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21 10:34수정 2026.06.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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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만나 어슬렁거리며 길을 걷다가 그림 한 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갤러리의 유리창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림에 글씨가 있는 그림이 낯설어서일까. '나를 짓밟은 것들에게 사랑과 용서를'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어서일까. 무언가에 취한 듯, 홀린 듯 나도 모르게 전시장 안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전시장에는 마침 작가님이 계셨다. 전시 오픈일 하루 전이지만 전시장도 둘러보고, 내향형 성격이라 마음의 준비도 할 겸 나와계신다고 했다.

▲ 신미수 개인전
이정현
전시장 안에는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의 대형 작품들과 캔버스 2,3호 정도의 작은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화려하게 만개한 다양한 색의 나리꽃 작품에서는 마치 향기가 진하게 나는 것만 같았다. 마치 강물에 꽃들을 띄우는 것만 같은 큰 작품 앞에서는 인도 갠지스강에서 꽃과 초를 띄우던 순간이 떠올랐다.

▲ 신미수 개인전
이정현
옆으로 난 작은 문과 계단으로 들어가니, 고양이나 횡단보도 풍경 등 일상과 현실이 담긴 그림들이 이어진다. 마치 한 사람 안의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이라는 세계가 두 개의 공간에 펼쳐져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곰씁쓸'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담긴 전시의 제목과 주제도 그래서 더 잘 어울린다.
신미수 작가는 '나에게 꽃을 그리는 것은 그림의 단맛이다. 쓴맛은 이야기. 이 세상에는 다행, 요행, 그리고 "불행"이라는 행복의 친구들이 있다.'라는 글을 작가의 말에 써 두었다. '행복의 친구들'이라니. 작가의 말대로, 불행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둘은 친구이자 짝꿍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마치 꽃이 피는 순간처럼 아름답고, 환희로운 동시에, 꽃이 시드는 순간처럼 쓸쓸하고, 초라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 신미수 개인전
이정현
전시장을 모두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처음 내 마음을 끌었던 작품을 가까이 가서 보았다. '나를 짓밟은 것들'이라는 어구에 몸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들, 풀리지 않는 오해와 엉켜버린 관계들,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들, 날이 선 말들과 경계를 부숴버린 폭력과 무례한 행동들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그마저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마침 오랜만에 다시 펼친 책 안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의식과 성찰하는 태도, 자신의 행동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단계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 고의로 혹은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용서하는 과제가 찾아온다.
용서는 창조적인 힘을 옭아맨 사슬을 푸는 힘이 있다. 그 자유로워진 창조력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과거의 맺힌 마음을 풀고 용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꽃을 피운다.
베티 스텔리, <인생의 씨실과 날실> 中
무수한 생명들의 시체들과 썩은 것들 속에서 피어나는 꽃들처럼, 진흙 속에서도 맑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나도 나보다 더 큰 사랑과 용서 속에서 내 삶을 꽃피울 수 있길 바라는 진실한 소망. 우연처럼 보이는 운명으로 만난 그림이 거울처럼 비춰준 간절한 열망. 작가는 그림으로 담아낸 그 마음을, 나는 글로 전한다. 그 마음이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잘 전해지길 바라며, 강물에 꽃잎을 띄우듯.
| 전시 정보 |
전시 날짜 : 2026년 6월 18일(목) - 2026년 6월 30일(화) 전시 장소 : 아트스페이스 퀄리아(서울시 종로구 평창11길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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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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