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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입고 기묘한 자세로... 진짜 있는 수영법이라고?

고대와 현대를 오가는 '수영 찬가'... 보니 추이의 <수영의 이유>를 읽고

등록 2026.06.21 15:38수정 2026.06.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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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영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주말 루틴마저 온통 푸른 물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자유수영을 다녀오고, 오후에는 침대에 누워 수영 관련 책들을 찾아 읽는 식입니다. 매들린 월러의 <수영하는 사람들>이나 이연의 <매일을 헤엄치는 법> 같은 책들을 곁에 쌓아두고 읽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지난주 깊게 몰입해 읽었던 보니 추이의 <수영의 이유>(2021년 8월 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수영을 하지 않는 분들에게 이 책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영의 기원을 찾겠다며 구석기시대 사하라 사막의 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저자를 보고 있으면 "이 정도면 좀 너무 진지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납니다. 의학, 사회학, 인류학에 심리학까지 총동원해 수영 하나를 낱낱이 해부하는 이 책은, 수영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호불호가 꽤 극명하게 갈릴 만한 책입니다.


그럼에도 저자인 '보니 추이'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수영 하나에 이토록 진지하고 방대한 애정을 쏟아붓는 이 저널리스트의 책은, 다른 운동과의 비교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습니다. 오직 수영으로 시작해 수영으로 끝나는, 아주 순수한 수영 찬가입니다.

책은 핀란드 바다에서 어선이 침몰한 뒤 장장 6시간을 맨몸으로 헤엄쳐 살아남은 어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극적인 실화를 시작으로 저자는 수영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섯 가지 테마로 풀어냅니다. 생존, 건강, 커뮤니티, 경쟁, 그리고 몰입. 저는 이 중에서 특히 두 챕터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지독한 '수영' 찬가를 읽으며

 책표지
책표지 김영사

첫 번째는 '커뮤니티' 챕터입니다. 이라크 전쟁 직후, 사담 후세인을 몰아낸 유엔군과 미군이 주둔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바그다드 도심의 이른바 '그린 존', 옛 후세인 왕궁 한복판에 어이없을 만큼 거대한 실외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독재자의 사치스러운 유산이었습니다.

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던 한 미국인 주재원이 있었습니다. 왕년에 수영 선수였고 방학마다 안전요원 아르바이트까지 했던 골수 수영인이었는데, 하루는 옆 레인에서 영법이 서툰 타국 주재원을 보다 못해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전직 선수의 코칭이었으니 오죽 잘 가르쳤겠습니까.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이가 슬그머니 줄을 섰고, 그 사람이 다음 날 친구를 데려왔고, 친구는 동료를, 동료는 상사를 데려왔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수강생들로 인해 독재자의 수영장은 순식간에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제 수영 교실로 변모했습니다. 총칼을 겨누던 전쟁터 한복판에서, 수영모를 쓰고 수경을 끼는 순간 국적과 인종과 종교의 벽은 평등하게 녹아내렸습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물을 타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순수한 본능만 남은 채로 말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기분 좋은 전율이 돋았습니다.

두 번째는 '경쟁' 챕터에 등장하는 사무라이 수영이었습니다. 챕터 제목만 봤을 때는 일본 국가대표 특유의 훈련법을 뜻하는 은유인 줄 알았습니다. 읽어보니 웬걸, 은유가 아니라 진짜 옛 일본 무사들이 전장에서 쓰던 실전 영법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고대 영법이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전수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글만 읽어서는 감이 오지 않아 곧장 노트북을 열어 유튜브에 'Samurai Swimming(사무라이 수영)'을 검색했습니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도 물을 크게 튀기지 않으며 기묘한 자세로 나아가는 무사들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 수행을 보는 듯한 엄숙함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실전적인 이유에서 탄생한 무술이었습니다. 일본의 성에 가보신 분이라면 성벽을 둘러싼 해자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해자를 밤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건너가려면 소리 없이 물을 타는 수영 실력이 필수였을 것이고, 해전에서 물에 빠졌을 때 갑옷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남으려면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갑옷을 입고 수영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습니다.

이렇듯 책은 바다와 수영장, 고대와 현대를 종횡무진 오가며 수영만이 줄 수 있는 삶의 가치들을 찬양합니다. 그 지독한 찬가를 읽고 나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결국 내 인생을 만든다는 것

 지난 일요일 오후, 우리 집 베란다 텃밭에서 읽은 보니 추이의 《수영의 이유》
지난 일요일 오후, 우리 집 베란다 텃밭에서 읽은 보니 추이의 《수영의 이유》 문현호

저는 회사 근처 초등학교 부설 수영장에서 주로 수영을 합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듯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레인은 이미 젊은 직장인들로 활기차게 채워져 있습니다. 저도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레인을 돌기 시작합니다.

자유형으로 나아갈 때면 머릿속으로 수많은 신체 동작들을 동시에 가늠합니다. 물을 정교하게 낚아채는 하이 엘보 캐치, 광배근으로 당겨오는 풀 동작, 어깨 부상을 막기 위한 부드러운 리커버리, 아랫배 코어에 힘을 주어 유선형 자세를 유지하는 것까지. 말로 늘어놓으면 이토록 복잡하지만, 물속에서는 이 모든 것이 단 몇 초 안에 하나의 리듬으로 녹아들어야 합니다. 그 리듬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의 기분이란,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수영을 다시 시작한 지 3개월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사이 몸이 살짝 달라졌습니다. 늘 묵직하게 나와 있던 아랫배는 눈에 띄게 편평해졌고, 거울 앞에서 슬쩍 힘을 줘보는 중년의 소소한 호기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하루의 시작이 달라졌습니다. 수영을 마치고 나온 아침은 그렇지 않은 아침과 밀도가 다릅니다. 몸이 깨어있고, 생각이 맑고, 하루 전체가 조금 더 단단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수영을 하고 운동을 하며 추구해야 할 본질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건강한 습관 하나가 내 하루를 더 건강하고 밀도 있게 채워준다는 소박하고 정직한 사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쌓여 결국 내 삶의 모양을 만들어간다는 것.

뭘 하든. 그게 수영이든, 독서든, 글쓰기든, 혹은 좋은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든. 꾸준히, 생애 내내 하면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그걸 하는 동안 인생의 슬픔과 아픔, 환희가 왔다 갔을 테지만, 슬픔과 아픔은 그것으로 삭여 보내고, 환희는 담담하게 다루어 과거로 흘려보냈을 것입니다. '보니 추이'가 이 두꺼운 책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결국 당신의 인생을 만든다는 것.

저는 오늘도 수영 가방을 달랑 거리며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벽을 발바닥으로 강하게 차고 물속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그 순간, 그 기분을 저는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수영의 이유

보니 추이 (지은이), 문희경 (옮긴이),
김영사, 2021


#수영의이유 #수영 #한강 #한크스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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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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