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벅스
Taehyun Kim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라는 이름의 마케팅 행사를 진행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이마트 회장의 공개 사과와 전국 매장 조기 영업 종료, 임직원 역사 교육이라는 후속 조치를 내놨다. 그러나 이 사태가 드러낸 구조적 문제, 즉 글로벌 브랜드 관리 체계의 공백을 메우는 주체로서 미국 스타벅스 본사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탱크데이"는 왜 단순 실수가 아닌가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광주 시민들을 향해 계엄군과 장갑차를 앞세워 무력 진압을 자행한 역사적 비극이다.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그 기억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인류 보편의 역사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그룹 계열의 SCK컴퍼니는 바로 그 기념일에 '탱크데이'라는 행사명을 내걸었다. 홍보물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도 함께 실렸다.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당시 경찰 발표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군사정권의 광주 탱크 진압을 떠올리게 하는 행사명과, 고문치사 은폐를 연상시키는 문구가 같은 홍보물에 동시에 등장했다.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른 이유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실수가 아니다. 역사적 감수성이 브랜드 운영의 기본 전제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며, 그 공백이 어느 수준인지를 전 세계에 드러낸 사건이다.
역사 교육이라는 조치, 그 빈틈
사태 이후 신세계그룹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용진 이마트 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섰고, 오는 22일에는 1999년 스타벅스 코리아 국내 진출 이래 처음으로 전국 매장 영업을 오후 3시에 조기 종료하고 현장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역사 인식 및 사회적 감수성 교육을 실시한다. 정 회장도 24일 계열사 대표들과 함께 별도 교육을 받는다. 2018년 미국 스타벅스가 인종차별 논란 이후 8000여 개 매장을 반나절 닫고 직원 17만 5000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선례를 참고한 조치다.
그러나 이 조치를 들여다보면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탱크데이를 기획한 것은 마케팅 부서다. 홍보물을 최종 승인한 것은 결재라인의 임원들이다. 매장에서 커피를 만들고 손님을 맞이한 현장 파트너들은 이 기획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논란이 터진 당일, 분노한 고객들을 직접 마주하며 사태를 수습한 것도 이들이었다. 그런 현장 파트너들이 이번에는 영업을 일찍 마치고 역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의 취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마케팅을 기획하고 통과시킨 이들은 분노한 소비자를 마주할 일이 없었고, 현장 파트너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이제 교육도 함께 받는다. 책임의 소재를 조직 전체로 분산시킴으로써, 정작 이 사태를 만들어낸 의사결정 구조는 흐릿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현장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SCK컴퍼니는 그간 여러 프로모션을 쏟아내왔다. 탱크데이 마케팅 역시 그 과부하 구조 속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세상에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 교육이 아무리 진정성 있게 진행된다 해도,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유사한 사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재발을 막으려면 교육이 아니라 시스템이 필요하다.
본사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
그 시스템을 한국 법인에 요구할 실질적 파워를 가진 주체는 글로벌 브랜드 소유주인 스타벅스 미국 본사가 아닐까. 본사와 신세계그룹(이마트) 간 계약에는 중요한 조항이 있다. 한국 법인의 귀책사유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경우, 본사가 신세계의 지분 전량을 시장 가치보다 35% 할인된 가격에 강제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이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기업가치가 3조 원대로 추산되는 지금, 이 조항이 발동되면 이마트가 입을 손실은 7000억 원을 웃돌 수 있다.
본사가 이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필요는 없다. 이 조항의 존재 자체가 이미 강력한 협상력이다. 본사가 원한다면 이 계약상 지위를 바탕으로 한국 법인에 마케팅 검수 체계 도입이나 노동자 보호 기준 강화를 실질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라이선스 계약이라는 구조가 본사의 무관심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스타벅스'라는 이름이 달린 매장에서 벌어지는 일의 최종적인 브랜드 책임은 그 이름의 주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본사는 자사 공식 홈페이지에 이런 문장을 내걸고 있다.
"Our aspiration is to be people positive — investing in humanity and the well-being of everyone we connect with.(우리의 열망은 사람 중심적이 되는 것입니다 — 우리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인류에 투자하는 것이죠.)"
인류와 인권에 투자한다는 이 선언이 마케팅 문구에 그치지 않으려면, 바로 이런 순간에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이들이 짊어진 짐
이 사태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피해자는 현장 파트너들이다. SCK컴퍼니는 불매운동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스타벅스 선불카드의 조건 없는 전액 환불 정책을 시행했다.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매장 직원들의 몫이었다. 환불 응대로 업무 강도는 두 배가 됐지만, 불매운동으로 인한 매출 타격을 이유로 연장 근무 스케줄은 오히려 대폭 삭감됐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서울 중구 한 매장 직원은 언론에 이렇게 토로했다. "본사가 저지른 리스크인데 왜 매장 직원들이 총알받이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고려대학교 노동복지정책학과 강민형 교수는 "스타벅스는 직영 구조상 브랜드 유지를 위해 표준화된 절차와 위생 관리가 매우 엄격한 편"이라며, "본사의 매출 연동형 프로모션과 푸드 중심의 마케팅은 영역을 확장시키며 현장 바리스타들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 매장 문 위에는 여전히 '스타벅스'라는 이름이 걸려 있다. 경영진의 실패가 시급 노동자의 생계 위협으로 직접 전가되는 이 구조를 바꾸는 일 역시, 글로벌 브랜드 오너가 계약상 권한을 행사할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금 본사에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 법인이 역사적·문화적 민감성을 의무적으로 검토하는 마케팅 검수 체계를 갖추도록 본사 차원에서 요구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프로모션 구조 자체에 대한 전면 재검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경영 실패의 결과를 현장 노동자가 떠안지 않도록 실질적인 노동권 보호 기준을 한국 법인에 요구해야 한다. 고객 폭언 대응 프로토콜, 심리 상담 지원 체계, 위기 상황에서의 임금 보전 방침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라이선스 계약이라는 구조와 무관하게 '스타벅스'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모든 매장의 노동자는 본사의 브랜드 가치 아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사 스스로 인정하고, 위기 상황에서의 거버넌스 체계를 공개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스타벅스가 스스로 내걸어온 글로벌 윤리 기준이 진심이라면, 그 기준은 한국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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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가 남긴 구조적 공백, 이렇게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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