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을 가장 좋은 자리에 모신 사람들 캄보디아 Pong Toeuk High School의 BiTS(Bi-비, Teacher, Student) 학생들과 교사, 관계자들이 빗물식수화 시설 앞에 모였다. 이 학교는 레인스쿨 컨테스트를 통해 선정된 뒤 자체 예산을 추가하여 시설 규모를 확대했으며, 학생들이 직접 시설을 관리하고 빗물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알리고 있다.
한무영
이러한 생각은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RAC)의 40톤 빗물식수화 시설에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물 연구를 시작한 지 50년이 되었고, 빗물 연구만도 26년째 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빗물시설을 보아 왔지만, 빗물을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대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나는 RAC 시설의 설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처음 설치했던 콤볼학교의 사례와 운영 경험을 소개하고, 빗물이 충분히 음용수 기준을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 자신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RAC에서도 건물 옆 풀밭의 작은 공간을 제안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잘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RAC의 총장을 비롯한 최고 책임자들이 직접 논의에 참여했고, 내가 생각했던 위치보다 훨씬 좋은 장소를 선택했다. 건물 옆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넓은 공간을 확보했고, 굳이 돈을 더 들여 높고 시원한 지붕까지 설치했다.
사실 나 역시 지금까지는 지붕이 비와 먼지만 막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햇빛을 가릴 정도의 단순한 지붕이면 충분하다고 여겼고, 더 높고 넓고 보기 좋은 지붕을 만들기 위해 추가로 돈을 쓰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캄보디아는 달랐다. 그들은 빗물을 모으는 시설이 아니라 빗물을 모시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자랑할 수 있어야 확산된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RAC에는 국내외의 장관, 대사, 국제기구 관계자 등 많은 손님들이 방문한다. 지난 3월에는 주캄보디아 한국대사도 이 시설을 둘러보고 갔다. RAC는 방문객들에게 빗물시설을 안내하고 직접 물을 마셔 보게 한다. 회의를 할 때도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 대신 유리병에 담은 시원한 빗물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 물은 우리가 받은 빗물입니다."
그 순간 빗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자랑거리가 된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것은 앞에 두고 보여준다. 숨겨야 할 것은 구석에 둔다. RAC는 빗물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좋은 자리에 두고 자랑하고 있었다.
RAC는 최근 RTRC(Rainwater Training & Research Center)를 설립하여 빗물 교육과 연구, 그리고 확산 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자리에 놓인 이 시설은 단순한 물탱크가 아니라 캄보디아 빗물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자리에 두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억하고 기록하며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최근의 레인스쿨에는 수질검사 합격증을 부착하고 있다. 시설의 구조와 원리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세운다. 누가 설치했고 누가 관리하는지, 그리고 어떤 기관이 지원했는지를 알리는 표지판도 설치한다.
앞선 글에서 소개했듯이 레인스쿨에는 펜스가 없고 학생들이 직접 시설을 관리한다. RAC에서도 담당자가 정해져 매일 수량과 수질을 확인하고, 개선할 점을 찾아 실제 운영에 반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QR 코드를 이용한 디지털화도 구상하고 있다. 휴대전화로 코드를 찍으면 수질과 수량의 변화 이력, 시설 운영 현황, 그리고 BiTS 학생들의 활동 내용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기록한다. 소중한 것은 자랑한다. 소중한 것은 다음 세대에게 전한다.'
태도가 미래를 만든다
나는 지난 26여 년 동안 빗물 연구를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좋은 물을 만드는 방법, 유지관리하는 방법,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 왔다. 그런데 RAC와 캄보디아의 레인스쿨은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기술을 주어도 관심이 없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문득 세종대왕의 측우제도도 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은 비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측우기를 만들고 전국에 설치했으며, 비가 얼마나 왔는지를 기록하게 했다. 그것은 단순히 강우량을 재는 기술이 아니라 백성의 삶에 중요한 빗물을 국가가 소중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오늘날 캄보디아의 레인스쿨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빗물을 모으고, 수질과 수량을 기록하고, 친구들과 부모에게 알리고, 그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한다. 시대와 나라는 다르지만 빗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록하며 함께 나누려는 마음은 닮아 있다.

▲미래의 물관리자는 학생들이다 레인스쿨의 빗물식수화 시설은 단순한 물탱크가 아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수질과 수량을 측정하고 기록하며 빗물의 가치를 배운다. 캄보디아 교육부가 레인스쿨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교육적 가치 때문이다.
한무영
나는 빗물 기술을 전하러 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는 또 하나를 배우고 있었다. 좋은 시설은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과 정성, 그리고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성공하는 시설과 실패하는 시설의 차이는 기술보다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캄보디아의 작은 레인스쿨에서, 세종대왕이 측우제도에 담았던 마음과 비슷한 정신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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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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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학교는 빗물을 가장 좋은 자리에 모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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