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 잡초> 잡초 생태학을 전공한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를 전략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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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곳에 무성하게 자라나 '방해가 되는 풀'을 잡초라고 부른다. 흔하고 하찮은 풀로 여겨지지만, 잡초라고 어디서나 자랄 수 있는 건 아니다. 잡초는 경쟁에 약해 많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숲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말한다. 키 큰 식물들에 가려 빛과 양분을 충분히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잡초는 강한 식물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길가나 밭, 하이킹 코스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특수한 장소를 자신의 터전으로 삼는다.
그러니 경쟁을 피해 도망친 나약한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잡초는 자신의 힘을 알아 싸우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대신 존재를 걸고 생존을 겨룬다. 흙이 부족한 길가에서, 제초될 위험이 있는 밭에서 자신의 사활을 다툰다. 강인한 식물과의 경쟁은 피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식물에게는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전략가, 잡초>의 저자는 잡초가 자신의 목적에 있어서는 흔들림이 없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려 최선을 다한다고 전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 또한 누구보다 탁월하다.
잡초는 환경을 바꿀 수 없기에 자신을 바꾼다.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는 빠르게 타협한다. 크기를 바꾸거나 딴꽃가루받이(타가수분) 식물이 제꽃가루받이(자가수분) 식물로 생활 패턴을 변경한다. 자라는 방식, 씨를 배출하는 시기도 달라진다. 잡초는 목적을 명확히 세우는 대신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자유자재로 고른다.
"인간은 정리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생물이라서 스스로 이과와 문과, 예능과 체능 등으로 구별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남자다워라, 여자답게 행동해라' 또는 '넌 고등학생이니까......' 등 여러 가지 분류해서 특징을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잡초의 자유로움을 보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의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자연계는 인간계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91쪽 <전략가, 잡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소영 옮김, 더숲
저자의 말처럼, 잡초는 인간의 통념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킨다. 예를 들어 질경이의 씨앗은 끈끈하게 달라붙는 성질이 있어 사람의 신발이나 타이어에 붙어 옮겨진다. 그런 질경이에게 밟힌다는 건 인내해야 하거나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밟혀야 널리 퍼질 수 있으니 밟히는 게 오히려 반길 일이다.
잡초를 연구하며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 편협한 분류와 '보통'과 '평균'에 치우쳐 있음을 발견한 저자는 독자에게도 삶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키울 것을 권한다.
그런 인물로 조각가 김윤신(1935년~)을 떠올릴 수 있다.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은 올해로 90세를 맞았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나무로 작업하는 그녀는 마흔아홉이 되던 해 목재가 아주 좋다는 조카의 말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가 이국의 풍요로운 자연에 매료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남미의 나무는 크고 단단해 전기톱을 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조각도 더 역동적으로 발전했다.

▲전기톱을 든 조각가 김윤신 (1935~)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은 올해로 90세를 맞았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안그라픽스
김윤신 작가는 1980년대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 여성 조각가로 활동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작품의 재료인 나무를 풍족하게 쓸 수 없다는 것도 제약이었다. 이러한 경쟁과 한계에서 벗어나 그녀는 자신에게 필요한 환경을 찾아 과감히 이동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전기톱을 드는 변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그녀에게 작업은 생존의 증거이자 존재 방식이었다. 작업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그녀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그 외의 것은 적극적으로 바꾸었다. 전기톱으로 작업한 그녀의 나무 조형물은 크기와 형태 면에서 압도적이다. 자신의 영역에 있어 그녀는 온리원이면서 넘버원이다.
개성을 키워 넘버원이면서 온리원이 되는 삶
자연계에서는 넘버원 만이 살아남는 것이 철칙이다. 그런 자연에서 잡초는 많은 식물이 모여 경쟁이 치열한 숲을 피해 자기만의 터전을 찾아 살아남는다. 개성을 발휘해 삶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런 잡초를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넘버원이면서 온리원'이라고 칭한다.
식물의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잡초'를 택해 공부한 이력처럼, 내게만 의미 있는 일,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서 '넘버원이면서 온리원'이 될 기회를 찾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조각가 김윤신의 삶과 작업 또한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라 여기는 닫힌 시선을 경계 너머로 이끈다. 누구나 공통으로 생각하는 넘버원이 아닌, 보통과 평균을 벗어난 어딘가에 각자의 가능성이 있다고.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 안에도 발견하지 못한 가치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텃밭의 오이가 자신을 변형시켜 만든 덩굴손이 기특하다. 이 또한 자신의 몸체보다 커다란 열매를 맺기 위해 연약한 오이가 찾아낸 개성이자 생존 전략일 것이다. 꽉 쥔 손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목적과 개성은 무엇인가요? 당신으로 삶을 지탱하기 위해 간절하고 용감하게 손을 뻗고 있나요?
전략가, 잡초 - ‘타고난 약함’을 ‘전략적 강함’으로 승화시킨 잡초의 생존 투쟁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은이), 김소영 (옮긴이), 김진옥 (감수),
더숲,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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