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북파 백두산 북파.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지
김아름내
백두대간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백두산.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한 5박 6일 여정(지난 10일~15일)은 인천항에서 시작됐다. 중국 현지 체류는 3박에 그쳤고, 나머지 2박은 인천과 단둥을 오가는 단둥훼리에서 보내야 했다. 편도로 16시간이 걸리는 뱃길이다.
짧은 현지 일정에 흐린 예보까지 겹치면서 천지를 볼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북파로 오르기 전날에는 굵은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갰지만 해발 2000m가 넘는 천지의 사정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북파 초입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말했다.
"오늘 천지가 열렸답니다."
버스 안에서 환호가 터졌다. 단둥항에 도착했을 때는 우려와 달리 날이 맑았다. 반팔을 입고 있었지만 긴팔을 입었어도 괜찮을 날씨였다.
북한 신의주가 보이는 압록강에서 작은 유람선을 탔다. 10여 분쯤 달렸을까 관광객 모두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것이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산책 나온 사람들, 하얀 자동차와 대형 화물트럭, 밭일하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인공기가 걸린 건물이 아니었다면 그곳이 중국인지, 북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강 건너 풍경은 인구가 많지 않은 평범한 시골 마을처럼 보였다.

▲압록강 단교 압록강 단교. 6.25 전쟁 때 끊어졌다.
김아름내
여행의 목적, 천지를 보는 것
유람선은 금세 단교를 지나쳤다. 일본이 1911년 중국 대륙 진출을 위해 건설한 철교지만 1950년 11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중간 부분이 끊겼다. 한쪽에는 중국 국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유람선에 오르기 전 가이드는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동북 3성을 설명했다. 이 지역은 우리가 만주 또는 만주 벌판이라 부르는 공간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는 이 일대가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이루고 두만강은 하류에서 중국·북한·러시아가 맞닿는 접경을 만든다.

▲백두산 북파 백두산 북파. 천지가 열리길 기다리는 중
김아름내
이 여행의 목적은 결국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이다. 애당초 백두산 북파와 남파 전망대에서 천지를 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폭설과 폭우 등으로 남파 도로가 파손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금방 복구돼 우리를 반길 것 같았지만, 도로 복구에는 시간이 더 걸리는 듯했다. 일정은 북파와 서파 전망대에 오르는 것으로 변경됐다.
북파 코스는 비교적 오르기 쉬웠다. 일정 내내 함께하는 관광버스에서 내려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버스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됐다. 버스를 갈아타며 통창 너머로 본 산길은 하늘길에 가까워지는 듯 아득했다. 창밖 풍경은 흐려졌다 또렷해지기를 반복했고 어느 순간 현실보다 모니터 배경화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보다 먼저 천지와 마주한 사람들은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겨우 자리가 난 곳에서 천지를 바라보면서 되도록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백두산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다. 산 아래가 맑다 해도 천지 상황을 가늠하기 어렵다.
천지의 푸른 물은 운무가 걷히자 또렷해졌다가 금세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천지는 화산 분화 이후 정상부가 함몰되며 형성된 칼데라호다. 호수 주변은 해발 25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천지는 16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고 높은 곳에서 보면 산중에 떨어진 푸른 돌처럼 보인다"는 가이드의 말을 떠올렸다.
백두산 북파는 걷는 부담이 비교적 적다. 전망대 가까운 곳까지 차량 이동이 가능해 체력 소모는 서파보다 덜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차를 수차례 갈아타야 하고 천지를 보기 위한 인파가 많아 사진을 찍고 천지를 눈에 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장백폭포 백두산 북파 하산 후 만나게 되는 장백폭포
김아름내
북파의 또 다른 볼거리는 장백폭포다. 천지 관람 후 버스를 타고 하산하는 과정에서 장백폭포에 들른다. 가이드는 "천지물이 흘러 벼랑 끝에서 떨어지며 폭포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장백폭포를 보기 위한 초입에 온천물로 익힌 달걀과 옥수수를 판매한다. 온천 달걀은 3개 10위안(약 2천 원), 옥수수는 1개 10위안이었다.
장백폭포를 가까이 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계단을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온천 달걀과 옥수수를 먹으며 잠시 땀을 식혔다. 백두산 서파는 송강하와 가깝다. 이도백하에서 1시간 30여분을 달려 송강하로 이동했다.
버스 이동만 20시간, 그렇게 마주한 풍경들

▲백두산 서파 1,400여개 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백두산 서파 천지
김아름내
다음 날 관광버스를 타고 40여 분을 달려 서파 매표소 앞에 내렸다.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북파보다는 짧다고 느껴졌지만 시간은 비슷했던 것 같다. 버스는 1442개 계단 인근에 우리를 내려준다. 1400여 개 계단을 오르면 하늘과 닿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복 800위안, 한화 약 16만원이면 사람이 운반하는 가마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
한 계단씩 밟으며 40~50분을 걷다 보면 서파 천지 전망대에 다다른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더 빨리 올랐으리라. 일행 중 서파 전망대에 가장 빠르게 올라간 A씨는 "멈추지 말자, 뒤돌아보지 말자 다짐하고 올랐다"며 "전망대에 사람이 없었다. 천지를 오랫동안 봤다"고 말했다. 서파에 오르며 간과한 것은 천지 전망대에 일찍 도착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날이 계속 맑을 것이라는 건 자연 앞 인간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서파 천지 아래 산자락은 초록 구릉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고산 초원으로 이국적 풍경을 자아냈다. 서파 천지는 북파 천지보다 가깝게 느껴지고 시야도 더 트여 있다. 전망대가 평지처럼 돼 있어 이동도 한결 편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남파는 하루 입장 인원이 1500명으로 제한된다. 서파는 약 8500명, 북파는 약 2만 명 이상이다. 북파가 가장 붐비는 코스다.

▲백두산 서파 천지 백두산 서파 천지
김아름내
5박 6일 일정에서 버스 이동에만 약 20시간이 소요됐다. 긴 이동 끝에 북파와 서파 천지를 모두 마주한 것은 이번 여정에서 가장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가이드의 표정도 한결 밝았다. 그는 우리에게 "여러분이 천지를 다 봤으니 (오늘은 제가) 푹 잘 수 있겠다"며 웃어 보였다. 8년 전 교편을 내려놓은 B씨는 이번 여정에 70대 누이, 50~60대 동생들과 함께했다. 그는 "내년 쯤 백두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되어 동행했다"면서 "백두산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신비로웠다"는 소감을 남겼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오늘 천지가 열렸답니다" 16시간 뱃길 타고 오른 곳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