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섬강제 이주 피해 실태를 증언하고 있는 밤섬보존회 지효경 이사
변상철
한겨울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2월, 꽁꽁 얼어붙은 한강 얼음판 위로 주민들은 가재도구를 이고 지며 섬을 떠나야 했다. 일부는 썰매에 짐을 싣고 나오다 얼음이 깨져 전 재산을 잃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한 지효경 이사의 발언에 따르면 이주 과정에서 국가가 62가구 전체에 지급한 보상금은 고작 천 여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주 대책은커녕 제대로 된 생계 보장조차 없는 명백한 강제 퇴거였다.
상수동 호박밭의 천막 노숙… 국가는 구호조차 없었다
가까스로 육지에 닿은 이들을 기다린 건 지독한 방치였다. 당초 서울시는 주민들에게 와우산 기슭으로의 이주를 약속했지만, 정작 땅을 내어주지 않아 주민들은 상수역 일대 호박밭에 수개월간 노숙을 해야 했다.
정부나 구청이 내어준 대형 군용 천막 하나에 서너 가구가 구역을 나누어 들어갔다. 일가족 5명이 3~4평 남짓한 좁은 맨바닥에 주워 온 나무판자와 스티로폼을 깔고 구공탄 난로에 의지해 겨울을 버텼다.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 나선 밤섬보존회 지효경 이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상수동 호박밭 천막 생활을 2~3년이나 했습니다. 수도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시에서 얻어다 준 천막 안에서 참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 이날 밤섬 강제이주 진상규명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밤섬보존회 지승민 사무국장
변상철
엄동설한에 주거지에서 쫓겨난 이들은 텐트안에서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식량 배급 등 최소한의 구호 조치도 없이 지내야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뜨내기 일(일용직)'에 뛰어들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스스로 만든 임시 공동 우물과 화장실로 처참한 환경 속에서 연명해야 했다고 한다.
맨손으로 일군 와우산 터전, 그리고 두 번째 철거의 비극
끈질긴 요구 끝에 서울시는 마침내 와우산 일대 시유지를 거주지로 내어주었다. 그러나. 주택을 올릴 건축 자재나 장비 지원은 단 한 푼도 없었다고 한다.
"포크레인이 어딨습니까. 62가구에서 매일 한 사람씩, 60명 이상이 나와 괭이로 땅을 파고 돌을 날랐습니다. 바가지로 물을 길어 흙을 반죽해 2~3년에 걸쳐 직접 집을 지었죠. 나이 든 어르신들은 허리가 다 굽을 정도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지효경 이사 증언 중)
하지만 주민들의 뼈와 살을 갈아 넣은 와우산 정착촌마저 이들에게는 영원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창전동 와우산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삼성아파트)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실향민들은 또다시 주거지를 잃었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엔 가진 것이 너무 없었고, 결국 이들은 망원동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며 고향을 두 번 잃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 억울해도 말 못 해" 대를 이은 상처

▲ 밤섬보존회 지효경 이사 등 밤섬 원주민들이 밤섬강제이주 피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진실규명 신청서를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변상철
이날 기자회견에서 법률대리인으로 참석한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의 박민서 변호사는 "이것은 지나간 과거사가 아니라, 국가가 힘없는 국민을 상대로 자행한 명백한 폭력이자 58년간 이어진 방관"이라고 직격했다.
실제로 밤섬 폭파의 여파는 1세대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았다. 부모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으면서, 밤섬 2세대들 역시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와우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산사람'이라 멸시받으며 교육과 생존권 등 삶의 전반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 무슨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당하고 살지, 어디 가서 얘기나 할 줄 알아요?"
이날 참석한 밤섬 원주민 지씨의 체념 섞인 탄식은 폭력적인 행정 앞에 철저히 무력했던 원주민들의 실태를 대변한다. 이제 공은 진실화해위로 넘어갔다. 주민 측은 ▲ 강제 퇴거의 위법성과 기만적 보상 ▲ 생존권 방치 및 행정적 직무유기 ▲ 대를 이은 피해 실태 조사를 강력히 요구한 상태다. 58년간 여의도의 화려한 그림자 속에 은폐되었던 밤섬의 아픔을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혀줄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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