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임진강 하구따라 평화를 소망하며 걸어온 도착지인 임진각 철책선 안을 흐르는 임진강 마정리구간. 민간인통제구역 안 정자리에서 마정리를 바라보며 찍었다.
노현기
목사들이 맺음 기도회를 한 임진각은 민간인통제구역 철책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장갑차가 임진강을 건넜다. 장갑차보다 한발 앞서 피난을 떠나는 장단 사람들이 강을 건너 마정초등학교에 모였지만 짐도 풀지 못하고 마정리 사람들과 떠나야 했다.
대형 야외 공연장이 있고 아주 넓은 잔디 언덕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임진각에는 슬픈 분단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1972년 7월 4일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전 20년 동안 막힌 길부터 뚫어야 했다. 그 길이 통일로다.
통일로가 생기자 북에 고향을 둔 분들이 문산역에 내려 논과 습지를 헤치고 임진각 철책선 앞까지 와 울면서 북에 있는 부모를 향해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통일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경의선 철교가 강 건너 북으로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통곡을 하며 제사를 지낸 분단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 지어졌는데, 그게 임진각이었다.
임진각 철색선 너머에는 하천부지 논이 있고 임진강이 흐른다. 임진강 건너 민간인통제구역이 있는데 개성공단 폐쇄 이후 열차가 다시 멈춘 경의선 철교와 전쟁 때 총탄자국이 있는 독개다리가 임진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독개다리 앞 경의선 철로 앞에는 아직도 고향을 가지 못한 쌍둥이 소녀상이 앉아있다.

▲ 임진각 철책선 앞에서 고향갈 날을 기다리는 쌍둥이 소녀들
노현기
"6.15 남북공동선언 날 평화를 걷자. 목사들이 지금 같은 시기에 그냥 평화를 빌어야지 뭘 할 수 있겠나? 이번 평화걷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송병구 감리교단 평화통일위원장이 강화도부터 임진각까지 걸어온 이유라고 했다.
지금은 강화남산교회에서, 한강하구 끝자락인 강화 교동도에서 목회를 시작했던 윤여군 목사가 맺음 설교를 했다. 그는 마태복음 10장 13절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우리는 걸으면서 그냥 평화를 빌 뿐입니다. 평화를 말하지 않는다고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빌고 또 빌면 됩니다. 평화가 오지 않는다고 탓하지도 맙시다. 앞으로도 그냥 빕시다."
마지막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시 <고마운 사랑아>에 곡을 붙인 십자가 교회 조진호 목사의 특송은 임진각 느티나무 숲에 깊은 울림이 됐다.
고마운 사랑아
샘솟아 올라라
이 가슴 터지며 넘쳐나 흘러라
새들아 노래 불러라
나는 흘러 흘러 적시리
메마른 이 강산을
뜨거운 사랑아
치솟아 올라라
누더기 인생을 불 질러 버려라
바람아 불어 오너라
나는 너울너울 춤추리
이 언 땅 녹여 내면서
사랑은 고마워
사랑은 뜨거워
쓰리고 아파라 피멍 든 사랑아
살갗이 찢어지면서
뼈마디 부서지면서
이 땅 물들인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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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통제구역 철책선 코앞인 파주 마정리에서도 통일대교 가까운 집에 살고 있음. 평생 분단의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온 임진강변 사람들과 분단의 강 임진강의 자연생태이야기, 우리사회를 지탱해온 농민과 노동자들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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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걸으면서 평화를 빌 뿐입니다" 목사들이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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