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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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에너지를 펄떡이게 하는 플레이리스트
1. Yung Bae – Welcome To The Disco (feat. Macross 82-99)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며 스위머(Swimmer)로서 스위치를 켜는 곡입니다. 인트로부터 망설임 없이 터지는 청량한 퓨처펑크 사운드가 잠이 덜 깬 감각을 톡톡 두드립니다. 어깨를 돌리고 목을 푸는 동안, 밤새 굳어 있던 몸 구석구석에 천천히 활기가 차오릅니다.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이미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 있습니다.
2. 야마시타 타츠로 – 미라이의 테마
시티팝의 대가가 영화 <미래의 미라이>를 위해 쓴 곡으로, 세련된 브라스가 풀사이드로 향하는 발걸음에 경쾌한 탄력을 더해줍니다. 맑고 소년 같은 멜로디를 귀에 담고 걷다 보면, 매일 보던 똑같은 수영장이 어쩐지 새로운 출발선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은 조금 멀리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올라옵니다.
3. 스미다 아이코 –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 벽을 차고 나가는 순간 흐르는 곡입니다. 최근 한국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10대 소녀가 스탠드 마이크를 쥐고 불러 다시금 화제가 된 바로 그 버전으로 골랐습니다. 원곡보다 훨씬 청량하면서도 당당하게 몰아치는 복고풍 비트가 귀를 때리면, 물속에서 묘한 호기가 솟구칩니다.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라는 제목의 뜻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유려하게 수면을 미끄러져 가겠다는 다짐을 이 리듬에 가만히 실어 보냅니다.
4. 신세기 에반게리온 OST – 잔혹한 천사의 테제
워밍업을 끝내고 속도를 올리는 구간, 심장을 정확히 겨냥해 두드리는 전설의 트랙입니다. 물의 울림을 타고 전해지는 강렬한 드럼이 신기하게도 크롤(자유형) 발차기 템포를 자석처럼 끌어당겨 박자를 맞춰줍니다. 숨이 차오르는 고통마저 깊은 몰입으로 바꿔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5. 더 퍼스트 슬램덩크 OST – 다이 제로 칸
심장 박동이 최고조로 거세질 무렵, 묵직하고 거친 베이스 기타가 귓속을 파고들면 온몸에 전류가 흐릅니다. 스크린 속 북산고 선수들이 마지막 코트를 질주하듯, 좁은 레인 위에서 혼자만의 진지하고 정직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는 감각을 선물해줍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결승전을 홀로 뛰는 듯한 그 몰입이,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6. 영화 <록키 3> OST – Eye of the Tiger
수영을 시작한 지 30분이 넘어가면 체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팔다리가 무거워지는 바로 그 고비에서, 사각 링 위의 이 테마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오기를 깨웁니다. 규칙적이고 단단한 인트로 비트에 맞춰 묵묵히 물을 잡아당기다 보면, 풀려가던 광배근과 코어에 다시 긴장이 들어찹니다.
7. 영화 <불릿 트레인> OST – Holding Out For A Hero (Dance Version)
지쳐가는 근육을 다독여주는 테크노 리믹스입니다. 질주하는 드럼 위에 얹힌 익숙한 멜로디가, 지친 발차기를 4비트에서 6비트로 부드럽게 끌어올립니다. "한 바퀴만 더 버티자"며 한계에 다다른 체력을 다잡기에, 이만한 동반자가 없습니다.
8.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OST – 메인 타이틀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광활한 벌판을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처럼 몰아치는 비트가 숨어 있던 투지를 깨웁니다. 실내 수영장의 좁은 레인을 돌고 있지만, 이 격정적인 웨스턴 음악을 배경 삼아 물을 잡다 보면 마음 만큼은 이미 드넓은 한강의 한복판을 거침없이 가르고 있는 듯한 마음이 솟구칩니다.
9. 루팡 3세 PART 6 OST – THEME FROM LUPIN III 2021
체력이 바닥나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구원투수처럼 등장하는 화려한 빅밴드 재즈입니다. 긴박하게 휘몰아치는 브라스 세션과 거침없이 내달리는 드럼이, 처지려던 어깨와 팔에 다시 시동을 걸어줍니다. 음악이 끄는 속도감에 몸을 맡긴 채, 피날레를 앞둔 마지막 한 바퀴를 끝까지 밀어붙이게 됩니다.
10. 체인소맨 <레제편> OST – IRIS OUT
오늘 수영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격정적인 피날레입니다. 사정없이 내지르는 일렉 기타 리프와 가슴을 두드리는 록 비트 한가운데서 마지막 스퍼트를 올립니다. 심장을 진정 시키는 대신 남은 에너지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내며 온 힘으로 물을 가를 때, 일상이 덮어 씌운 체념과 긴장이 물속에서 비로소 증발합니다.
조용한 곡들 뒤에 숨어, 시끄럽고 거칠었던 옛날의 나를 애써 지워두려 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옅어집니다. 귓가를 때리는 130비트의 음악들은 그 시절의 격렬했던 에너지를 고스란히 지금의 수면 위로 건네줍니다. 미숙한 대로 부딪치고 깨지던 순간들도 결국 내 삶의 온전한 파편들이었음을, 물속의 격정적인 리듬을 타며 비로소 받아들입니다.
귀끝에 맴도는 베이스의 여운을 품고 샤워실 문을 나섭니다. 오늘 아침, 수면 아래에서 가득 채워온 이 팽팽한 리듬감과 함께라면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지상의 하루도 제법 호기롭고 경쾌하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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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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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끼고 풍덩, 수영 속도 올리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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