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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6.27 11:48수정 2026.06.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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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현장에서 해양문화와 섬의 가치를 기록하고 있는 인문학자 이윤선. 그는 평생 바다와 섬, 사람의 이야기를 연구하며 현장을 누벼왔다.
이윤선
사람마다 평생 붙들고 사는 화두가 있다. 어떤 이는 권력을 탐구하고, 어떤 이는 자본의 흐름을 좇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사람을 연구했다. 역사의 중심에 선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이 시대를 살아낸 민초들, 바다와 섬을 삶의 터전으로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들의 삶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 그의 평생 연구이자 사명이었다.
그의 학문은 연구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진도 바닷가의 파도 소리와 마을 굿판의 북소리 그리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가장 오래된 교과서였다. 남도와 바다, 섬과 사람을 기록하며 한국 민속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인문학자 이윤선(63), 사람의 삶 속에서 역사를 읽고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해 온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인에서 인문학자로
"저는 예인의 길을 버리고 학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얻은 현장의 감각 위에 학자의 질문을 더했을 뿐입니다."
이윤선의 학문은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시작됐다. 젊은 시절 그는 국악인과 연희인으로 활동하며 무대에 올라 북을 치고 춤을 추었다. 전통문화는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생활 그 자체였다.
현장을 누비며 살아갈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물음들이 쌓여갔다. 사람들은 왜 굿을 통해 슬픔을 위로할까. 섬사람들은 왜 죽음 이후의 길을 바다와 물길로 상상했을까. 공동체는 왜 노래와 놀이를 통해 삶의 고단함을 견뎌왔을까.
그 질문들은 결국 민속학이라는 길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예인에서 학자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득한 감각과 경험을 학문적 성찰로 확장해 나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연구는 언제나 사람과 현장을 중심에 둔다. 논문과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마을회관과 포구를 찾고, 섬과 갯벌을 걸으며, 굿판과 장터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에게 연구실은 대학 건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펼쳐지는 모든 현장이었다.

▲ 김포 한강 조강포 해맞이 현장을 찾은 이윤선 박사. 물길을 따라 이어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연구해 온 그의 시선이 새해 아침을 담고 있다.
이윤선
지역 실천의 땔나무꾼
"저는 늘 저를 '지역 실천의 땔나무꾼'이라고 말해왔습니다. 땔나무꾼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모여 따뜻한 밥을 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불씨를 지키는 사람이지요."
이윤선은 학자라는 호칭보다 '지역 실천의 땔나무꾼'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사용한다. 그가 생각하는 땔나무꾼은 세상의 중심에 서는 사람이 아니다. 산과 들을 다니며 버려진 나뭇가지를 모아 공동체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사람이다.
그의 삶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노래와 잊혀 가는 풍속을 기록하고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모아 공동체의 기억으로 되살리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화려한 이론이나 거창한 담론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현장에 더 큰 가치를 두었고 민속과 문화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찾아 기록해 왔다.
그래서 그의 연구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다. 바닷가 어촌마을의 노인, 섬마을 무당, 이름 없는 예인과 어민들까지도 그에게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자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글이 따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문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고, 문화를 설명하면서도 삶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윤선이 지켜온 불씨는 학문의 불씨이기 이전에 사람의 온기였다. 그리고 그 온기는 오늘도 남도와 섬, 바다와 공동체를 밝히며 이어지고 있다.

▲ 민요창극 〈아리랑 날 다려가요〉를 연출한 이윤선. 그는 전통 민요와 지역의 삶을 무대예술로 재해석하며 관객과 소통해 왔다.
이윤선
씻김굿에서 발견한 한국인의 애도 철학
"씻김굿은 죽은 사람만을 위한 의례가 아닙니다. 떠난 이를 보내는 과정이면서, 남겨진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이윤선 연구의 중심에는 진도 씻김굿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씻김굿을 단순한 무속의례나 민속문화의 한 형태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세계관과 공동체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씻김굿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고 길을 열어주는 의례이지만,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체적 장치이기도 하다. 죽음을 끝이 아닌 관계의 전환 과정으로 이해하고 슬픔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며 극복하는 지혜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윤선은 오랜 연구를 통해 씻김굿을 한국인의 애도 문화와 공동체 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재해석해 왔다. 그의 관심은 전통 의례의 분석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러한 시선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세월호를 단순한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 기억과 책임, 애도와 연대의 의미를 다시 묻는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본다. 세월호 12주기 학술대회를 시민 후원만으로 개최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기억은 특정 기관이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책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윤선에게 씻김굿과 세월호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는 전통 속에 담긴 애도의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회적 애도의 과제다. 그는 과거의 민속과 현재의 현실을 연결하며, 공동체가 상처를 기억하고 치유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 윤보선 생가에서 임진택 명창이 고수와 함께 판소리 한마당을 펼치고 있다.
이윤선
진도 바닷가에서 시작된 인문학의 씨앗
"민속을 연구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낳고 길러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제 연구의 시작도, 지금까지의 여정도 결국 그분들을 향해 있습니다."
이윤선의 삶과 학문은 진도에서 시작됐다. 바다가 일상이었고 마을 공동체가 학교 역할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그는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과 죽음을 배웠고, 굿판의 북소리와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서 세상을 이해해 나갔다.
훗날 민속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연구는 특정 학문 분야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고 길러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과정에 가까웠다. 1898년생 아버지와 씨받이 어머니 그리고 친자식처럼 자신을 키워준 양어머니의 삶은 인간과 공동체, 전통과 기억의 의미를 가르쳐 준 첫 번째 스승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가르침은 그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길에서 종잇조각만 보여도 주워 와 아들에게 건네며 "아무 글자든 써라"라고 말했다. 평범한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훗날 수많은 책과 논문, 칼럼을 집필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윤선은 기록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에게 기록은 단순히 글을 남기는 행위가 아니다. 이름 없이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사라져 가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붙잡아 두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학문은 늘 사람을 향했고, 그의 기록은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시작됐다.

▲ 서남해 섬 조사를 위해 현장을 찾은 이윤선과 정수일 선생. 섬과 바다가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이윤선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다
"사람들은 늘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저는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선이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윤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바다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는 평생 섬과 해양문화를 연구하며 육지 중심의 사고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왔다. 그의 연구는 늘 바다에서 시작됐고, 바다를 통해 사람과 문화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이다. 육지에서 바라보면 한반도는 대륙의 끝이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면 수많은 길이 열리는 시작점이 된다. 섬 또한 고립되고 소외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 문명이 만나고 교류하는 연결의 장소로 읽힌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오랫동안 섬과 해양문화를 연구하며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특히 오키나와와 미크로네시아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바다가 국경보다 더 강한 문화적 연결고리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언어와 국적은 달라도 노래와 의례, 공동체 문화 속에는 놀라울 만큼 닮은 정서와 삶의 방식이 살아 있었다.
그에게 바다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경계선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이어주는 오래된 길이며, 섬은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이다. 그래서 이윤선의 해양 인문학은 바다를 연구하는 학문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 이윤선 박사. 바다를 연구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문화를 잇는 해양 인문학의 길을 걷고 있다.
진재중

▲ 바다 위 섬들. 이윤선의 시선에서 섬은 단절이 아닌 소통과 교류, 공존의 공간이다.
진재중
사람을 향한 학문
"후세에게 꼭 한마디를 남긴다면 '공명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자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며 함께 울리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도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이윤선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을 향한다. 그의 관심은 왕이나 권력자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다. 여성과 민중, 무당과 광대, 어민과 농민 그리고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시대의 본질을 읽어낸다. 그는 바로 그곳에 남도 인문학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수십 년 동안 남도와 섬, 바다를 누비며 수많은 명인과 예술인, 문화예술계의 거장들을 만나왔지만, 정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부모를 떠올렸다. 자신을 낳아준 생모와 길러준 어머니 그리고 글쓰기의 씨앗을 심어준 아버지. 평생 연구해 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 그들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학문은 화려한 담론보다 사람의 삶을 먼저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다. 그래서 민속도, 바다도, 섬도 결국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통로였다. 이름 없이 살아온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사라져 가는 기억을 되살리며, 공동체가 지켜온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 그가 걸어온 길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들은 "공명하는 사람이 되자"는 한마디는 어쩌면 이윤선의 삶 전체를 설명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삶에 울림이 되고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 그가 평생 연구해 온 민속과 문화, 섬과 바다의 이야기도 결국 그 가치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현장을 걷는다. 사라져 가는 노래를 기록하고, 잊힌 사람들의 삶을 되살리며, 공동체의 불씨를 지키는 '지역 실천의 땔나무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학문은 결국 사람을 향한 학문이었고, 그의 기록은 우리 시대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가치를 전하는 또 하나의 울림이 되고 있다.

▲ 새벽 바다를 바라보는 이윤선 박사. 남도와 섬, 바다와 공동체를 향한 그의 인문학적 여정은 오늘도 새로운 길을 밝히고 있다.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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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대신 굿판과 장터로... 평생 '사람'을 받아 적은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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