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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처럼 예쁜 여름 채소, 선배와 나눴더니 돌아온 것

    가지, 방울토마토, 단호박이 영글어 가는 유월의 텃밭... 따뜻한 안부와 함께 주고받았습니다

    등록 2026.06.25 15:50수정 2026.06.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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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봄부터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쉼터 '느루뜰'로 향합니다. 이 글은 시골 쉼터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기자말]
    "느루뜰에 가야지."

    일요일(지난 21일) 오전 6시께 잠이 깼다. 지난 토요일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빗속에 둘러본다고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눈이 쉬이 떠지지 않았다.


    단잠에 빠져 있는 남편에게 내 말이 닿을까 의심하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편 눈이 번쩍 뜨였다. 고단한지 좀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났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씻고 후다닥 채비를 했다. 채소들이 잘 있는지 살펴보고, 주인 발소리, 목소리도 들려주며 평일에 먹을 채소도 따서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꽃같이 예쁜 채소들

     꽃같이 예쁜 채소들
    꽃같이 예쁜 채소들 이정미

    느루뜰 입구에 분홍색 꽃이 활짝 피었다. 비 온 뒤라 진입로는 온통 풀밭이 되었다. 바람이 심했던 모양인지 제초 매트가 여기저기 뒤집어져 있다. 밭고랑에는 잡초들이 신이 났다. 할 일이 가득해 보인다. 남편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작업복을 갈아입고 제초 매트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설 때는 잠깐 들려서 채소만 따오자고 했건만, 눈앞에 펼쳐진 일거리에 올 때 마음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비 내린 뒤 한층 상큼해진 초록 풍경을 한껏 눈에 담았다.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일복으로 갈아입은 뒤 오디오북을 켜고 채소 바구니를 챙겼다.

    오이, 미인고추, 가지, 방울토마토를 차례로 따 담았다. 초록, 보라, 빨강이 조화롭게 예쁘다. 갓 딴 채소들은 하나같이 수분이 많아 피부가 탱글하다. 짙은 보랏빛이 감도는 가지는 늘씬하고 탄력 있다. 미인고추는 큼직하고 탄탄하다. 방울토마토는 한 알 따서 입 안에 넣으니 향이 진하고 짭조름한 신맛이 상큼하다. 채소가 꽃같이 예쁘다.


    다음은 당근 캐기. 나는 일을 시작하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순서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당근도 수확기에 접어 들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두 수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일 아침 저녁으로,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먹을 만큼만 캐기로 했다.

    비온 뒤라 흙이 부드러워 당근이 잘 뽑혔다. 먹기 좋을 만큼 굵어졌다. 수돗가로 가져와 흙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반들반들 주황색 얼굴이 매끈하게 드러났다. 칼로 썰어 한 입 먹어 보았다. 달큼하고 아삭했다. 건강한 기운이 입안에 맴돌았다.


     주황색 예쁜 당근
    주황색 예쁜 당근 이정미

    지난 3월 말에 당근 씨앗을 심었다. 지난해 11월 당근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씨를 받아 심은 당근은 뿌리가 몇 갈래로 갈라진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종묘상에서 구입한 것은 한 뿌리로 매끈하게 자랐다. 구입한 씨앗이 발아율도 높고 뿌리도 예쁘게 잘 자랐다. 맛도 구입한 쪽이 좀 더 부드럽고 달게 느껴졌다. 그래서 오는 8월 초 가을 당근을 파종할 때는 구입한 씨앗만 땅에 놓을 생각이다.

    봄 상추가 웃자라 꽃이 폈다. 대를 꺾어준 자리에 새 상춧잎이 돋았다. 부드러운 것을 골라 땄다. 2주전에 새롭게 심은 로메인 상춧잎이 제법 넓어졌다. 다음 주부터는 새 상추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상추는 봄, 여름, 가을 어느 때든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 기를 수 있으니 참 유용한 채소다. 흔하고 까다롭지 않은 상추의 성질이 나는 참 좋다.

    이렇게 채소들을 따 담으면서 나는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도착했을 때 이 일들을 어쩌나 했던 앞선 걱정이 싹 가라앉는 것을 본다. 감나무 밭 아래 빈터에 심었던 수박 넝쿨을 살펴보니 수박이 아이 머리통만큼 커졌다. 신통방통하다.

    단호박 줄기에도 초록 열매가 옹골차게 열렸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단호박은 6월 말에서 7월 초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수확하면 된다고 했다. 이제 곧 수확 시기가 다가온다. 수확 후엔 7~10 일 정도 숙성하여 먹으면 단호박 맛이 더 좋다고 한다. 나는 단호박 애호가이다.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쪄서 먹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나가 순식간에 한 개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게 된다. 영양도 색도 예쁜 채소이다.

     단호박과 수박
    단호박과 수박 이정미

    얼마전 EBS 다큐 프라임 <맛의 배신 1부, 건강을 부르는 향>을 보았다. 주요 내용은 요즘 시중에 파는 채소들은 대개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되어 고유한 향이 약해졌다는 것. 향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채소가 영양분이 많고 건강하다는 뜻이라는 것. 그러니 땅에서, 채소 본연의 생애에 따라 건강하게 자란 느루뜰 채소가 더 예뻐 보일 수 밖에.

    정갈하게 정리한 쉼터 앞마당

    채소와 열매를 보며 가벼워진 마음으로 쉼터 마당에 올라온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마당 만큼은 사람 사는 집 안뜰처럼 정갈하게 관리하고 싶다. 호미로 풀을 하나 하나 제거하는 이 단순한 작업에 묘한 '힐링'을 느낀다.

    잡초를 뽑을 때 나는 자주 오디오북을 켠다. 이번에는 박완서 작가의 <사람의 일기>를 들었다. 손은 자동으로 풀을 뽑고, 귀는 자동으로 소설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면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이렇게 두 시간 가량 일을 하고 나면 모자를 눌러 쓴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등 줄기에도 땀방울이 맺힌다. 허리를 펴고 말끔해진 쉼터 앞마당을 바라보면 내 눈앞에 바로 가시화되는 '노동의 결과물'에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그렇게 기분 좋게 일을 마무리하고 쉼터에 앉았다. 바람이 살랑거렸다. 노트북을 꺼내 '비 내리는 날 종묘'를 다녀온 여행기를 썼다. 땀 흘린 후 글을 쓰면 몰입감이 커진다. 생산적이 되는 이 느낌이 좋다.

    점심은 상추, 아삭한 미인고추, 갓 딴 오이, 살짝 데친 가지와 당근을 차린, 그야말로 간결한 채소 밥상이었다.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기에 집에서 먹거리를 챙겨오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땐 읍내에 나가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채소를 가득 수확하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아무튼 마음이란 이렇게 쉽게 변한다.

    가득 따 담은 채소를 보니 문득 지난 2월에 정년 퇴직한, 예전에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선배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우리집과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선배 언니와 정 나누기

    "언니, 집에 있어요? 텃밭에서 고추랑 오이, 가지 땄는데 가는 길에 갖다 드릴까 해서요."

    언니는 "웬 채소냐?" 궁금해 했다. 지난 2월에 만났을 때 오랜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폭포수라 미처 느루뜰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언니와 전화를 끊고 종이 가방에 지난번에 수확한 양파와 감자 몇 개, 가지, 미인고추, 당근을 챙겨 담았다. 마음이 넉넉해졌다.

    "너 전화 받고 줄 것이 없나 하고 찾아 봤지. 하하. 이거는 검정콩 볶은 거고, 이건 된장에 콩잎 절인 거야."

     선배 언니의 정이 듬뿍 담긴 검정콩과 콩잎 반찬
    선배 언니의 정이 듬뿍 담긴 검정콩과 콩잎 반찬 이정미

    자주 만나지 못해도 언제나 따뜻한 고향 같은 선배 언니다. 나를 친동생처럼 생각하며 "언니가 밥 사 줄게. 방학 때 얼굴 보자"며 전화를 주던 언니다. 언니네 아파트 마당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안부를 건네고 정을 나누는 그 짧은 시간이 참으로 따뜻했다.
    #가지 #미인고추 #방울토마토 #오이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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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 글쓰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자신의 성장을 너머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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