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둘 사장님에게 "아빠, 딸내미 졸업해" 편지가 도착한 이유

[인터뷰] 서울여대 '츄밥' 사장님이 10년간 쌓아온 한 끼의 기억 "8000명 딸들에게 아빠로 기억됐으면"

등록 2026.06.22 09:25수정 2026.06.22 09:2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8000명의 딸이 있어요."

서울여자대학교 학생 누리관에서 컵밥 전문점인 츄밥을 10년째 운영하는 박기섭(65) 사장님이 학생들을 부르는 방식이다. 실제로 그의 자녀는 두 아들이지만, 지난 10년간 매일 마주한 서울여대생들은 어느새 그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되었다.


츄밥 앞에는 '슈니's LETTER'라는 작은 게시판이 있다. 그곳에는 서울여대생들의 조용한 마음이 붙어있다. 손편지를 비롯해 망고 젤리 두 개, 빼빼로 하나, 박카스 세병 등이 인쇄되어 코팅 된 채 가게 앞을 지킨다.

"전에는 밥 먹고 나온 영수증 용지에 빼곡하게 적어서 전해준 학생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잘 둔다고 뒀는데 없어져 버리더라구요. 그래서 이건 없어지면 안 된다 싶어서 코팅해서 붙여두기 시작했어요(웃음)."

사장님에 대한 서울여대생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대학생들이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서울여대 에브리타임에는 '츄밥 사장님' 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츄밥 사장님 너무 친절하시다' , '따뜻하시다'라는 학생들의 의견이 자자하다.

츄밥 앞 슈니'S LETTER 편지들과 선물들이 코팅되어 붙어있다
▲츄밥 앞 슈니'S LETTER 편지들과 선물들이 코팅되어 붙어있다 장연재

츄밥 사장님 박기섭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누리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츄밥 사장님 박기섭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누리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장연재

다음은 지난 9일 만난 박 사장님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정리본이다.

- 장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장사 시작 전에는 학원을 운영했는데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때 마침 큰아들이 전공 분야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고... 또 마침 학원에서 가르쳤던 학생 중 한 명이 츄밥을 알려주어서 큰아들에게 '이걸 해볼래?'라고 제안을 했어요. 큰아들이 흔쾌히 좋다고 해서 장사를 알아보게 되었죠. 인덕대에서는 2년 정도 길지 않게 했고, 서경대점은 7~8년 정도 했는데 그건 큰아들이 도맡아서 한 거에요. 저와 제 아내는 인덕대점을 정리하고 서울여대에 입점하면서 서울여대는 이번 연도가 딱 10년 차입니다."

- 컵밥이라는 아이템이 쉽게 죽을 아이템이 아니라고 확신하셨던 이유가 있으신가요?


"한국 사람들은 아무래도 밥 문화가 굉장히 중요하고, 츄밥은 어디서도 못 먹어보는 츄밥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맛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컵밥들이 죽어도 츄밥은 죽을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데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츄밥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컵밥이 학생들이 원하는 걸 꼭 맞춰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건 쉽게 사라질 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졸업생들이 와서 '츄밥은 꼭 안 없어지면 좋겠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백년가게를 꿈꾸게 되었어요. 츄밥은 서울여대에 100년 후에도 있어서 많은 졸업생들이 학교에 와서 그리워하고 옛날 추억을 되살리며 '아,이거 내가 먹었던 거야'하는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 되고 싶어요."

- 장사를 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코로나 시기였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하는 장사다 보니 학생들이 없는 학교는 주인이 없는 학교와 같아서 되게 적막하고 외로웠습니다."

- 코로나 때 말고는 평소에 힘든 점은 따로 없으신가요?

"저는 서울여대에 오고부터는 힘들었다기보다 오히려 아침에 출근하면서 기대가 되었어요.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참 좋으니까... 지인들한테 저는 항상 '8000명의 딸(서울여자대학교 재학생 수)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해요. 내 자식들, 내 자녀들을 먹이는 음식이라고 츄밥을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을 먹이고 가족을 본다는 생각으로 출근합니다(웃음). 그래서 힘들기보다는 좋습니다."

- 그렇다면 사장님의 동력은 학생과 손님들인 건가요?

"그렇죠. 특히 옛날에 저희 학원생이었던 아이들이 커서 츄밥을 찾아오고, 졸업생들이 친구, 남자친구, 남편 데리고 오고 이런 것들이 쉽지 않은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좋아서 정말 힘이 나요."

- 그간 장사를 해 오시면서 있었던 학생들과의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너무 많은데...일단 첫 번째로 슈니's LETTER에 붙여둔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걸 소개해 드릴게요. 저한테 졸업할 때 편지를 주고 갔던 학생인데, 잠시 읽어드릴게요.

"츄밥 사장님께.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는 이번에 졸업하는 19학번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학교 다닐 동안 츄밥 정말 많이 먹었고 정말 사랑했거든요, 그동안 항상 친절하게 맞아주시고 맛있고 따뜻한 한 끼 대접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졸업 때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어요. 아빠 딸내미 졸업해."

19학번 졸업생의 편지 슈니's LETTER에 적혀있는 한 졸업생의 편지
▲19학번 졸업생의 편지 슈니's LETTER에 적혀있는 한 졸업생의 편지 장연재

대략 이런 내용인데, 이 학생이 그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대학원 진학 학생증을 보여주면서 근황을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이 편지를 처음 읽으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던 일화가 있고요. 또 한 분은 졸업식 날 케이크를 사 들고 부모님까지 모셔 와서 인사를 해 주어서 이렇게 따뜻한 마음도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이후에도 매일같이 쿠키를 구워 와서 아무 말 없이 슥 주고 가는 학생도 있었어요. 이렇게 한 분 한 분 기억에 많이 남아요."

- 서울여대 에브리타임에는 '츄밥 사장님께서 퇴근하시는 걸 봤는데, 당연한 일인데도 신기했다'라는 글이 많은 많은 학생들의 공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학생들은 사장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분'으로 기억하는 것 같은데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일단 너무 감사하죠. 전에 학교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한번 찍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조회수가 2000뷰 정도 나왔던 것 같거든요. 이때도 학생 분들한테 많이 사랑 받고 있다고 느껴서 너무 감사했고, 경건회(교내 종교 수업) 강연 때도 학생들이 끝난 후에 와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셔서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항상 안면에 미소를 띄고 주문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기쁨이 잘 느껴지고 아주 행복한 것 같아요."

- 사장님 스스로도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맞을 거예요. 저는 어쨌든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러분을 보는 마음이 똑같습니다. 10년 넘게 해 오면서 지금까지 잊지 않고 꼭 하는 것 중 하나가 주문하는 한 명 한 명에게 축복하는 기도를 꼭 해줘요. '학생들의 앞길을 열어주시고, 꿈꾸는 바다를 이룰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한 명 한 명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축복해 주었던 학생의 얼굴을 기억하고 이런 것들이 저를 행복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중 진짜 잘 되어서 크게 된 학생을 볼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 명 한 명이 주문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제가 기도하는 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 한결같음의 비결을 여쭤봐도 될까요?

"딱히 거창한 비결은 없고, 그냥 좋았던 것 같아요. 아내한테도 항상 말하는 게 우리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또 어쨌든 이 츄밥 가게가 이 자리에서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제는 작은 아들도 설득해서 지금은 모든 가족이 같이 일하고 있으니까 제 꿈 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거죠."

츄밥 사장님 박기섭의 모습 사장님이 항상 서 계시는 자리이다
▲츄밥 사장님 박기섭의 모습 사장님이 항상 서 계시는 자리이다 장연재

- 사장님은 서울여대생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제가 (서울여대생들을) 딸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빠 같은 존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장사를 한다는 개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가족 같은 느낌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빠 딸내미 졸업해'라는 졸업생의 편지가 더 뭉클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저희도 물론 최선을 다해서 좋은 메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 나갈 거고요. 학생들이 언제든지 와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웃음)."
#츄밥 #서울여대 #컵밥 #박기섭 #한결같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을 열심히 쓰는 사람입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 영종도 자택에서 사망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 영종도 자택에서 사망
  2. 2 부산 돌려차기 사건, 성범죄 밝힌 건 검찰 보완수사 아니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성범죄 밝힌 건 검찰 보완수사 아니었다
  3. 3 아이 유럽 보냈는데 압수수색 당한 여행사 "100만원 더 보내라" 아이 유럽 보냈는데 압수수색 당한 여행사 "100만원 더 보내라"
  4. 4 아이 손에 쥐여 준 패드, 프랑스에서 들려온 충격적 소식 아이 손에 쥐여 준 패드, 프랑스에서 들려온 충격적 소식
  5. 5 압색 당한 여행사 예약자 400명... '2년 전에 여행비 냈는데 어떡하나' 압색 당한 여행사 예약자 400명... '2년 전에 여행비 냈는데 어떡하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