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이 15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인수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솔직히 처음 듣고선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안민석 경기도 교육감 당선자가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교육청에 '교권 보호국' 설치를 검토한다는 기사가 종일 화제였다. 해병대와 특전사 출신으로 직원들을 꾸려 학교 현장에 투입하면 교권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할 수 있을 거라는 취지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의 영향일 테지만, 이 코미디 같은 발언에 동료 교사들 모두 헛웃음을 지었다. '교권 보호국'이라는 뜬금없는 기관명도 그렇지만, 해병대와 특전사 출신이라는 '조건'에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찼다. 학교를 '범죄의 소굴'쯤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발상이 가능하겠느냐는 거다.
당장 그가 강조한 기관의 설립 취지부터 해병대나 특전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교사를 대신해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 등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와 교권 침해를 일삼는 학생을 상대하겠다는 건데, 굳이 특정 군 경력자가 동원돼야 할 이유가 하등 없다. 그들 앞에서 '무력시위'라도 하겠다는 걸까.
악성 민원인과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되바라진 학생들은 그들이 담당하고, 무고성 아동 학대 고소에 법률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변호인단을 따로 꾸린다는 복안도 밝혔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완장 찬' 직원들과 변호인들이 해당 학교를 방문해 해결사 노릇을 하게 될 듯하다. 그럴 바에야 학교에 경찰을 상주시키는 편이 낫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교사들이 원하는 건 '교권보호국'이 아니다
일부 언론에선 교사들 다수가 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양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고육지책일망정 실효성이 있다며 공감하는 교사가 아예 없진 않다. 이태 전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과 체험학습 인솔 교사의 유죄 판결 이후 교사들 사이에 '정부는 교권 보호에 무책임하며 교권은 교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탓이다.
더욱이 교권 침해 사례가 빈발하면서,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는 상황이다. 드라마 <참교육>이 화제를 몰고 온 건 무엇보다 이렇듯 참담한 현실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보호를 갈구하는 교사들에게 '교권 보호국'은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그 이름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만약 '교권 보호국'이 현실화한다면 학교는 더는 교육 기관이 아니게 된다는 걸 교사들도 모두 알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비유한다. 영화 <범죄 도시>의 마동석이 교권을 침해한 아이를 불러다 응징하는 현장에서 옆에 서 있던 교사가 고맙다며 박수를 보내는 풍경이 그려진다는 거다. 이는 교사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는 문제다.
애먼 '교권 보호국'에 맡길 게 아니라, 차라리 교사에게 체벌 권한을 부여하는 게 훨씬 더 교육적이다. 단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훈육 목적의 아이들 체벌을 제삼자에 위탁한다는 건 교육의 본령에도 반한다. 악성 민원의 구체적 내용을 알 길 없는 그들이 학부모들을 상대하고 '제압'한다는 것 또한 난센스다.
'교권 보호국'을 설립하겠다는 건, 드라마에 심취해 순간 빙의돼 내놓은 대책이 아니라면, 여전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봉건적 교육 철학에 젖어 있다는 방증이다. 학교의 교육활동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학교 밖의 강제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부터 황당하다. 학교는 군대나 교도소가 아니다.
반면교사 삼을 만한 사례가 이미 차고도 넘친다. 학교폭력(학폭) 사안에 대한 대응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0년부터 사안 조사와 처분 결정 등 제반 학폭 관련 업무가 교육청의 학폭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됐다. 일선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심의 과정의 전문성을 높여 처분에 따른 법적 분쟁을 줄인다는 취지였다.
여전히 학교마다 기피 업무 1순위이긴 해도, 확실히 학폭 담당 교사의 업무는 줄었다. 올해부터는 학폭 사안의 접수와 보고 과정이 온라인으로 변경되어 더욱 편리해졌다. 이제 학폭이 발생하면 기계적으로 접수하고 전담 조사관을 배정받아 처리하면 된다. 별도의 공문 작성도, 서류 보관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학폭 담당 교사는 물론, 담임교사조차도 학폭 사안 처리에 함부로 개입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자칫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교사는 가해, 피해 학생을 따로 불러 최초 확인서를 받고 교육청에 보고하면 그걸로 끝이다. 제 학폭은 교육이 아닌 사법적 단죄의 영역이다.
'교육의 사법화'가 무너뜨린 교육

▲ 드라마 <참교육>
넷플릭스
학폭 이력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돼 대입에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교육의 사법화'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최근엔 다른 학교의 아이들과 연관된 학폭도 많고, 변호사들이 개입하는 경우마저 다반사다. 이는 맞고소를 부추기고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허물어 지루한 법적인 공방으로 비화한다.
정부의 학폭 예방 대책은 절차만 간소해졌을 뿐 학폭을 예방하는 데 실패했다. 학폭 사안마다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사소한 말다툼조차 학교 울타리를 넘는 일이 일상화하고 있다. 드물게는, 학폭을 활용해 금전적 이익을 취하거나 대입 경쟁을 벌이는 친구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려는 음험한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다.
학폭이든, 교권 침해든, 이는 지난 수십 년간 교육의 본령을 방기한 우리 교육의 '결과'이자 상호부조와 연대의 정신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다. '교권 보호국'이라는 대증요법으로는 치유는커녕 '면역력'만 키우고 온갖 부작용을 양산하며 증상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결과'와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우선,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훈련이 선행돼야 한다. 주말에도 놀이터가 휑하니 비어 있고, 스마트폰이 유일한 친구가 돼버린 현실부터 바루어야 한다. 당장 만나서 놀 기회가 없으니, 갈등 해결은커녕 다툴 일조차 없다. 이젠 아이들의 다툼이 어른들 싸움으로 비화하는 걸 우려하는 단계마저 훌쩍 지나버렸다.
또, 학폭이나 교권 침해를 걱정하기에 앞서 학교에 갈 의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걸핏하면 자퇴를 입에 올리고 아예 등교를 거부하는 경우가 학교마다 드물지 않다. 부모와 교사의 통제를 벗어나 가정과 학교 밖을 배회하는 아이들에게 대입과 성적 운운하는 건 전혀 실효성이 없다. 대입에 종속된 학교 교육의 역할이 이젠 달라져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무너진 가정교육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명색이 고등학생인데도 기본적인 생활 습관조차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술과 담배는 기본이고, 도박에 빠진 아이들이 드물지 않다. 최근엔 SNS를 통해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형국이다. 방과 후의 일상은 가정의 몫이건만, 부모의 손을 떠나 방치된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이야말로 황폐한 우리 교육 현실에 맞춤한 경구다. 교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교권 보호국'을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실패로 귀결된 학폭 예방 대책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예상하지 못한 온갖 부작용만 양산한 채 흐지부지될 게 뻔하다.
단언컨대, 학교 밖 강제력에 의존해 학교 내 갈등을 해결하려는 반교육적인 방안으로는 게도 구럭도 잃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지금 교육 현장엔 난데없는 '교권 보호국'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교권 보호법'이 절실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학교의 존재 이유인 교육을 외부에 위탁한다면, 그곳을 더는 학교라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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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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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보호국 설치 검토? 교사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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