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호박과 수박
이정미
얼마전 EBS 다큐 프라임 <맛의 배신 1부, 건강을 부르는 향>을 보았다. 주요 내용은 요즘 시중에 파는 채소들은 대개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되어 고유한 향이 약해졌다는 것. 향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채소가 영양분이 많고 건강하다는 뜻이라는 것. 그러니 땅에서, 채소 본연의 생애에 따라 건강하게 자란 느루뜰 채소가 더 예뻐 보일 수 밖에.
정갈하게 정리한 쉼터 앞마당
채소와 열매를 보며 가벼워진 마음으로 쉼터 마당에 올라온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마당 만큼은 사람 사는 집 안뜰처럼 정갈하게 관리하고 싶다. 호미로 풀을 하나 하나 제거하는 이 단순한 작업에 묘한 '힐링'을 느낀다.
잡초를 뽑을 때 나는 자주 오디오북을 켠다. 이번에는 박완서 작가의 <사람의 일기>를 들었다. 손은 자동으로 풀을 뽑고, 귀는 자동으로 소설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면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이렇게 두 시간 가량 일을 하고 나면 모자를 눌러 쓴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등 줄기에도 땀방울이 맺힌다. 허리를 펴고 말끔해진 쉼터 앞마당을 바라보면 내 눈앞에 바로 가시화되는 '노동의 결과물'에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그렇게 기분 좋게 일을 마무리하고 쉼터에 앉았다. 바람이 살랑거렸다. 노트북을 꺼내 '비 내리는 날 종묘'를 다녀온 여행기를 썼다. 땀 흘린 후 글을 쓰면 몰입감이 커진다. 생산적이 되는 이 느낌이 좋다.
점심은 상추, 아삭한 미인고추, 갓 딴 오이, 살짝 데친 가지와 당근을 차린, 그야말로 간결한 채소 밥상이었다.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기에 집에서 먹거리를 챙겨오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땐 읍내에 나가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채소를 가득 수확하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아무튼 마음이란 이렇게 쉽게 변한다.
가득 따 담은 채소를 보니 문득 지난 2월에 정년 퇴직한, 예전에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선배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우리집과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선배 언니와 정 나누기
"언니, 집에 있어요? 텃밭에서 고추랑 오이, 가지 땄는데 가는 길에 갖다 드릴까 해서요."
언니는 "웬 채소냐?" 궁금해 했다. 지난 2월에 만났을 때 오랜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폭포수라 미처 느루뜰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언니와 전화를 끊고 종이 가방에 지난번에 수확한 양파와 감자 몇 개, 가지, 미인고추, 당근을 챙겨 담았다. 마음이 넉넉해졌다.
"너 전화 받고 줄 것이 없나 하고 찾아 봤지. 하하. 이거는 검정콩 볶은 거고, 이건 된장에 콩잎 절인 거야."

▲ 선배 언니의 정이 듬뿍 담긴 검정콩과 콩잎 반찬
이정미
자주 만나지 못해도 언제나 따뜻한 고향 같은 선배 언니다. 나를 친동생처럼 생각하며 "언니가 밥 사 줄게. 방학 때 얼굴 보자"며 전화를 주던 언니다. 언니네 아파트 마당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안부를 건네고 정을 나누는 그 짧은 시간이 참으로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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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예쁜 여름 채소, 선배와 나눴더니 돌아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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