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23 14:06수정 2026.06.23 14:0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소 아버지가 내게 전화하면 겁이 난다. 혹시 사고 때문에 연락한 것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아버지는 좋은 일이든 아니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연락을 자제하는 편이다.
지난 주말 시내에서 모임이 있어 외출했을 때 핸드폰에 아버지 전화번호가 떴다.
"무슨 일이지?"
불길한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상대의 "여보세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력이 약한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지셨구나 지레 짐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상심을 지켜보며

▲ 도어록의 비밀번호가 순간 생각나지 않을 경우가 종종 있다.
이혁진
침을 꿀꺽 삼키며 가만 들어보니 전화 목소리는 동네 열쇠 가게 주인이었다. 전말은 이렇다. 아버지는 외출 후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현관 비밀번호가 '1234'라면 '2345'로 착각하신 것. 이에 아버지는 열쇠 가게 주인 전화로 협조를 구했지만 통화가 여의치 않자 열쇠 가게 주인이 직접 집을 찾아와 내게 확인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자초지종을 들은 후 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황이 없는데도 아버지의 침착한 대처도 돋보였다. 눈과 귀가 어두운 아버지로서는 착각한 것을 모르고 디지털 도어록의 오작동에 당황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실수는 생전 처음이다. 아버지는 기억력이 비상한 분이다. 평생 기록하는 습관에서 길러진 것이다. 그럼에도 익숙한 현관 번호를 순간 잊은 것이다.
현관문은 열렸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니다. 귀가해보니 아버지는 이 일로 매우 놀라고 상심한듯 보였다. 아버지처럼 완벽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수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 같다며 탄식도 했다.
이에 나는 아버지 기억력에는 하등 이상이 없으며 순간 착각하거나 오류를 범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아버지는 지난해 경로당 '치매인지검사'에서도 최고령으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격려했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순간
이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문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비밀번호를 기록한 메모지를 서로 지갑에 보관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혹시 번호가 생각나지 않으면 메모지를 꺼내 문을 열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불안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나이 들면 누구든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속도와 범위를 늦추려고 노력할 뿐이다. 사실 나야말로 건망증이 심하다. 약속 일정을 잊거나 핸드폰을 차에 두고 내리고 교통 카드 없이 버스에 승차하기 일쑤다. 심지어 방금 어떤 일을 했는지 까맣게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에 비하면 이번 아버지의 순간적인 착각은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지만 나도 몇 해 전 현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아내에게 에둘러 물어본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창피해서 다시 떠올리기 싫은 실수이다.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다. 아버지는 열쇠 가게에 협조를 구하고 나한테 연락이 가능하도록 했으니 최선을 다했다. 나는 이튿날 열쇠 가게 주인을 찾아가 감사를 전했다. 친절한 이웃 덕택에 아버지와 내가 무사했다. 하루를 아무 일 없이 온전히 지내는 것이 또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 하루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공유하기
현관 비밀번호 착각한 아버지, 아들이 꺼내든 대책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