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이 코앞에, 덕진공원 연꽃 제대로 감상하는 법

낮과 밤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빛나는 곳... 풀벌레 소리 벗 삼아 산책해보세요

등록 2026.06.23 14:28수정 2026.06.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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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덕진호수의 초록 연잎 융단 위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분홍빛 자태 ⓒ 최호림


지난 22일,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길목에서 전주 덕진공원을 찾았다. 걷는 것만으로도 이마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그럼에도 이 뜨거운 산책길을 나선 이유는, 호수를 가득 메운 초록빛 연잎 사이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 홍련(紅蓮)이 완벽한 한여름의 풍경을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을 촘촘히 덮은 연잎들은 바람의 결을 따라 미세하게 출렁이며 거대한 초록 융단을 펼쳐낸다.

이곳 수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연꽃은 1974년에 식재된 홍련이다. 짙은 진흙탕 속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꽃잎은 한없이 맑고 단아한 얼굴을 수줍게 밀어 올린다. 탁한 세상 속에서도 결코 찌들지 않고 고결함을 잃지 않는 듯한 그 고고한 자태 덕분에, 예로부터 연꽃은 매화, 국화와 더불어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칭송 받아 왔다.


덕진공원 호수는 단순한 늪지가 아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옛 문헌에 따르면, 전주의 지세가 북서쪽으로 허해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제방을 쌓아 만든 '풍수비보적(風水裨補的)' 공간이다. '온고을(전주)'을 온전하게 지켜내려 했던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이 고인 물은, 오늘날 4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장엄한 연꽃 군락지로 거듭났다.

회복의 증거, 덕진 호수

물론 덕진 호수가 늘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수십 년간 호수 바닥에 오염된 퇴적물이 쌓이면서 생태계가 훼손되었고, 여름철이면 심한 악취와 녹조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하지만 호수를 살리기 위한 꾸준한 준설 작업과 수질 개선, 생태 복원 사업이 이어졌고 오랜 진통 끝에 도심 속 호수는 다시금 맑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가 마주하는 저 아름다운 연꽃의 향연은, 상흔을 딛고 끈질기게 일궈낸 값진 '회복의 증거'인 셈이다.

더욱이 1938년 덕진공원이 만들어진 후 약 80여 년간 전주 시민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공원의 랜드마크였던 흔들리는 철근 현수교(구 연화교)는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전통 석교 형태의 새로운 연화교가 들어섰다. 세월을 따라 단단해진 모습으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연화교에 오르면 연꽃 풍경은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온다. 굳이 손을 뻗지 않아도 닿을 듯한 지척에서 큼지막한 홍련과 연잎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연잎들이 스치듯 부딪힐 때면, 묵직한 연향(蓮香)이 코끝을 은은하게 감싼다.

과거 주전부리를 팔던 호수의 한가운데는 이제 연화정 도서관이 전통미를 뽐내고 있다. 도서관의 고즈넉한 자태는 이 수묵화 같은 풍경 속에 이질감 없이 스며든다. 반면, 호수 외곽을 병풍처럼 둘러싼 현대식 도심 빌딩들은 이곳의 정적인 분위기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덕진공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치며, 시간의 입체적인 모습을 선사하는 순간이다.


영글어가는 연밥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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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것 없는 생명력" 영글어갈 준비를 하는 연꽃의 중심부 연밥 ⓒ 최호림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서 들여다본 연잎은 넉넉한 그늘이 되어 꽃을 품어주고, 그 꽃봉오리 안쪽으로는 꿀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새로운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고요해 보이는 수면 위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 숨 쉬는 것이 바로 이 작은 생명들이 아닐까. 그리고 화려했던 분홍빛 꽃잎이 제 몫을 다하고 툭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에는 연꽃의 열매인 '연밥(연자)'이 초록빛 보석처럼 영글기 시작할 거다.


올해 덕진공원의 연꽃은 7월 초·중순경 가장 화려한 절정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연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방문 시간대를 잘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연꽃은 보통 이른 새벽에 꽃망울을 터뜨렸다가 한낮의 뜨거운 볕을 피해 오후가 되면 서서히 꽃잎을 오므리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가급적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방문해야 가장 생기 있게 활짝 핀 홍련의 자태를 마주할 수 있다.

야간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덕진공원은 낮과 밤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빛난다. 한낮의 뙤약볕을 피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무렵 공원을 찾으면, 또 다른 환상적인 세상이 펼쳐진다. 어둠이 짙어지면 연화교와 연화정 도서관에 은은한 경관 조명이 켜지며 수면 위로 데칼코마니 같은 아름다운 반영을 만들어낸다.

수풀 사이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걷는 수변 산책은 한여름의 열대야를 낭만적으로 식혀준다. 낮에는 챙이 넓은 모자나 양산을 챙겨 활짝 핀 홍련의 생기를 만끽하고, 밤에는 별빛을 조명 삼아 야경을 조망하는 것 모두 덕진공원의 여름을 즐기는 훌륭한 방법이 되어줄 것이다.

숨이 턱 막히는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맑은 꽃을 피워내고 단단한 열매를 맺는 숭고한 자연의 섭리. 이를 온몸으로 증명해 낸 덕진공원의 홍련들은 지친 우리 삶에 조용히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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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경관 조명이 켜지며 수면 위로 데칼코마니 같은 아름다운 반영을 만들어낸다. ⓒ 최호림

#덕진공원 #전주여행 #연꽃 #연화정도서관 #연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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