는 영롱한 빛의 기둥. 그 끝에는 최대 수심 2m를 알리는 깊고 투명한 풀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영장에 들어설 때면 수영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수영복 계급'이 눈에 들어옵니다. 단조로운 무채색 수영복을 걸친 초급 단계를 지나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褸 華而不侈 :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의 미덕을 충실히 이행한 중급자들의 복장이 보이고, 세상의 모든 빛을 쏟아부은 듯 번뜩이는 상급 마스터스들의 '포스'가 이어집니다.

나한테 이런 힘이!


 따릉이를 타고 성지로 향하는 호기로운 여정. 조만간 온몸으로 거슬러야 할 한강 변을 달리는 내내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따릉이를 타고 성지로 향하는 호기로운 여정. 조만간 온몸으로 거슬러야 할 한강 변을 달리는 내내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문현호

마침 제 가방 속에는 지난 4화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배치된 것을 자축하며 새로 장만한, 화려하고 감각적인 신상 수모가 들어있었습니다(관련 기사 : 매일 아침 내 발 잡아준, 86만 유튜버 선생님의 정체). 50m 레인의 위용에 초급 레인에 설까 싶다가도, 이 수모의 자존심이 차마 그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결국 소심함을 떨쳐내고 중급 레인으로 걸어가 물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데, 내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습니다. 수심이 깊어 발을 디딜 수 없다는 긴장감은 오히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페이스를 조절하며 온전히 몸의 세밀한 감각에 집중해 아득하게 뻗은 레인을 지나치고, 바닥의 진한 'T'자 마크를 확인하고, 턴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50m 레인을 다섯 바퀴 연속으로 돌고 나니, 무려 500m를 단숨에 완영해 버린 저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 할 만하다! 나한테 이런 힘이 쌓여 있었구나.'

자아도취의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거침없이 돌았습니다. 남들의 시선과 정해진 틀 안에서 지레 그어두었던 한계선이, 낯선 성지의 물속에서 시원하게 깨부수어진 순간이었습니다. 25m 풀에서 숨차 하던 날들이 무색할 만큼, 몸에 쌓인 정직한 훈련량이 고스란히 증명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생각해보면, 25m 풀에서 발이 닿는다는 그 안도감이 사실은 족쇄였던 셈입니다.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안전망이 오히려 온몸의 감각을 살짝 잠재우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은 그 족쇄를 단번에 풀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바닥에 기댈 수 없으니, 몸은 알아서 제 할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몸은 이미 더 넓은 레인을 헤엄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요.

올림픽수영장의 50m 레인에서 그 단단한 힘을 목격하고 나니, 따릉이 페달을 밟으며 바라보았던 거친 한강의 물살도 이제는 마냥 두렵게만 읽히지 않습니다. 한 번쯤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 제 몸을 믿어본 사람만이, 다가올 넓은 물결 앞에서도 기분 좋은 호기를 부릴 수 있는 법이니까요.
#수영 #한강 #한크스 #올림픽수영장 #원정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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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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