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하나로 시작된 '글벗' 인연, 이렇게 이어갑니다

글을 마중물로 사람의 마음을 신기한 경험... 가슴 가득 온기가 번졌습니다

등록 2026.06.17 09:32수정 2026.06.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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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3일, 오전부터 분주히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오전 11시 25분에 서대구역에 도착하는 작가님을 마중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기차를 타거나 손님을 모실 때는 항상 동대구역을 이용해왔기에, 서대구역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이라 일찌감치 채비를 서둘렀다.

낯선 길이라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길을 잘못 들어서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비게이션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왕복 2차선의 좁은 길로 나를 안내했다. 한참을 긴장하며 달린 끝에 목적지인 '서대구역' 이정표가 보이자, 그제야 제대로 왔구나 싶어 '후유'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열차 도착 시각보다 5분 일찍 도착하여 주차할 공간을 살폈다. 동대구역은 승객도 많고 차량 운행도 복잡해서 손님을 태울 때 꼭 도착 시각에 맞춰 칼같이 나가야 한다. 뒤에서 빵빵 거리는 경적에 놀라 온몸에 땀이 삐질삐질 났던 기억이 스쳤다. 반면 처음 와본 서대구역은 한산하고 주차 공간도 넓어 마음이 한결 놓였다. 주차를 마치고 개찰구로 들어가 설레는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렸다. 승객들이 한두 명씩 빠져나가는 사이 에스컬레이터를 유심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양손에 가방을 가득 들고 내려오는 분이 계셨는데 내가 오늘 마중할 작가님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혹시, 최 작가님 맞으시죠?"

최 작가님은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한 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말 그대로 생판 모르는 초면인 셈이다.

내가 브런치에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연재하고 있을 때였다.

"할미라는 말에 댓글 달고 갑니다."


최 작가님이 내게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셨다. 작가님은 다섯 명의 손주를 육아하며 기록했던 일들을 <판 깔아주는 흥 많은 할머니>라는 책으로 출간하신 분이었다. 손주 둘을 돌보는 것도 숨이 차는 일인데 다섯 명이나 돌보신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손주 육아'라는 깊은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고 응원하며 온라인 세상에서 친분을 맺어갔다.

그러다 지난 3월,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내가 보낸 사연이 당첨된 적이 있다. 기쁜 마음에 방송 녹음 파일을 브런치에 올렸더니, 최 작가님이 댓글을 남겨주셨다.


"대구 달서구라고 하니 더 반갑네요."

대구에 사는 작가들은 웬만큼 다 알고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그 댓글의 주인공도 혹시 대구 분이신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달서구를 아세요?"

알고 보니 경기도에 거주 중이신 최 작가님이 내가 사는 지역으로 강연을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멀리서 찾아오시는 그 걸음이 얼마나 낯서실까 싶은 마음이 먼저 쓰였다. 이에 슬며시 또 한 번의 용기를 장착하고 최 작가님의 글방으로 가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작가님께서 제가 사는 지역에 강연하러 오신다니 강연 신청도 하고, 차는 작지만 그날 픽업해 드리고 싶어요."

마치 '썸' 타는 사람에게 보내는 고백 같은 글이었다. 사실 그날은 내게 매우 중요한 시험이 겹친 날이었다. 낯선 도시에 올 글벗을 생각하니 내 시험 걱정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싶었다. 그 후로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강연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달서구청에서 강연을 준비한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서 열리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5월 8일,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달서가족문화센터에서 행복한 조부모 육아 교실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최 작가님이 강연할 장소는 놀랍게도 내가 평소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처음으로 글쓰기 교실에 다니며 '작가'라는 비밀스러운 꿈을 품었던 추억의 공간이자, 손주들을 품에 안고 주말마다 찾아가 책을 읽어주던 가족도서관이 있는 바로 그 건물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곧바로 등록을 마쳤다. 조부모를 위한 무료 강의가 내 발길이 가장 자주 머물던 곳에서 열린다니 반가움이 배가 되었다. 인연이란 이런 사소한 우연 속에서 시작되어 깊은 정으로 쌓여가는 게 아닐까.

강연 모습 달서가족문화센터에서 최작가님이 조부모 육아 교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강연 모습 달서가족문화센터에서 최작가님이 조부모 육아 교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황윤옥

강연은 오후 2시부터 시작이지만, 작가님이 미리 무대를 준비하셔야 해서 1시까지는 도착해야 했다. 서대구역에서 만나 센터까지 가는 데만 차로 30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멀리서 온 여행자처럼 점심을 여유 있게 즐길 시간은 부족해 보였다. 인근에 안전하게 주차를 마치고 예전에 아이들과 자주 가던 단골 김밥집으로 향했다. 간단하면서도 든든하게 요기하기에는 김밥과 우동 만한 메뉴가 없다. 작가님도 큰 강연을 앞두고 긴장하셨는지 아침을 제대로 들지 못하셨다며 다행히 아주 맛있게 그릇을 비워내셨다.

작가님이 구청 담당자와 무대 리허설을 준비하는 사이 강연장에는 조부모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오는 7월에 출산하는 딸을 둔 예비 조부모부터, 이제 갓 백일을 넘긴 손주를 둔 초보 조부모, 그리고 나처럼 손주가 둘이나 셋인 베테랑까지 설레는 얼굴로 모여들었다.

드디어 최 작가님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긴장하신 듯 보였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씩씩하고 활기차게 강의를 이끌어가셨다. 조부모들의 뜨거운 환호와 반짝이는 눈빛이 더해지자 작가님의 강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이 났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열정적인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다시 서대구역으로 향했다.

"오늘 작가님 덕분에 낯선 곳에 와서도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고마워요."

아직 강연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작가님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감사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 만큼은 고려 시대 장수처럼 씩씩했다. 역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즈음 작가님이 조용히 편지 하나를 건네셨다.

"작가님께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썼어요. 집에 가셔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우리는 가벼운 포옹과 함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인연을 귀하게 여긴 덕분일까. 온종일 마음 졸였던 그 날의 시험은 다행히 아주 만족스럽게 잘 치러냈다. 작가님이 건넨 편지를 읽는 순간, 가슴 가득 따뜻한 온기가 번지며 감동이 배가 되었다.

온라인 세상에서 글로 만난 글벗이 이토록 아름다운 현실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댓글 하나가, 글 한 편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엮어주는 단단한 매개체가 되어준다. 글이 마중물이 되어 인연을 이어주는 이 신비롭고 기적 같은 경험은 앞으로도 내가 멈추지 않고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달서가족문화센터 #조부모육아교실 #최작가님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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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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